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 내게로 왔다【27】 파이 이야기 - 얀 마텔

2022-01-17     최성혜

최성혜의 하프타임, 책이 내게로 왔다【27】

사람은 어떻게 절망을 이겨내는가 

                                                          책 표지 ⓒ 작가정신

2002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파이 이야기Life of Pi는 스페인 작가 얀 마텔 Yann Martel의 작품으로, 발표되자 전 세계 40여 개 국어로 번역되어 큰 인기를 끌었다. 난파된 화물선에서 구명보트로 탈출한 인도소년이 277일간 태평양을 표류한 이야기로 죽음의 공포와 절망과 고통의 긴 터널을 통과해나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그렸다.

 

                              작가 얀 마텔 Yann Martel 과 책 표지 Life of Pi ⓒ IndiaTVnews

인도남부의 폰디체리에서 동물원을 하는 집의 아들 피신은 이름이 영어의 오줌누다란 뜻의 피싱pissing과 비슷해 항상 놀림을 당한다.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이 맹랑한 꼬마는 자신의 이름으로 원주율 파이를 기억하라며 앞의 두 철자 pi 만으로 소개해서 이 오욕의 난제를 일거에 해결한다. 인도인으로서 힌두교를 믿지만 카톨릭 신부와 이슬람교도 빵장수에 감화되어 세 종교를 모두 믿는다. 캐나다로 이민가기로 결정한 부모님을 따라 파이는 형과 함께 동물들을 싣고 일본 화물선으로 마드라스를 떠난다. 폭풍우속에 원인모를 사고로 배가 가라앉고 바다에 던져진 파이는 천신만고 끝에 겨우 구명보트에 올라탄다. 하이에나, 얼룩말, 오랑우탄, 벵골 호랑이와 함께 며칠을 보내다가 서로 죽고 죽이는 싸움이 벌어져 호랑이와 파이만 남는다. 그 호랑이는 파이의 동물원에 있던 리처드 파커.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 포스터

언제든 자신을 잡아먹을 수 있는 호랑이와 좁은 구명보트에서 함께 지내야 하는 파이는 지혜를 짜내어 아슬아슬한 공존상태를 유지한다. 둘 다 오랫동안 굶고 물도 없어 죽어가며 삶을 거의 포기할 무렵 기적처럼 보트가 섬에 닿는다. 파이는 신선한 물과 식물로 힘을 얻어 휴식을 취하고 리차드 파커는 섬에 가득한 미어캣을 잡아먹으며 원기를 회복해서 평화롭게 행복을 누릴 때 섬의 놀라운 비밀이 드러나고 둘은 서둘러 섬을 탈출한다. 마침내 태평양을 떠돌던 구명보트가 멕시코 바닷가에 닿고 기진맥진한 파이가 모래사장에 쓰러질 때 생사를 함께 했던 리처드 파커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밀림으로 사라진다.

 

                                             파이와 리차드 파커 ⓒ 네이버영화

배 안에서는 벵골호랑이에게 잡혀 먹을 수 있고, 배밖에서는 상어들이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세찬 비바람을 고스란히 맞으며 몇 날 며칠을 버텨야 하고 모든 걸 태울 듯이 강렬한 태양을 피할 곳도 없다. 굶주리고 목말라 탈진해서 눈이 멀고 섬망까지 겪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는다.

 

우리는 싸우고 싸우고 또 싸운다.

어떤 대가를 치르든 싸우고, 빼앗기며, 성공의 불확실성도 받아들인다. 우리는 끝까지 싸운다. 그것은 용기의 문제가 아니다.

놓아버리지 않는 것은 타고난 것이다. (p.228)

파이가 망망대해 한 가운데 끝없이 흔들리는 보트에서 공포와 절망을 마주하고 끝까지 싸울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함께 한 호랑이 덕분이다. 반려동물처럼 좋은 관계여서가 아니라 잡혀먹지 않을까 끝까지 긴장하도록 만들어 살 의지를 갖게 한 때문이다. 특히 책의 앞부분에서 자신의 이름을 파이로 고쳐 난관을 해결한 용기와 크리슈나신과 하느님과 알라신을 충돌없이 함께 믿는 신앙으로 드러나는 파이의 개성이 표류생활의 여러 장면에 설득력을 더한다.

 

태평양의 신비로운 밤 ⓒ 네이버영화

이 책에서 가장 놀라운 부분을 꼽자면 난파된 일본화물선의 조사관들이 파이를 만나 조난중의 자초지종을 듣는 장면이다. 숨 막힐 정도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난다. 조사관들이 그의 이야기를 믿기 어렵다고 하자 파이는 실제 일어났던 사실을 말 해주며 둘 중 어느 이야기가 더 나으냐고 묻는다. 어차피 일어난 일이고 변할 수 없는 일인데 어느 쪽을 믿는 게 더 좋으냐고.

파이는 자신에게 닥친 불운과 자신이 했어야 했던 끔찍한 일을 그대로 안고 살아갈 수 없었기에 잔인한 기억을 흥미진진한 서사로 바꾸었다. 구조되자 자신의 상상력이 창조한 분신인 호랑이는 떠나고 혼자 냉혹한 현실을 마주해야 하는 파이는 통곡한다. 작가는 로빈슨 크루소처럼 무인도에서 강인하게 살아남아 귀환하는 모험소설에 한 차원을 더해 고난에 맞서는 한 인간의 상상력과 신을 만나는 과정을 찬란한 묘사로 생생하게 그려냈다.

 

라이프 오브 파이 영화 포스터 ⓒ the Real Folk Blues

2013년 인도배우 수라지 샤르마Suraj Sharma 주연의 영화로 제작되었으며 타이완의 이안Ang Lee 감독은 이 영화로 두 번째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했다. 놀라운 특수효과로 이루어진 장엄하고 신비로운 장면으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다.

 

 

 


최성혜 작가

1982. 2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도서관학 학사

1982. 2 한국도서관협회 정사서

1981. 12 대한조선공사

2000-2015년 수능 영어 강사

2018. 11 용인시 문화관광해설사 영어담당 근무

2021년 용인일보 '책이 내게로 왔다' 오피니언 시리즈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