삶그리고추억 36 - “처음책방” 김기태 교수
창간호· 초판본 수집에 ‘미친’ 교수
제천 세명대학교 앞 의림지 언덕 위에 초판본·창간호 전문서점인 ‘처음책방’이 문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고, 설레는 마음으로 단숨에 달려간 기억이 난다.
1894년 갑오개혁 이후 순한글로 창작된 대중성과 문학성, 희귀성을 기준으로 초판본과 창간호를 수집하는 필자에게는 호기심을 유발하기에 충분했고, 꼭 가봐야 할 명소였다.
‘처음책방’ 문을 연 세명대 김기태 교수는 젊은 시절 삼성출판사에 근무한 이력을 가지고 있다.
삼성출판사 대표이사를 역임한 김종규 회장님과의 인연이, 김 교수님의 ‘처음책방’의 밑거름이 되었다니 놀랍기만 하다.
서울 종로구 구기동에서 삼성출판박물관을 운영 중인 김종규 회장님은 중광 스님의 작품집 ‘최초의 도록’을 발간해 주셨고, 후원회장도 역임하셨다. 화가 권옥연, 시인 구상을 비롯한 문학계·미술계·불교계 등 한국 문화계 전반에서 가장 넓은 인맥을 가진 문화 후원자로, 한국박물관협회장도 역임하신 바 있다.
■ 꼭 만날 인연은 언젠가 반드시 만난다
그런 김종규 회장님과의 인연으로, 필자도 한국 근대문학 초간본과 중광 스님 작품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을 주신 스승같은 분이시다.
김기태 교수님 역시 삼성출판사 근무를 계기로 김종규 회장님을 만난 것이 초판본·창간호 수집의 시작이었다 하니, 인연은 멀리 있는 듯하지만 가깝게 존재하는 것 같다.
초판본·창간호 수만 권이 마치 미곡창고의 쌀가마니처럼 책방에 빼곡히 차 있다.
참으로 배부른 생각이 든다. 오래된 책 냄새가 향수처럼 폐를 자극한다.
엄밀히 말하면, 뇌를 자극하는 것이다.
필자가 찾는 김영랑 시집, 최인훈의 『광장』,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등 희귀 서적은 비매품이란다. 그래서 오히려 더 반가웠다.
고가의 희귀본을 모두 팔아버리면 ‘처음책방’은 속 없는 진빵이 될까 걱정했는데, 교수님이 그 희귀본은 소장하시며 문학박물관을 구상 중이라 하시니 존경스러웠다.
■ 처음책방, 이천 모가면으로 확장이전
세월이 흘러 ‘처음책방’은 제천을 떠나 이천 모가면으로 확장이전했다.
코로나 시기와 경기 불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견뎌낸 것에 감사했다.
이전한 책방은 2층으로 된, 카페 건물을 인수해 아담하게 리모델링하여 책방으로 꾸며졌다.
핸드드립 커피를 한 잔 놓고 수집 이야기를 나누던 중 “교수 월급으로 수만 권의 책을 어떻게 모았느냐”고 묻자, 월급은 아내 통장으로 바로 입금되니 본인이 만져보지 못하고,
30년 넘게 강의료·원고료 등을 받는 즉시 헌책방으로 달려가 한 권, 한 권 구입했으며, 한 번에 10권 이상 사 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개미처럼, 거북이처럼, 눈 빠지게 찾고 고르고 살펴 수집한 결과물이 오늘의 ‘처음책방’이라 하니 가슴이 뭉클하다.
제정신으로는 할 수 없는, ‘미친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그런 은근과 끈기의 사람. 외유내강의 김기태 교수가 큰 거인처럼 보이는 이유다.
정년퇴임까지 몇 해 남지 않은 김 교수님은 여전히 소년 같은 미소로 책설명에 신바람이다.
넓은 창으로 들어오는 논뷰에는 푸르름이 가득하다.
이제는 건물도 매입했으니 이사할 일도 없고, 이천의 명소로 뿌리내릴 일만 남았다.
이미 이천시청 문화담당자와 이천문화원 관계자들이 찾아와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니 천만다행이다.
■ 책사랑은 생계 수단이 아니다
김기태 교수의 성격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퇴직 후 노후 대책으로 ‘처음책방’을 준비한 것이라 오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먹고살기 위한 수단이라면 초판본 창간호 서점이 아닌 일반 헌책방을 운영했을 것이다.
또, 팔리지도 않는 ‘헌책 사랑’을 담은 『초간본 이야기』같은 책을 자비로 출판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의 책사랑에 대한 진심이 통해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표창과 국무총리 표창을 받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 카페, 서점, 그리고 문화공간으로의 변신
현재 ‘처음책방’은 정기적으로 테마별 전시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향기로운 스페셜 커피도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자주 찾아가 눈과 마음을 호강시킬 일만 남았다.
향후 계획을 묻자,
수만 권의 창간호 잡지를 디지털로 정리하는 작업이 남아 있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아 고민 중이라 한다.
문화에 관심 있는 지역 사회와 큰 기업들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곧 좋은 인연이 연결되기를 기원한다.
오늘따라 책방 벽면에 걸린 “책 든 손 귀하고, 읽는 눈 빛난다.”라고 쓰여있는 액자가, 책 읽기에 게으른 나를 조용히 채찍질하는 것 같다.
‘처음책방’, ‘처음카페’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렌다.
단국대학교 경영학 석사
필리핀국제문화대학 명예 철학박사
칼빈대학교 명예인문학박사
한국고승유묵연구소장
중광미술연구소장
용인한국근대문학관 건립위원장
음반수집 연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