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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회 라자로의 날 행사, 이용훈(마티아) 천주교 수원교구장의 감사패 전달
용인시 '삷의 이야기가 있는 집', 고향 땅 전북 남원시 홈실로 이전

제54회 라자로의 날 행사, 이용훈 천주교 수원교구장이 무릎을 꿇고 박청수 원불교 교무에게 감사패를 전하고 있다.
제54회 라자로의 날 행사, 이용훈 천주교 수원교구장이 무릎을 꿇고 박청수 원불교 교무에게 감사패를 전하고 있다.

 '삷의 이야기가 있는 집 ' 아담한 삶의 터전, 추억이 서린 작은 집에서 18년을 지내던 원불교 박청수(88) 교무가 용인시와 작별을 고한다. 대퇴부골절로 휠체어 생활을 이어온 지 어언 2년, 다시 찾은 기자의 방문에 변함없는 온기로 두 손을 모아 합장하며 맞아주었다. 햇살에 일렁이는 여윈 얼굴이었지만, 오히려 그 눈빛의 중력은 더욱 짙어져 있었다(본지 기사 ‘박청수(朴淸秀) 교무, 한국의 마더 테레사’ 23.3.22).

가톨릭평화신문에 특집으로 실린 원불교 박청수 교무 /가톨릭평화신문
가톨릭평화신문에 특집으로 실린 원불교 박청수 교무 /가톨릭평화신문

성 라자로 마을과의 50년 동행

원불교 박청수(88) 교무가 천주교 한센인 시설인 성 라자로 마을을 50년간 도운 공로로 감사패를 받았다. 성 라자로 마을은 1950년 6월 무의탁 한센인들의 치료와 완쾌한 이들의 사회복귀를 돕기 위해 천주교가 처음 설립한 구호사업 기관이다. 박 교무는 1975년 한센인들이 모여 살던 성 라자로 마을에 왔다가 외국인 수녀들이 봉사하는 모습을 보고 봉사를 시작했다. 한센인 후원금을 마련하기 위해 15년 동안 직접 담양 창평 엿을 팔아 수익금을 기부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박 교무는 특히 한센병 환자들의 공동 생일인 2월 9일에는 원불교 강남교당 교도들과 함께 생일 케이크, 용돈, 음식 등 선물을 들고 성 라자로 마을을 방문하기도 했다. 종교를 초월해 나눔을 실천해 온 박 교무는 60년 가까이 세계 55국 어려운 이웃을 도와 ‘마더 박’이라 불리는 박 교무는 “내가 성 라자로 마을을 돕는 일이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종교 간의 갈등과 불화의 골을 메우는 데 보이지 않는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한국의 마더 테레사 박청수 교무(성직자)
'한국의 마더 테레사 박청수 교무(성직자)

교육·사회사업

서울 강남교당 교무를 마지막으로 50년간의 현역 교역을 마무리하고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문수봉 아래 헌산중학교 옆에 터를 잡아 2007년 개관하였던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은 2024년 12월 ‘지역사회에 교육적 가치 제공과 지역문화 거점화 기여, 학생들에게 삶의 의미와 가치를 모색하게 함으로써 긍정적 변화를 일으킬 수 있게 했다’라는 공적을 인정받아 용인시로부터 지역 문화예술 발전 공로 표창을 받았다.

박청수 교무의 현재 삶이 숨 쉬는 곳,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은 촌음을 아끼며 치열하게 달려온 인생, 나라 안팎에서의 봉사는 대안학교로 이어져 지난 2002년 전남 영광의 성지 송학중학교에 이어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에 헌산중학교를 설립하였다. 또한 탈북 청소년을 위한 대안학교, 한겨레중·고교를 열었다.

박청수 교무의 삶은 진정한 헌신과 청빈한 삶의 아름다운 귀감이 아닐 수 없다. 90을 바라보는 긴 세월을 맑은 신앙과 타인을 위한 연대로 일관한 그녀의 발자취는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준다. 세상을 "받든" 삶은 박 교무의 세계관을 함축한다. 한 줌의 재가 되어도 그 모든 순간을 경건한 봉사로 채우는 종교인의 모습, 타인의 아픔을 자신의 것처럼 여기는 깊은 공감 능력은 가슴 뜨거운 숭고함으로 경이로움을 넘어 실천적 교훈을 준다.

영생서원(永生誓願)
영생서원(永生誓願)

영생서원(永生誓願)

거실 한쪽 벽에 영생서원(永生誓願)이 붙어있다. ‘성불제중(成佛濟衆), 한반도(韓半島), 일원대도(一圓大道), 정녀선서(貞女宣誓), 무아봉공(無我奉公), 순일무사(純一無私)’는 원불교에서 가르침과 그가 평생 지켜온 신념이다.

“후회 없는 삶을 살았고, 다음 생, 그다음 생에도 한반도에서 태어나 정녀의 몸으로 원불교 교무가 되어 사람들을 섬길 것입니다. 공(公)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당연히 저를 희생해야겠죠. 거짓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말입니다.”

매 순간이 빛날 수 있음을 증명하는 말씀이며, 종교적 신앙이 어떻게 일상의 성스러움으로 구현되는지 보여준다. "당신은 진정으로 살고 있는가?"라는 이 질문 앞에서 우리 모두 잠시 숙연해진다. 그녀의 유산은 단순한 감동이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에게 던지는 영혼의 메아리가 된다.

나무 천수천안 南無千手千眼 관세음보살!

천 개의 눈으로 천 개의 손으로 보살피는 하늘 사람!

나무청수보살 마하살!

(법정 스님 편지에서)

"나의 인생에서 미리 계획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세계 오십오 개국에 관심을 두고 도왔던 것은, 내가 그 나라 그곳의 사정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로서는 돕지 않고서는 참고 견딜 수 없어서 도왔다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북인도 히말라야 3,600m 고지 설산 라다크(Lasdakh)에서 10년 동안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킬링필드의 땅 캄보디아에 지뢰를 제거하며, 18만 9천 명의 환자가 혜택을 볼 수 있었던 과정에서 일어난 수많은 기적 같은 이야기들, 나라마다 한 일을 연보로 밝히고, 도왔던 일의 내용과 그에 맞는 사진을 함께 전시해 훗날 세상에 작은 도움이 되도록 공유하고 있다. 무엇보다 그 여정이 더 값진 것은 종교와 정치, 국적의 경계를 넘는 발자취다.

내 영혼, 산에 기대어 (박청수 지음)
내 영혼, 산에 기대어 (박청수 지음)

저술과 정신적 유산

박 교무는 요즘 자신이 저술한 7권을 차례로 재독(再讀) 하고 있다. 7권의 작품을 다시 펼쳐보며 새롭게 발견하는 통찰과 위로는, 마치 정신적인 등산과도 같다. 그동안 잃어가던 마음의 중심을 다시 찾고, 위안과 힘을 얻는 소중한 시간이다. 마치 익숙한 산길을 오르더라도 계절마다 다른 풍경을 만나는 것과 같이 독자들에게 전했던 것과 같은 깊은 울림이 이번에는 저자 자신의 마음에도 다시 피어오르고 있음을 느낀다. 진정한 글은 시간이 흘러도 변함없이 마음에 다가오는 그런 힘이 있다. 산을 오르노라면 조급하고 협소했던 마음이 이내 너그럽고 담대해져 천심(天心)이 회복되던 그날처럼... 자신은 드러난 산악인은 아니어도 산과의 인연을 50년도 넘는 세월이라고 헤아린다. 자기 인격 어디엔가는 산의 기운이 묻어 있다고 믿는다. 지금도 용인 문수산 자락이 고맙다는 박 교무는 “나의 철옹성(鐵瓮城) 같은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에서 노령에 이렇게 적멸보궁(寂滅寶宮)에서 살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은혜롭고 감사하다”라고 말한다.

수필과 칼럼은, 1985년부터 2016년까지 여러 매체에 기고한 글들과 최근의 일을 기록한 글들을 연도별로 정리한 것이다. 우리 이웃들의 삶의 지혜가 담긴 글, 계도(啓導)를 위한 글, 선한 사람들과의 아름다운 만남을 다룬 글 등 소재와 주제가 각기 다른 53편의 짧은 에세이다. 특히 최근에 쓰인 세 편의 글에서는, 교당 은퇴 후의 생활과 삶의 태도, 거처인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에서의 소소한 일상을 엿볼 수 있다.

소외된 이웃들에 대해 꺼지지 않는 관심과 사랑의 열정, 그 경이로운 힘의 원천은 무엇이었을까요?

어머니의 가르침을 평생 간직하고 살았다는 박청수 교무, "딸아, 너른 세상에 나아가, 많은 사람들을 위해 일해라" 그러고 보니 지난 사랑의 발자취엔 '너른 세상'과 '많은 사람'들이 늘 있었습니다.

세월이 한해 한해 더하고 자연스레 육신도 쇠하여 가면서 박 교무는 내가 아닌 남을 위하여 더 너른 세상을 위하여 이생에 완전 연소의 삶을 꿈꾼다. 두 손 모아 기도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것, 전쟁과 불평등, 기후 재앙으로 고통받는 아이들을 생각하며 최근 책 인세 전액을 '청수나눔실천회'에 기부하는 등 청빈한 삶을 지속하고 있다.

전북 남원시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의 건립 기공식
전북 남원시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의 건립 기공식

전라북도 남원시로의 귀향과 새로운 도전

용인시를 떠나 남원시로 돌아가는 여정은 단순한 고향 귀향이 아니라 받들며 사는 삶이다. 고향 홈실마을에서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 기공식을 했다.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은 용인특례시를 떠나 박 교무의 출생지인 전라북도 남원시 홈실에 세워진다. 

전시관은 2,435㎡ 대지에 450㎡ 건축면적으로 전시관 2동과 사무소, 법당, 생활관 등 4개 동으로 구성되며, 자연환경과 지형을 반영한 설계로 방문객들에게 다양한 자연경관을 제공할 예정이다. 삶의 이야기가 있는 집의 설계를 맡은 김인철 전. 중앙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는 김옥길기념관, 웅진씽크빅, 어반하이브, 호수로 가는 집으로 건축가협회상, 김수근 문화상, 서울시 건축상을 받은 건축계의 거목이다.

박청수(朴淸秀) 교무와 필자
박청수(朴淸秀) 교무와 필자

90세를 앞둔 지금도 "다음 생에도 한반도에서 태어나 봉사하겠다”라는 간절한 서원을 밝히며, 정신적 유산을 계속 쌓아가고 있다. 기도와 명상의 실천으로 하루하루를 연소한다. 산수유심(山水唯心)의 철학으로 체화한 내면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열정이 결합한 청수(淸秀) 정신! 개인적 성찰이 어떻게 공적 가치로 승화될 수 있는지 보여주는 살아있는 교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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