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쇼코의 미소 - 최은영
최성혜의 하프타임, 책이 내게로 왔다 【39】
꿈을 따라가는 가시밭길 그 자체로 위대하다
‘쇼코의 미소’는 최은영 작가의 등단작이자 2014년 젊은작가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한국 여고생 ‘소유’와 일본 여고생 ‘쇼코’의 만남과, 만날 수 없는 외국인이기에 오히려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었던 편지교환을 소재로 가족 간의 이해와 치유, 그리고 두 젊은이의 아픈 성장의 과정을 그렸다.
일본 여고생 쇼코는 한국의 자매학교를 방문해 소유의 집에 일주일동안 머문다. 종일 집안에만 틀어박혀 있던 무기력한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때 익힌 일본어로 쇼코와 소통하면서 활발하고 친절한 모습을 보인다. 일본으로 돌아간 후 쇼코는 일주일에 한 번씩 할아버지와 소유에게 각각 따로 한통씩 편지를 보낸다. 할아버지에겐 일어로 그림엽서처럼 예쁜 이야기를, 소유에겐 영어로 어두운 자신의 이야기를.
아무 생각이 없던 소유는 쇼코의 야망에 자극받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간다. 교환학생으로 미국에 갔다가 쇼코의 소식을 듣고 일본으로 찾아가는데 이전의 자신만만한 쇼코가 아닌 패배자의 모습에 실망하고 냉정하게 돌아선다. 돈과 안정만을 좇아 평범한 길을 가는 친구들을 비웃으며 소유는 어떤 고난도 딛고 일어나 영화감독인 자신의 꿈을 이루리라 자신했지만 연속되는 실패로 재능을 의심하며 절망한다. 꿈마저 진짜 자신의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는다.
할아버지 장례가 끝난 후 한국으로 찾아온 쇼코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자신에게 보낸 편지들을 소유에게 돌려준다. 딸이나 손녀한테도 털어놓을 수 없었던 아픔을 만날 일 없는 외국인에게 털어놓았던 것이다. 이를 통해 소유는 관용이 없이 매사에 화를 내기만 해 미웠던 할아버지가 실은 시대를 잘못 타고 나서 자신이 살고 싶은 삶을 살수 없었던 고통을 감내하며 불행했기 때문이란 걸 깨닫고 비로소 할아버지를 연민으로 바라보게 된다.
이 소설에서 가장 가슴 아팠던 부분은 소유가 꿈을 포기하는 장면이다.
“순결한 꿈은 오로지 이 일을 즐기며 할 수 있는 재능 있는 이들의 것이었다. 그리고 영광도 그들의 것이 되어야 마땅했다. 영화는, 예술은 범인의 노력이 아니라 타고난 자들의 노력 속에서만 그 진짜 얼굴을 드러냈다. 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그 사실을 인정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재능이 없는 이들이 꿈이라는 허울을 잡기 시작하는 순간, 그 허울은 천천히 삶을 좀먹어간다.”
(p.271)
꿈을 따라가고 있기 때문에 의미 있다고 믿었던 자신의 삶은 거듭 되는 실패로 밑바닥으로 내동댕이쳐진다. 자신의 재능 없음을 인정하는 일은 칼로 베이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이라, 종국엔 자신의 꿈마저도 부인하게 된다. 애당초 내가 원했던 게 아니라 좋아보였던 것을 목표로 정했으니 자신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한 꿈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정말 재능이 없는 걸까? 알아봐 줄 능력이 있는 사람이 없었던 게 아닐까? 여기가 끝인지 어떻게 안단 말인가? 조금만 더 버티면, 굶고 피땀 흘려 조금만 더 간다면.....
나보다 꼭 한 발짝 더 가서 빛을 본 사람들과 난 무슨 차이란 말인가?
재능이 있고 없고를 판단해 줄 절대적인 기준이 있다면 인생은 훨씬 더 쉬울 텐데. 불행하게도 그런 건 없다. 살아있을 땐 인정은커녕 조롱받았던 수많은 뛰어난 예술가들이 사후에 남긴 작품들이 지금까지도 밤하늘의 별처럼 빛난다는 말도 위로가 되지 않는다. 감히 그 고통을 이해한다고 잘 될 거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다만, 소유가 살아가면서 꿈을 포기한 이 결정이 가시가 되어 계속 찌를 것 같아 나도 아파지는 것이다.
서른 늦은 나이에 등단한 최은영 작가는 소유의 이 모습이 자신의 경험에서 나왔다고 말한다. 소설가로서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해 재능없음을 인정하고 포기하려던 때, 친구의 권유로 마지막으로 지원했던 문학상에서 상을 받는 바람에 등단할 수 있었다고. 그러니 마지막 한 방이 재능의 유무를 증명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저자는 책의 제목인 ‘쇼코의 미소’를 소유의 눈으로 세 번 언급한다. 소유가 쇼코를 처음 만났을 때, 소유가 일본으로 찾아갔을 때, 쇼코가 한국에 와서 할아버지의 편지를 주고 돌아갈 때. 알 듯 말 듯한 쇼코의 미소는 세 번 다 같은 미소지만 보는 소유의 마음 상태에 따라, 자신만만하게도, 나약하고 방어적인 모습으로, 마지막엔 자신에게 만족하는 모습으로 보인다. 소설 전체를 한 줄로 꿰어주는 탁월한 제목이다.
1982. 2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도서관학 학사
1982. 2 한국도서관협회 정사서
1981. 12 대한조선공사
2000~2015년 수능 영어 강사
2018. 11 용인시 문화관광해설사 영어담당 근무
2021년 용인일보 '책이 내게로 왔다' 오피니언 시리즈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