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을 읽는다, 외로워서

2025-01-10     최성혜

최성혜의 두근두근 인생 2막 【1】

은퇴하고 태어나 평생 살았던 서울에서 용인으로 이사 왔다. 그 핑계로 이런 저런 일로 엮여 있던 모임을 거의 다 끊었다. 사람들을 만나고 있으면 내가 여기서 지금 뭐하고 있나?’하며 멍하니 딴 생각만 하고 있었다. 재미가 없었다.

A는 이 모임에 앉아서 항상 다른 모임 사람들 흉을 본다. 그러니 그 모임에 가서도 이 모임 사람들, 내 흉을 보고 있겠지 싶으니 말을 섞고 싶지 않다.

B는 그 어떤 사안에도 할 말이 있다. 누가 한 마디 꺼내기가 무섭게 톡 끼어들어서 자기 지식을 길고도 길게 자랑한다. ‘이코노미스트지를 읽어보니.....’ 또는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이 단골멘트다. 아줌마들 앞에서 굳이 외국신문잡지를 언급해서 자기주장의 근거로 삼는 태도도 웃기고 원어로 읽었다는 국제정세가 진짜인지도 궁금하지 않다. 자기 생각도 아니고 읽은 걸 퍼 나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C는 만날 때마다 자신이 시어머니와 시댁식구를 얼마나 정성스레 대접하는지를 단 한 번도 빠뜨리지 않고 말한다. 정말 단 한번도! 얼마나 힘들면 저럴까 싶어 안쓰러워서 매번 말이 나올 때마다 뜨겁게 감탄해주고 폭풍 칭찬해주는데도 끝이 없다. 아직도 성에 차지 않는가보다.

D는 항상 성공한 자식들 자랑이다. 첫째는 일을 너무 잘해서 회사에서 이쁨받고 이번 인사에서 꽃보직으로 승진했다는 둥, 의사인 둘째에게는 명절 때 모이면 친척들이 이때다 하면서 돌아가면서 건강 상담한다는 둥. 딱히 말은 안했지만 자기 자식 힘들게 해서 밉다는 눈치다. 자기는 애들 키울 때 의사 시누이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자랑했으면서. 나 같으면, 명절 때 편히 쉬고 싶지만 도움을 청하는 사람을 외면하지 않는 자식을 볼 때, 난 한 거 없지만 아이는 잘 컸다고 뿌듯하고 기쁘겠지만 애당초 남들 앞에서 애들 얘기 꺼내지를 않는다.

최악은, E. 그가 하는 말에서 앞뒤가 맞지 않는 부분을 짚어 물어보면 그에 대한 대답을 하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아까 했던 말을 토씨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다시 말한다. 상대가 무슨 말을 하는지 듣지를 않는 건지, 아니면 남이 하는 말을 이해 자체를 못하는 건지 자기 말만 앵무새처럼 되풀이하는데, 더 나쁘게는 매사 가르치려는 말투까지 장착했다.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재빨리 도망가는 게 수다.

나도 그들보다 나은 게 하나도 없지만, 최소한 그런 사람들을 피할 권리는 있지 않은가. 얼마 남지 않은 인생을 체면치레로 낭비하고 싶지 않으니까. 그러다보니 더불어 말을 나눌 사람들이 없어 외롭다. 나이가 드니 새로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기도 어려워 그저 혼자 책에 푹 빠진다.

멕시코시티의 바스콘셀로스 도서관 Biblioteca Vasconcelos영화 '인터스텔라'에 나온 도서관 ⓒ julio lopez

책속에서 소설의 주인공과 이야기를 나눈다. ‘넌 왜 그랬어? 꼭 그랬어야만 했어?’ 묻기도 하고, '그래, 네 마음 알겠어.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라며 고개를 주억거리기도 한다. 함께 울고 함께 웃는다. 가끔은 작가와 다투기도 한다. ‘이건 앞뒤가 안 맞잖아.’ ‘이렇게 끝내다니, 너무 무성의한 거 아니야?’ 사회과학 책은 저자의 주장에 귀를 기울인다. 잘 이해해서 요점을 기억하려고 노력한다. 드물지만 저자에게 따질 때도 있다. ‘난 그 의견에 반댈세.’라며 반론을 제기하기도 한다.

이 세상에 책이 없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최성혜

1982. 2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도서관학 학사

1982. 2 한국도서관협회 정사서

1981. 12 대한조선공사

2000-2015년 수능 영어 강사

2018. 11 용인시 문화관광해설사 영어담당 근무

2021년~용인일보 '책이 내게로 왔다' 오피니언 시리즈 연재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