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순례길 명소 은이성지(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은이로 182),
김대건 신부의 순교 정신 되새겨
순례자들에게 열려있는 믿음의 길, 희망의 길, 사랑의 길이 되다
Q. 김대건 신부의 삶을 조명한 영화 ‘탄생’은 첫 사제인 김대건 신부님으로 첫 결실을 보았다는 사실을 기억하며, 성인을 공경함으로써 민족을 초월한 하느님의 사랑을 배우는 기회를 제공하였고, 조선의 근대를 열어젖힌 시대의 선각자, 청년 김대건의 삶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냈습니다.
그 어떤 성지보다도 의미가 큰 은이성지를 종교와 상관없이 오는 방문객들에게 성지순례를 통해 신앙을 배울 수 있는 어떤 변화와 접근이 필요할까요?
김대건 신부님은 가톨릭교회 안에서 성인으로 기려지는 인물입니다. 한국인 첫 사제로서 103위 순교 성인 가운데 첫 번째 인물로 꼽히며 신앙인들에게 김대건 신부님이 보여주신 신앙의 모습은 모범입니다. 그러면서 동시에 당시 폐쇄적인 조선 사회의 한계를 뛰어넘는 인류애의 정신과 박애 정신을 실천한 시대의 선구자적 모습 역시 가지고 계신 분으로서, 그러한 의미에서 2021년 김대건 신부님 탄생 200주년에 유네스코는 김대건 신부님을 기념 인물로 선정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김대건 신부님의 삶이 서려 있는 이곳 은이성지를 방문하시는 모든 분이 김대건 기념관의 방문을 통해 김대건 신부님의 삶을 묵상하고 그분 삶의 모습이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주는 많은 메시지를 잘 되새기는 기회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Q. 2023년 은이성지에서는‘김대건 기념각’복원사업을 추진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종교적 가치와 지역사적 의미의 배경과 의의를 설명해 주세요.
김대건 신부님 신앙의 요람이자 사제적 열정이 서려져 있는 이곳 은이성지는 김대건 신부님 그 이전과 그 이후에도 계속하여 가톨릭 신앙을 지켜온 거룩한 신앙의 장소입니다. 김대건 신부님 이후로 이곳 은이공소, 이후 남곡리 본당, 양지 본당으로 이어져 오는 그 시기 많은 프랑스 선교사와 한국 사제들이 사목활동을 해 오던 곳입니다. 그 가운데 1929년 김대건 신부님과 79위의 순교자들이 복자품에 오르는 시복식을 기념하여 제작한 김대건 기념각이 1940년대까지 보존되어 오다 유실되었습니다. 이에 은이성지에서는 김대건 신부님을 기리던 김대건 기념각을 복원하고 당시를 기억하는 어르신들의 소중한 기억을 구술사 자료로 정리하여 녹취록과 영상으로 제작하려고 합니다. 과거의 기억을 소중히 간직하고 그 기억을 후대를 위한 자료로 남겨 놓아 역사의 한순간이 될 수 있도록 은이성지는 준비하고 있습니다.
Q. ‘김대건 기념각’복원사업과 성모 경당 건립 및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을 현양하는 문화행사 등 순교 정신이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요?
몇 년 전, 코로나로 모든 일상이 정지되고 아직도 그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은 상황 속에서 많은 이들이 현실의 삶이 고되고 무거운 짐처럼 여겨져 허덕이며 살아가는 현실입니다. 그러한 가운데 특별히 김대건 신부님 다음의 말씀이 큰 의미로 다가옵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옥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던 순간에 신자들에게 보내는 마지막 편지글 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을 떠나는 것이 여러분 육정과 영혼의 대사에 어찌 거리낌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곧 여러분에게 나보다 더 착실한 목자를 상으로 보내 주실 테니, 부디 서러워하지 말고 큰 사랑을 이루어 한 몸으로 주님을 섬기다가, 죽은 후에 함께 영원히 하느님 앞에서 만나 길이 영복을 누리기를 천번 만번 바랍니다. 평안히 계십시오.”
이역만리 먼 타국에서 10년간의 고생 끝에 한국 첫 번째 사제로 서품받아 어렵사리 고국 땅에 들어와 사제로서 사목활동을 한 지 불과 1년 1개월의 시간 끝에 옥에 갇혀 죽음을 앞둔 순간, 김대건 신부님은 자신의 안위에 대한 걱정에 앞서 자신을 애타게 기다리는 신자들의 안위와 그들의 앞날을 걱정하십니다. 그러면서 신자들에게 한 가지를 당부의 말씀을 남기시는 데 그것은 다름 아닌 ‘큰 사랑을 이루어 한 몸으로 주님을 섬기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 가운데 저에게 특별히 ‘큰 사랑’이라는 말이 깊이 다가옵니다. ‘큰 사랑’이란 말은 ‘작은 사랑’을 전제로 하는 말로 이해됩니다. 작은 사랑과는 대비되는 큰 사랑. 그 사랑은 아마도 나만을 생각하는 그리고 내 주위만을 바라보는 편협한 사랑을 뛰어넘는 그래서 지금은 잘 보이지 않고 느껴지지 않으며 아직은 잘 깨닫지 못한 것이라 할지라도 큰 사랑의 관점에서 바라보면 믿음으로 볼 수 있고 들을 수 있는 그래서 다른 사람은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른 사람은 듣지 못하는 것을 들을 수 있는 사랑의 차원을 이야기하는 듯 느껴집니다. 그 사랑을 깨달아 알고 있던 신부님은 그 사랑의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이 처한 상황을 이해하며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내십니다. 그리고 굳건한 믿음으로 그 모든 시련을 견디며 신자들에게 그 같은 믿음을 갖게 되기를 간절히 당부하십니다. 김대건 신부님이 보여주신 이 큰 사랑을 잊지 않고 지금의 현실 속에서 그 사랑을 실천하고 삶을 증거하는 것이 바로 은이성지의 존재 이유이며 목적입니다. 이 사랑의 증거를 위해 은이성지는 앞으로의 계획을 구상 중이며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Q. 은이 성지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모방 신부님께 세례성사와 첫영성체를 받고 신학생으로 선발된 곳이며, 조선 최초 사제 서품을 받고 귀국한 김대건 신부님의 첫 사목활동을 한 곳인데요. 타이틀만 알고 오는 방문객에게 신부님께서 은이성지를 소개해 주신다면?
은이성지는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님이 소년 시절 부모님과 함께 와서 정착한 곳으로서, 당시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던 소년 김대건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선교 활동을 하신 첫 번째 선교사이신 프랑스 파리 외방전교회 소속 모방신부님으로부터 세례성사를 받음으로써 김대건 신부님의 신앙이 시작되었던 곳입니다. 모방 신부님은 당시 천주교가 박해받던 시기 목숨을 걸고 선교 활동을 하시던 중, 프랑스 선교사로서 조선 땅에 복음을 선포하는 자신 역시 곧 순교하게 될 것임을 직감하고 열심히 한 신앙을 가진 집안의 자제 셋을 신학생으로 선발하여 마카오 파리 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로 유학을 보내 신학 과정을 받게 하여 한국인 사제를 양성하기로 합니다. 이때, 소년 김대건이 신학생으로 선발되고, 이미 신학생으로 선발된 최양업과 최방제와 함께 중국인 길잡이의 도움을 받아 마카오까지 걸어서 유학길을 떠나고 그곳에서 9년간의 신학 과정을 이수하고 세 소년 가운데 김대건 안드레아가 1845년 8월 17일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한국인 첫 사제로 사제서품을 받게 됩니다. 은이성지에 복원된 김가항 성당이 바로 중국 상해 김가항 성당을 그대로 복원한 성당입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그 뒤에 조선 땅으로 귀국하여 은이 교우촌과 미리내 교우촌을 돌아다니며 사목활동을 하시고, 1년 1개월의 짧은 사목활동 후, 1846년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하시는데, 고초골 출신의 17살 어린 이민식 빈첸시오가 신부님의 시신을 수습하여 자기 가족의 선산이었던 미리내에 이장하여 묘를 쓰게 됩니다. 이렇게 본다면, 은이성지는 소년 김대건이 세례를 받음으로써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곳이며, 신학생으로 선발되어 유학을 떠나기 전 부모님과 작별 인사를 했던 곳, 사제로 서품받은 성당을 그대로 복원한 곳이며, 사제가 되어 사목활동을 했던 곳, 순교하신 후 시신이 이장되었던 이장로로써 김대건 신부님의 신앙의 시작이요 마침이며, 사제의 열정이 서려져 있는 곳이라 할 수 있습니다.
Q. 김가항 성당은 1845년 사제 서품을 받은 곳으로 원래 중국 상하이 김가항에 있었던 성당으로 근대사에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은이성지 내 김가항 성당이 용인시 향토 유적 제71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역사적 의의를 짚어주신다면?
김가항 성당은 17세기 중반 중국 상해 김가항에 있던 민가를 개조해 만든 성당으로, 1841년에는 중국 남경교구의 주교좌 성당이었으며, 바로 그곳에서 1845년 조선교구 3번째 교구장이었던 페레올 주교님의 주례로 한국인 첫 사제 김대건 신부님의 사제서품식이 거행되었던 곳입니다. 그 성당이 2001년 상해 정부의 도시개발 계획에 따라 철거되게 되었는데, 이를 알게 된 한국천주교 주교회의에서 은이성지에 김가항 성당을 복원하도록 결정을 내리고 성전이 철거되기 전, 성지 초대 전담 신부인 안병선 신부님이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하고 철거되는 과정에서 나온 건축 부재를 배로 실어 와, 김대건 신부님 순교 170주년이 되는 2016년 은이성지 김가항 성당을 복원하게 됩니다. 복원 중, 상해 김가항 성당에서 가져온 기둥 4개, 대들보 2개, 동자주 1개를 그대로 사용하여 복원하였으며, 상해 김가항 성당을 최대한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데에 가장 큰 중점을 두었습니다. 이 같은 역사적 의의를 기리고자 용인시에서는 은이성지 김가항 성당을 용인시 향토 유적지로 지정하고 많은 시민이 이 성당을 방문하고 그 역사적 가치를 되새길 수 있도록 해 주었습니다.
Q. 박해 시대 은이 교우촌, 고지도, 신앙생활상을 보여주는 천주가사, 십자가, 상본 등 역사 자료와 유물이 전시된 기념관에서 꼭 봐야 할 유물을 소개해 주세요.
은이성지 김대건 기념관은 두 개의 부분으로 구성되어있는데, 첫 번째는 김대건 신부님의 생애를 중심으로 김대건 신부님과 은이성지가 어떠한 관련이 있는지를 설명해 줍니다. 두 번째 부분은 김대건 신부님의 가족이 은이 교우촌으로 이주해왔던 1827년 그 이전부터 천주교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도망쳐 이곳 은이 마을에서 교우촌을 형성하고 신앙생활을 유지해 오던 가운데 신자들이 사용하였던 유물들을 전시해 놓은 곳입니다. 그 유물 중에는 신자들이 기도하면서 보면 성경책과 기도문, 그리고 미사를 거행할 때 사용하던 제구들과 여러 상본 그리고 사진 자료들의 일부가 전시되어있습니다. 그 유물 모두가 박해 시대부터 신앙을 지켜온 초기 한국천주교회 신자들의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는 아주 소중한 유물들입니다. 그 중 무엇 하나만을 꼭 집어 말할 수는 없겠으나 개인적으로 사제인 저의 관점에서 의미 있는 유물을 꼽는다면, 1930년대 은이공소 신자들이 어려운 상황에도 십시일반 정성을 다하는 모습에 감동한 주교님께서 공소 미사를 위해 필요한 제의를 제공해 주심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쓴 공소회장의 편지를 꼭 읽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영화 <탄생>이 인기를 끌면서 은이성지 도보 순례길에 관한 관심이 더더욱 높아졌다.
우리 삶의 목적지는 각자가 다르지만, 성찰과 치유의 순례길에서 지친 마음을 달래며 되살아나는 진정한 나를 만나고 신앙과 믿음을 연결한 문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김대건 신부의 숭고한 순교 정신을 잇는 은이성지 전담 신부이자 메신저 이상훈 (바오로) 신부의 끊임없는 기도는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의 치유를 부르는 순례길로 인도하며 변화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