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작별하지 않는다 - 한 강

2024-02-05     최성혜

최성혜의 하프타임, 책이 내게로 왔다 【44】

우리나라에서 노벨상 수상작가가 나온다면 단연 ‘한강’이다. 그의 글은 그냥 차원이 다르다. 주제며 문체며 기법이며 구성이며 뭐하나 빠지는 게 없이 완벽하다. 『소년이 온다』 와 『채식주의자』에 이어 이 작품도 역시 그렇다.

『작별하지 않는다』 의 프랑스어 판『impossibles adieus』 ⓒ WordPress.com

1948년에 일어난 제주도 4.3 사건을 다뤘다. 1년여 동안 이유도 모른 채 어른부터 아기까지 제주도민의 1/9인 3만명이상이 죽임을 당했고 중산간 마을의 2/3가 폐허로 변했다. 모래톱에서 총 맞은 시신들은 바닷물에 떠내려가고 파놓은 구덩이 옆에서 총 맞은 사람들은 암매장되었다. 이유도 모른 채 처형 당한 부모형제의 시신을 찾지도 못해 한 맺힌 사람들이 아직도 고통을 가슴에 묻고 사는 땅인데, 우리는 그 비극을 잊고 치렁치렁 큰 잎을 단 이국적인 야자수와 눈덮인 백록담을 이고 있는 한라산과 푸르고 아름다운 바다로 제주도를 소비한다. 하지만 작가는 그들의 고통을 우리에게 들추어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가장 훌륭한 점은 빈틈없는 구성이다.

유서까지 쓰면서 언제고 자살하려는 경하의 고통은 눈 쌓인 벌판의 무덤들이 차오르는 물에 쓸려가는 거듭되는 악몽으로 이어지고 이는 땅에 심어진 99개 사람크기 통나무들을 눈이 내려 덮어주는 영상 프로젝트 기획이 된다. 이를 함께 하기로 한 친구 인선은 제주도에서 목공을 하다가 손가락 절단사고를 당해 서울로 실려와 접합수술과 치료과정으로 극한의 고통을 겪는데 경하는 인선의 부탁으로 지체없이 앵무새를 돌봐주러 제주도로 간다.

눈보라가 치는 제주도 중산간 깜깜한 숲속에서 죽을 뻔하고 헤매다가 가까스로 인선의 집에 도착하지만 새는 이미 죽었다. 물도 전기도 끊긴 냉골 집에서 경하는 인선을 만난다. 서울 병원에서 위중한 인선이 어떻게 제주도 집에 와 경하에게 자신의 부모가 겪은 4.3 사건을 말해주는가. 이는 17살 때 서울로 가출했을 때 사고로 병원에서 의식이 없었던 인선이 제주도의 엄마 집에 왔던 일로 논리적인 설명이 된다. 너무나 간절하면 영으로든 혼으로든 찾아간다고. 한강 작가가 그리는 환상은 붕 떠있지 않고 그 어떤 현실보다도 더 짜임새가 탄탄하다.

부모와 어린 동생의 처참한 주검을 목격하고 평생 고통당한 어머니와, 고문과 투옥으로 망가진 몸과 정신의 고통을 짊어진 아버지의 이야기가 엮어진다. 나약한 줄만 알았던 어머니는 뜻밖에 사태의 진상을 밝히려는 일에 앞장섰고 조용한 집념으로 찾아 수집해놓은 자료로 남아 그 비극을 증언한다.

​고통으로 일그러져 온통 잿빛 서사인 이 작품에서 단 하나 시원한 부분은 산 위의 돌기둥 장면이다. 어느 전설에서나 불난리나 물난리에 혼자서 구원받아 도망가는 착한 여자는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명령을 꼭 어기고 돌기둥이 된다.

“돌이 됐다고 했지. 죽었다는 건 아니잖아요? (...) 저건 그러니까 .... 돌로 된 허물 같은 거죠. (p.241)

“허물을 벗어놓고, 여자는 간 거야! (...) 산을 넘어가서 새 삶을 살았거나. 거꾸로 물속으로 뛰어들었거나... (...)

건지고 싶은 사람이 있었을 거 아니야. 그래서 돌아본 거 아니야?” (p.242)

​고통에 빠진 사람들에 대한 연민을 이기지 못하고 돌아보는 순간 돌기둥이 되어버린 여인에 대한 작가의 새로운 해석은 얼마나 신선한가.

메디치상 수상후 현지 출판사에서 프랑스어판을 들고 있는 작가 ⓒ 연합뉴스

​간결하면서도 아름다운 문체는 이 작품에 깊이를 더한다. 육지감옥에 수감된 아버지가 밤마다 그렸던 제주도 고향마을장면은 기막힌 고통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을 섬세한 묘사로 보여준다.

“어떤 밤에는 환하게 달이 뜨고, 그 빛을 받은 동백 잎들이 반들반들 윤이 났다고. 어떤 새벽엔 마을길 가운데로 노루떼와 갉이 번갈아 다니고, 폭우가 퍼부으면 새로 생긴 물길이 이 냇가로 쏟아져 흘렀다고. 반쯤 불탄 대숲과 동백들이 다시 울창해지는 걸 그렇게 지켜봤다고 했어. 밤새 취침등이 밝혀진 감방에서 그걸 보고 있다가 눈을 감으면, 방금까지 나무들이 있던 자리마다 콩알같이 작은 불꽃들이 떠 있었다고 했어.” (p.321)

‘작별하지 않는다’고 절대 잊지 말자고 작가는 이 비극을 작품 속에 영원히 박아 넣었다. 다 읽은 책을 가슴에 한참 안고 있었다. 이성에 많이 치우쳐 감성이 메마른 나에겐 좀처럼 있지 않는 일. ​

무엇을 생각하면 견딜 수 있나.

가슴에 활활 일어나는 불이 없다면.

기어이 돌아가 껴안을 네가 없다면.

(p.184)

​작가의 말이 맞다. ‘지극한 사랑에 대한 소설’이다.

이 작품은 2023년 12월 9일(현지시간) 올해의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을 수상했다.

 

 


최성혜

1982. 2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도서관학 학사

1982. 2 한국도서관협회 정사서

1981. 12 대한조선공사

2000-2015년 수능 영어 강사

2018. 11 용인시 문화관광해설사 영어담당 근무

2021년 용인일보 '책이 내게로 왔다' 오피니언 시리즈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