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계에서 ‘아이돌’이란 표현을 최초로 사용한 6인조 그룹 밴드 아이들(IDOL)의 독집으로 1971년 성음제작소에서 발매했다. 오랫동안 일반 대중에게는 존재조차 알려지지 않았던 이 음반은 사실 한국 ‘아이돌 음악’의 뿌리를 찾는 데 굉장히 소중한 사료다. 록 마니아 사이에서는 한국 록의 숨겨진 희귀 음반으로 필수 수집 아이템일 만큼 전설적인 음반이다.

아이들(IDOL) LP 앞면 ⓒ조대안 소장 
아이들(IDOL) LP 앞면 ⓒ조대안 소장 

게이트폴드 재킷 앞면에는 6명의 앉아있는 사진이 있다. 윗줄 왼쪽부터 김영호(색서폰), 김태흥(드럼), 허경(베이스), 아랫줄 왼쪽부터 최이철(보컬, 기타), 박병무(키보드), 이인호(기타)다. 뒷면에는 멤버들의 서있는 사진과 수록곡들이 나와있다. 재킷을 펼치면 양면에 곡 목차와 가사 그리고 당시 연주 사진들이 있다.

최이철은 음악적 재능을 타고났다. 미8군에서 재즈 트럼펫 연주자로 활약했던 그의 아버지 최경용은 수원고등학교 음악교사였고, 어머니는 미8군 가수 출신으로 홍콩에서 탭댄서로 유명했던 이계원이다. 최이철에게 음악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은 트럼펫 연주자인 작은아버지 최상용이다.

음악 가정에서 성장한 최이철은 17세 때 허경 등 음악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했다. 이들은 1969년부터 미8군 프로덕션 유니버샬 소속으로 미8군 무대에 섰다. 1시간짜리 패키지 쇼인 <데니스 쇼>가 이들의 데뷔 무대였는데, 멤버들은 당대의 미국 인기 만화 캐릭터인 ‘개구쟁이 데니스’로 분장해 미군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6개월 후 탁월한 연주능력을 인정받자 이들은 화양으로 전속사를 옮겨 당시 미8군 무대에서 천재소녀로 불리며 최고의 인기를 누린 박활란의 백밴드로 <박활란 쇼>에서 활동하기도 했다.

아이들(IDOL) LP 뒷면 ⓒ조대안 소장 
아이들(IDOL) LP 뒷면 ⓒ조대안 소장 

미8군 무대에서 음악 신동으로 이름을 날린 최이철은 미8군 AFKN 방송에도 출연할 정도였다. 이때 최이철은 웨스 몽고메리(Wes Montgomery)의 음악을 접하면서 리듬이 좋은 흑인 음악에 빠져들었다. 칙 코리아(Chick Corea), AWB 등의 음악에 충격을 받은 그는 곧 흑인 펑키 리듬의 추종자가 됐다. 당시 이들이 펑키 음악을 연주한 미8군 클럽은 늘 흑인들로 가득 찼다. 1970년대 미국 밴드들은 펑키 음악을 하면서 랩을 잠깐씩 넣는 경향이 있었다. 최이철도 그런 식으로 무대에서 랩을 국내 최초로 시도했다.

1년동안 미8군 무대에 활동하면서 기량을 쌓은 최이철은 부산 등 지방 무대에도 서면서 이화여대 이교숙 교수에게 화성학을 배우고 이판근에게 재즈의 기본을 배웠다. 1970년에는 미8군 무대를 떠나 서울 명동의 오비스 캐빈, 닐바나 등 클럽 무대에서 밴드 활동을 시작했다. 그때 인연을 맺은 선배 재즈 드러머 김대환의 주선으로 6인조 록 밴드 ‘아이들'을 결성하게 되었다.

이 음반에는 비지스(The Bee Gees), 닐 다이아먼드(Neil Diamond), 비틀스(The Beatles)의 팝, 올리버(William Oliver)의 발라드, 템테이션스(The Temptations)와 에드윈 스타(Edwin Starr)의 모타운 소울, 그리고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와 게스 후(The Guess Who)의 하드록까지 온갖 장르가 다 담긴데다가 가요인 「꿈을 꾸리」, 「그 사람 떠나 가고」, 「바람아!」와 가곡인 「보리밭」도 들어있다. 좋게 보면 다채로운, 나쁘게 말하면 중구난방인 이런 음악은 미 8군 패키지 쇼의 영향을 받은 1960-70년대 한국 그룹사운드에게는 일반적이었다.

이 음반을 녹음할 당시 멤버들의 나이는 만 20세가 채 안 된 미성년자였는데, 모타운 소울과 싸이키델릭 록, 하드 록을 능숙하게 다루었다. 가장 놀라운 곡은 모타운 소울을 번안·커버한 「War」이다. 엇박이 들어있는 변칙적 리듬은 선천적 감각이 없으면 소화하기 힘든데, 더구나 합주하기에는 난이도가 꽤 높은 곡이다. 기타와 보컬을 맡은 최이철의 비중이 크긴 하지만, 베이스(허경)와 드럼(고(故) 김태흥)이 만들어내는 탄탄한 리듬 파트는 여느 밴드에서는 볼 수 없는 높은 수준이다.

따라서 이 음반은 단지 희귀하다는 이유만으로 소중한 음반은 아니다. 이 음반에서 시도된 연주는 소울, 펑크, 퓨전으로 이어지는 중요한 흐름의 기원이기 때문이다. 당시 열악한 환경으로 대부분의 레코딩이 너무 급하게 졸속으로 이루어져 이 밴드의 실력이 연주의 완성도로 충분히 드러나지 못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최이철은 아이들 이후 조용필, 김대환과 함께 <김 트리오>를, 오승근(보컬) 등과 함께 <영 에이스>를, 김명곤 등과 함께 1974년 <서울 나그네>를 거쳐 마침내 1978년 밴드 <사랑과평화>를 탄생시킨다.

총 12곡을 수록한 이 앨범의 가치는 음악적 완성도보다는 사료적 가치에 있다. 1970~1980년대 한국 록 역사상 가장 뛰어난 밴드 중 하나로 평가받는 사랑과평화의 수준 높은 음악은 이 앨범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최이철 음악의 뿌리가 된 이 음반은 발매 43년만인 2013년 리듬온에서 LP와 CD로 재발매했다.

아이들(IDOL) 독집, 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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