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 】걸레스님이 전하는 말
1977년 10월 2일 선데이(주: 선데이서울) 기사에서 주색잡기로 수도하는 괴짜 중이라 하지 말고 주색잡기 속에서도 휘말리지 않고 수도하는 괴짜 중이라 했으면 하는 아쉬운 감이 없지 않으나 어쩔 수 없다. 나는 걸레도인이란 시를 발표한 것과 술집, 요정, 바, 거지 굴, 카바레 등 여러 곳에서 인간 삶의 실상을 보면서 참선 수행을 한 적나라한 수행담을 말했다.
이 글이 나온 이후 찬반이 엇갈려 아우성이 크다, 서울의 일부 지식층은 멋있는 중이라고 하고, 중간층에서는 잘 파악을 못하고 있고 중이 그럴 수 있느냐 속인도 못하는데 중이니까 했지, 중 중에서 걸림돌 없는 내니까 했지 한다. 체면, 의식, 명예를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위선자에게는 통할 리 없다. 바나나는 겉은 누렇고 속은 희다, 겉과 속이 다르다.
수도인은 제일 먼저 계율이 필요하다. 파계도 필요하다. 깊은 경계에 가서는 자기를 헌신짝같이 버리지 않고는 절대로 도에 못 들어간다. 인간의 진면목을 파악하지 못한다. 자기를 절대 못 버리고 계에 얽매이면서 자기를 안다는 것은 고양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바나나 인간은 되지 말자. 내가 죄가 있다면 솔직히 말한 죄밖에 아무것도 없다.
계를 파해보지 않고는 계가 중요함을 모른다. 맹목적으로 계를 지키는 것 보다 낫다. 수도하는데 계도 중요하지만 계보다 인간이 중요하다. 인간의 근본 실상을 먼저 알고 계를 지켜야 한다.
인간은 소우주이다. 소우주인 진리를 먼저 파악하지 않고는 대우주의 진리를 파악할 수 없다. 석가도 학문과 무예와 결혼과 자식까지 낳았고 귀중한 왕위를 버리고 출가한 것을 나는 대단히 위대하다고 본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알고 세상의 무상을 깨닫고 출가했기 때문이다.
나는 변명하지 않을테야.
태평양 거센 파도에 배를 띄웠으니
순항이 되건 파선이 되건 놀라지 말라
다만 나는 갈 뿐이다.
나는 위선자가 되지 않으려고 종교인이 되었다. 종교인은 너무 위선자가 많다. 세상에 초연한 것처럼 하면서도 세상 것을 다 탐닉하고 있다. 나는 이 글을 쓰고 희생해도 좋다. 그러나 이 글을 보고 자기 양심에 반조해 보아라. 위선자가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차라리 벙어리가 될지언정 위선인 앵무새 강사, 학자, 종교인은 되지 말라.
종교인이 먼저 지옥에 들어가야 한다. 어떤 글에서 보았는데 지옥 순회 중에 보니 어떤 지옥에 입이 가득 있어 저 입은 어떤 입이냐 물으니 목사나 중의 입이라 하는 것이었다. 입으로는 좋은 이야기, 성인의 말을 하면서 행동과 위배되기 때문에 입이 지옥에 가득 차 있다는 이야기는 가볍게 넘겨버릴 말이 아니다.
종교인은 희생심이 있어야 한다. 선구적인 사상을 가져야 한다. 바른말을 하여 비난이나 비평받는 것을 피하려고 하는 정신을 탈피해야 한다. 순행은 쉬워도 역행은 어려운 것이다, 방편이란 것이 있다. 방편 상 거짓말도 중요하다. 그러나 인간의 본 자세는 솔직해야 하고 참회정신이 있어야 한다. 인간이 죄를 아니지고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되겠나. 참회없는 자에게 회생이란 어려운 것이다.
극락이나 천당으로 갈 사람은 어린 나이나 농촌에서 겨우 끼니를 이으려 발버둥 치는 사람들이다. 학문을 많이 하고 많이 배운 사람들이나 너무 지능적인 사람들 가운데 지옥에 갈 자가 많다. 못 배운 사람은 몰라서 못했거니와, 많이 배운 사람은 많이 알면서도 행동이 일치 못 하니 이쪽이 죄가 더 많다.
예수나 석가가 자기를 믿지 않는 자는 구제받지 못한다고 하는 것은 큰 모순이다. 성인이 참으로 사랑이 있다면 순수한 인간을 구제하고 다음은 참회하는 인간을 구제할 수 있다. 예수는 100마리 양 중 99마리 양보다 한 마리 양을 찾아 헤매었다. 지장보살은 지옥문에서 발가벗은 몸으로 일체중생을 제도하고 나서 부처가 되겠다 했다.
나는 예수교인, 천주교, 유교인은 물론 아니며 더욱 불교인은 아니다. 중도 아니다. 순수한 인간이다. 나 혼자 구제를 받으려고 하지 않는다. 다 같이 영화를 누리고 싶을 뿐이다. 인생 광장에 살고 있는 사람은 각양각색 다르듯이 살아가는 방법도 다를 뿐이다. 지금 머리 깎고 중이 된 것은 이렇게 살고 있을 뿐이다. 종교가 다르고 생활이 다르다고 해서 벽 안시하고 경쟁하는 것은 종교의 참뜻을 모르는 행위이다.
인간이 자기 생명을 위해 피나는 고생, 직업의 귀천 없이 노력하면서 산다는 것은 위선적이고 명예와 권세를 찾아 허황되게 사는 사람보다 낫다고 본다.
초심지인(初心之人)은 자기 기본 존재를 파악하고 나는 이 지구의 주인임을 재확인하고 인간의 근본을 먼저 파악하고 버릴 수 있는 준비 자세가 필요하다. 인간이 먼저 할 일을 파악하고 어떤 사명을 가져갈까를 재확인하고 자기 목표를 설정하라.
내가 죄가 있다면 깨끗하게 마음에 걸림 없이 최상이 인간 본연 속에 산 것 뿐이다. 이것이 죄라면 나는 죽음밖에 없다.
너는 이 세상에 누구를 가장 믿느냐. 나는 나를 믿는다.
(주 : 이 글은 미 발표된 중광 스님의 육필 기록임)
1990년 동양문학 신인상 등단
현 공무원문인협회인천지회장, 인천문협회원
현 용인일보 문화에디터
시집 도두를 꿈꾸는 하루 외 6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