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없었다. 첫 소설집부터 한강 작가의 작품을 출간 순으로 읽어나가는 '한강 읽기'의 여정에 동참하는 것이.
대학 시절 처음 『여수의 사랑』을 읽었던 기억이, 선명하지는 않아도 강렬하게 남아있었다. 소설마다 가족을 잃고 지독한 고독을 견디는 인물들의 삶이 고통으로 다가왔다. 내 안의 숙제를 해결하는 것만으로도 버거웠던 나는 소설 속 그들을 외면할 수밖에 없다. 약 20년 후 부커상 소식에 다시 펼쳤던 『채식주의자』는 더욱 처절했다. 일상적 폭력에 저항하며 스스로 나무 되기를 선택한 영혜를 나는 여전히 감당하지 못했다. 이 두 번의 경험은 한강 작가의 소설에 대한 보이지 않는 벽을 내 마음속에 더욱 높이 쌓아 올렸다.
그런 내게도 한강 작가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경이로운 사건이었다. 한림원에서 담담히 "한강!"이라고 발표하는 장면을 보면서도 믿기지 않았다. 우리나라 작가의 작품 세계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존재감을 드러냈다는 것이 감격스러웠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품을 번역 없이 고스란히 읽을 수 있는 첫 경험의 기회가 내 앞에 활짝 피어났다. 너무나 읽고 싶었다. 동시에 피하고 싶었다. 제대로 읽고 싶지만 소설 속 고통을 대면할 용기조차 없어 숨고 마는, 나는 나약한 인간이었다.
망설이고 망설인 끝에 '한강 읽기'의 여정을 시작했다. 책 읽기에 진심인 이들에게 기대어 가보기로 한 결정이었다. 20대 초반 젊은 한강 작가의 열정이 담긴 첫 작품집 『여수의 사랑』부터 첫 장편 소설 『검은 사슴』, 『그대의 차가운 손』과 여전히 두려웠던 『채식주의자』를 지나 『바람이 분다, 가라』, 그리고 『희랍어 시간』과 『소년이 온다』, 『작별하지 않는다』까지…. 한강 작가의 자취를 좇듯 90년대 중반으로 돌아가, 지금 이 순간에도 글쓰기로 삶을 끌어안으며 살아가고 있을 한강 작가의 오늘을 향해 한 작품 한 작품 읽어갔다.
출간 순으로 소설을 읽었을 뿐인데, 작가의 생생한 숨결이 느껴졌다. 그는 소설 쓰기라는 방식으로 자신의 삶을 치열히 살고 있었다. 그가 품고 있는 절실한 문제의식이 소설이 될 수밖에 없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한강 읽기'의 시간을 통과하는 동안, 속울음을 참는 여리고도 단단한 마음 하나가 씨앗처럼 내 안에 심겼다. 그 마음은, 나의 아픔을 비추어 도통 보이지 않는 타인의 고통에 다가가려는 애씀, 외로운 이에게 가만히 내미는 조심스럽고도 따뜻한 손길이었다. 그 손길은 책을 읽는 우리 모두의 마음까지 가만히 어루만졌다. 그럴 때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차올랐다. 오랜 세월을 지나 비로소 한강 작가를 만난 것이었다.
제주로 떠난 문학기행에서 『작별하지 않는다』를 함께 읽고 이야기 나누며 '한강 읽기'를 마무리했다. 그러나 그 끝은 또 다른 여정의 시작이었다. 열 명의 저자들이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기만의 문학기행을 떠난 것이다. 여수, 강원도 산간 지역, 광주, 미시령, 수유리의 화계사와 원대리 자작나무 숲, 미술관. 그리고 고통스러운 과거와 닿지 않은 미래까지. 자신이 아껴 읽은 소설 속 장소와 시간 속으로 걸어 들어가,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을 겹쳐 한강의 작품을 다시 한번 내밀하게 만났다. 그 특별한 경험이 모여 책 『한강 문학 기행』이 되었다.
나는 소설 『희랍어 시간』 속 수유리의 오랜 사찰 화계사로, 짧지만 긴 여행을 다녀왔다. 용인에서 서울 수유리로 떠나는 것이, 타고난 길치이자 방향치인 나에게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게다가 화계사에 가기 전날, 변기에 빠뜨리는 바람에 휴대폰이 먹통이 되어서 얼마나 걱정이었는지.
그대로 뒀다가는, 다 큰 성인 하나가 서울에서 미아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신도 알았던 것일까. 다음 날 아침 휴대폰은 무사히 켜졌고, 불안한 와중에도 내비게이션 어플만큼은 제대로 작동이 되어, 홀로 화계사를 찾아갈 수 있었다. 비 내리던 여름날, 화계사에서 보낸 잊을 수 없는 하루 또한 『한강 문학 기행』에 담겨 있다.
『한강 문학 기행』이 보다 많은 이들을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한강의 작품 세계를 누구보다 아끼는 분도, 한강의 소설이 어렵게 느껴지는 분도, 여행을 좋아하는 분도, 혹은 여행이 귀찮아 책 속 여행을 더욱 은밀히 즐기는 분도. 이 책을 통해 한강 작가의 작품 속을 즐겁게 여행할 수 있다면 참 좋겠다. 다 읽고 나면, 지도에는 없지만 오롯이 존재하는 그의 작품 세계가 하나의 거대하고도 섬세한 여행지로 남게 될 것이다.
일상의 반짝이는 순간을 수집해 글로 풀어내는 에세이스트.
<일희일비 북클럽> 운영과 에세이 강의 등으로 독자들과 꾸준히 소통하며, 삶의 풍경들을 세심하게 기록하는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오늘도 나를 대접합니다》, 《한강 문학 기행》(공저)이 있다.

대가의 작품을 읽고 비평하기란 엄두가 안 날 것 같아요. 팬이라 할지라도 말이죠.
그러나 작가님의 글 속에서 문장으로 저너머 계속 닿으려는 간절함이 전해지는 것 같았어요.
희랍어 시간이 더 좋아졌고요.
작가님의 고민과 글이 더없이 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