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반복, 음악의 변주

2025-12-02     손다영

어느덧 12월에 접어들었고, 본격적으로 매서운 추위가 시작된 모양이다. 울긋불긋 물들었던 단풍잎도 어느새 흔적을 감출 것이고, 앙상한 나뭇가지 위로 소복이 눈이 쌓일 것이다. 소생의 계절을 기다리며 고요히 잠드는 자연을 바라보기도 하고, 설경의 아름다움을 만끽하기도 한다.

누구나 보고 느낄 수 있는 계절의 변화를 작곡가들은 어떤 모습으로 표현했을까.

먼저 ‘사계’라는 이름으로 잘 알려진 앙상블 작품으로 비발디 그리고 피아졸라의 작품이 있다. 합주협주곡으로 작곡된 비발디의 작품은 《화성과 창의의 시도》 중에서 네 곡만을 따로 떼어 ‘사계’라는 제목으로 연주되고 있다. 자연의 변화, 인간과 자연의 관계, 환희와 재앙이 공존하는 소네트가 첨부되어 있어 음악을 보다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한편 피아졸라의 사계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계절들’로서 도시의 정취와 사람들의 삶과 감정을 계절의 변화에 담아낸 작품이다. ‘탱고’라는 장르를 ‘듣는 음악’으로 한층 끌어올린 피아졸라를 대표하는 곡이라 할 수 있다.

출생지는 독일이지만 영국에서 활동한 두 작곡가의 ‘사계’도 있다. 1732년에 태어난 하이든은 스코틀랜드 시인 제임스 톰슨의 대본으로 농부들의 삶을 다룬 인간적인 내용의 오라토리오를 만들었다. 종교 음악인 오라토리오를 통해 농부들의 일상으로 들어가 자연과 신의 위대함을 노래한다.

그리고 이백여 년 뒤 독일에서 태어난 막스 리히터는 비발디의 사계 선율을 해체하고, 새로운 시간과 정서를 통해 재구성하였다. 미니멀리즘 작곡가로 불리는 막스 리히터의 사계는 자연의 신비보다는 자연 속에 머무는 인간의 내면 풍경에 집중한다.

마지막으로, 피아노 한 대로 홀로 표현하는 차이콥스키의 ‘사계’가 있다. 러시아의 음악 잡지 《Nouvellist》의 의뢰로 각 달마다 한 곡씩 작곡된 12개의 피아노 소품집이다. 각 달마다 부제와 러시아 문호들의 시 문구가 붙어 있으며, 러시아의 풍속, 계절, 정서를 담고 있다. 12월은 ‘크리스마스’로, 바실리 주콥스키의 “온 세상이 빛으로 가득 차고 축복의 기쁨이 우리를 감싼다.”라는 문장이 붙어 있다.

듣는 이에 따라 마음에 드는 ‘사계’는 각각 다를 것이다. 잔잔한 피아노 독주부터 대규모 합창과 오케스트라 편성까지 취향에 따라 마음을 울릴 것이다. 작곡가 역시 자신을 멈춰 세워 사유하게 만드는 문장, 선율의 파편들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표현 방식에 대한 개인적 취향 역시 존재한다. 자연의 변화는 경이로움을 자아내면서도 창조에 대한 욕망을 불러일으킨다. 작곡가 또한 변화를 거쳐 어딘가에 도달하려는 본성에 걸맞게 새로움을 찾고 감탄하는 시각을 가진다.

계절은 다시 돌아온다. 지나감에 향수를 느끼고 다가올 것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반복을 맞이한다. 우리는 계절의 반복 속에서 마치 처음인 것처럼 절경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때로는 덧없는 생각과 마음을 내려놓기도 한다. 자연과 예술이 주는 카타르시스 또는 잔향은 늘 새롭다. 예술이 있는 한 알지 못했던 새로운 봄을 향해 나아갈 것이다.

임윤찬의 ‘차이콥스키:사계’ 음반

 


손다영 바이올리니스트

손다영 아르케컬처 대표

단국대학교 음악대학 바이올린 전공 학사 졸업䟃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바이올린 전공 석사 수료

현재 아르케컬처 무지카 클래시카 음악회(2022~), 금요반달클래식클럽(2022~), 용인일보 오피니언(2025~) 강연 및 기획공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