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스님과 저잣거리에서 함께 2 - 한겨레 온 겨레가 지낸 차례
한겨레 온 겨레가 지낸 차례
무상법현스님
이번에도 한겨레 온 겨레가 차례(茶禮)를 지냈다. 기제사나 시제사와 달리 설이나 추석 또는 특별행사에 차를 올려서 드리는 제사를 차례라고 한다. 그러니 차례상에 오른 이런저런 이야기 가운데 차례 이야기에는 뭐니 뭐니 해도 차(茶)이야기가 으뜸일 게다. 하지만 현실은 어디에서도 차 이야기는 그리 크게도, 자주도 들리지 않아 보인다. 90년대 초부터 '차를 올려야 차례'라는 범국민 캠페인을 벌여서 차를 올리는 이들과 사찰이 꽤 생겨났다. 사실, 어느 신문에서 차례 이야기하면서 유교, 기독교, 천주교 이야기를 쓴 뒤에 기사가 바로 끝나는 바람에 오지랖 넓은 내가 전화해서 의견을 밝힌 것이 이제까지 차례 이야기를 하게 된 까닭이다. 내가 벌여온 캠페인과는 별개로 대개는 술을 올리거나 절에서는 물을 올린다. 제대로 말하자면 술 올리면 주례(酒禮), 물 올리면 수례(水禮), 차를 올려야 비로소 차례(茶禮)라고 할 수 있다. 제사를 지내지 않는 종교와 지내는 종교가 있겠지만 유교와 불교, 도교, 원불교, 증산교 등의 동북아시아 산 종교는 제사와 차례를 지낸다. 흔히 제사를 지내는 집단에서는 영혼을 인정하리라 생각하지만, 그 반대다. 영혼을 인정하는 곳에서는 그 정체성(identity)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니 영혼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생각에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 의아하게 생각하겠지만 영혼은 없고 생명의 훈김이 있다고 생각하는 까닭에 그 훈김이 남아있는 기간에 예를 다하는 것이 제사요, 차례다.
나는 불교의 수행자로서 불자들에게 의식, 예절을 지도하지만 불교식으로만 하지는 않는다. 세계적으로는 77억 가운데 어느 종교를 믿는 인구가 10억을 넘는 것이 별로 없다. 그래서 아무리 많은 인구가 믿어도 7분의 1을 넘기기 어려우니 어느 종교라도 전체를 이끌어 간다고 말하기에는 많이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자들이 가정에서 차례를 지냈을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는 결손 가정도 많고 인종(?)마저 다른 이들이 의식을 함께하기가 힘들어하고 해서 차례를 지내지 않거나 사찰 등에서 합동 차례를 지내기도 한다. 약간의 수입이 들어오기도 하는 까닭에 선전하기도 한다.
이런 때에 좀 천천히 생각해보는 것은 어떨까 한다. 현재 우리는 전 국민이 수억 원 대의 집에 살고 제사를 지내는 옛날로 치자면 양반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4년제 이상 대학을 나오고 대학원에서 석, 박사 학위까지 받았는데도 제사, 차례 순서나 의식, 상차리기 등을 제대로 아는 이가 매우 드물게 느껴진다. 왜 그럴까? 비밀이 있다. 옛날에 누구나 제사를 지냈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인구의 2~3퍼센트만 제사를 지냈다. 그래서 모를 수밖에 없다. 나처럼 고민이라도, 사유라도 했으면 알 수 있는 것인데도 불구하고 거의 모두가 모른다. 여러 가지 말이 많고 서로 다른 주장을 하며 어디서도 의사 합일이 되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이미 전 국민이 제사와 차례를 지낸 지 꽤 오래되었으므로 지내는 것이 사회통합에 도움이 되기에 제사, 차례를 지내는 것이 바람직하다.
얼마 전 추석을 며칠 앞두고 성균관에서 간소한 차례상을 발표하였고 전을 마련하지 않아도 되며 몇 가지 음식만 채비해도 좋다고 하여 시대 흐름을 반영했다고 좋아들 하였다. 누구나 먹는 밥과 국을 올리지 않는 면이 있기는 하지만 무엇이든지 문화이고 풍습이므로 그때 사람들의 의식이 반영되기 마련이다. 나름 좋은 일이라고 생각한다. 정서에 맞지 않고 느낌이 좋지 않으면 바꿔 가면 된다고 생각한다. 나름으로 추석이나 설 차례에 관한 느낌 나누기를 해 보고자 한다.
1. 좋은 것은 다 좋고 싫은 것은 다 나쁘다 2. 조상님 위하고 후손을 위하는 건 다 좋다. 3. 이름에 들어있으니 차(茶)를 올리자 4. 2~3퍼센트만 지내다 모두 지내는 위상이니 지내는 것이 좋다 5. 음식은 가장 맛있는 것으로 차린다. 잡수시기 좋은 것 순서대로 병풍 앞에서부터 차린다 (전식-본식-후식) 6. 술을 함께 올려도 좋고, 안 올려도 좋지만, 차(茶)를 올려야 차례다(후손 또는 조상님 기호 또는 전통차) 7. 조상님도 좋고 후손들도 좋은 것이 좋은 차례다 8. 즐겁게 차리고, 마음으로 올리고, 맛나게 내려 먹고, 기쁘게 설거지하고 이야기꽃 피우면 더 좋다 9. 종교와 집안의 전통이나 분위기를 따라서 하면 된다 10. 모시는 분이 많으므로 지방이나 위패는 쓰지 않는다(조상님 신위나 영가라고 해도 좋다) 11. 불교도라면 법현스님이 마련한 불교 차례가 좋다 12. 높은 상 위에 뿌려서 향내 나는 향과 상아래 향로에 꽂아서 향내 나게 하는 향이 있다 13. 조율시이, 홍동백서에서 조율은 붉고, 왼쪽이다. 서로 어긋난다. 14. 사찰 등 종교나 단체에서 지내는 합동 차례라도 스스로 의식 진행의 주체가 되는 것이 좋다. 15. 차례 지냅니다 조상님 /절/, 맛나게 드십시요 조상님 /절/, (조상님 관련 이야기 나누며 잠시 드시기 기다림, 이때 조상님 곧 어르신 덕성 이야기를 가족 구성원들에게 해주어 좋은 전통이 이어지게 함) ‘차례 다 모셨습니다. 조상님 /절/ 이렇게 차례지내면 된다. 옛날 유세차~~도 내용이 비슷하다. 16. 사찰의 선조사 스님들과 스님들의 조상 차례 지내면서 불자 조상 차례 함께하는 마음으로 지낸다.
다음 차례부터 어려워하지 말고 이렇게 지내기를 바라며 옛 시 한 수 새겨보고자 한다.
하니바람에 빌어볼까(賴有西風)?
비 맞은 내 가슴이 오래 답답했는데
한가윗달이나 뜨면 비길 수 있을까 해서
하니바람에 구름 좀 가게하라 빌어볼까?
구슬 같은 얼굴이나마 옛 벗인 양 바라보게
(久將欝欝雨中懷 擬向中秋月下開 賴有西風掃雲去 玉容如見故人來)
고려 말 포은 정몽주(圃隱 鄭夢周,1337~1392)의 한가윗달(中秋月)이라는 시를 내 멋대로 풀어본 것이라 벗님은 어떠실 지....이런 저런 비 때문에 힘든 날 지나니 온 누리가 훤하고 바람 시원 햇볕 따스하네. 오늘도 내일도 또 모레도 그러기를 마음에 새기며 차례이야기를 나눈다.
무상법현(승려,평택 보국사 주지)
현) 서울 열린선원장, 인천공항2청사 세계선원장, 평택 보국사 주지, 일본 나가노 금강사 주지.
저서.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법현스님과 함께하는 법구경><그래도, 가끔> 등
<틀림에서 맞음으로 회통하는 불교생태사상> 논문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