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어송라이터, 기타리스트. 작곡·작사·편곡자, 교육자 출판인 등 음악인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는 이정선. 1973년 발표한 ‘섬소년’을 시작으로 대중 앞에서 나타난 이정선은 자신이 직접 부근 곡 이외에도 이광조의 ‘오늘 같은 밤’을 비롯해 이문세. 봄·여름·가을·겨울, 한영애, 정종숙, 남궁옥분, 선우혜경 등 많은 가수들의 히트곡을 작곡했다. 그뿐만 아니라 최백호, 양희은, 양희경, 전인권, 박은옥&정태춘, 조하문, 최병결, 한돌 등 많은 유명가수들의 편곡자로서도 활동했으며 서울예대에서 10년, 동덕여대에선 15년 등 30년 넘는 교수 활동을 통해 수많은 제자들도 배출했다. 또한, ‘이정선 음악사’라는 음악 전문 출판사를 설립해 많은 음악교재를 출판했다.
이정선은 정상의 음악가로서 많은 사랑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소위 이전 세대의 ‘원로급 뮤지션’들 중에선 최고의 학벌을 자랑한다. 서울대 출신인 이정선은 한양대 대학원에서 ‘실용음악 교육의 문제점과 개선 방향의 모색:전문대학 실용음악과정을 중심으로’라는 논문으로 석사, 성균대학교에서 ‘한국대학 실용음악교육제도의 발전과정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지난 9월 한전아트센터에서 열린 ‘신촌블루스 40주년’ 기념 공연에서는 ‘신촌블루스’ 창립자의 자격으로 엄인호와 함께 무대를 장식했다. 신촌블루스는 이정선의 음악 인생에 있어 또 다른 세계이다. 통기타(어쿠스틱기타)를 치며 노래하다가 한계를 느껴 변화를 꾀하려고 만든 팀이 신촌블루스였기 때문이다. 그가 일렉트릭 블루스에 빠져 활동할 때라 음악가 이정선의 서사를 더욱 두툼하고 각별하게 만드는 데 일조했다. 예전 신촌블루스 활동 이후 엄인호와 함께 무대에 설 때가 거의 없었다는 그는 지난 공연을 시작으로 앞으로 신촌블루스와 활동을 할 것을 암시했다.
매너와 겸손을 겸비한 이정선은 지금까지 유연한 마인드로 음악에 매진하며 음악인으로서의 덕목이 무엇인지 알 수 있게 표본이 되어주는 음악가이다. 또한, 새로운 조류에도 유연한 편이다. 종심(從心)을 넘어선 나이임에도 유튜브를 통해 ‘이정선의 천천히 배우는 기타교실’이란 기타 전문채널을 개설한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시대가 바뀌었고 새로운 매체가 주류인 시대에 우리도 이에 적응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다음 시대엔 또 다른 무언가가 나올 수도 있으며 그땐 또 거기에 적응해서 가듯……. 기타를 배우는 사람은 많았지만, 끝까지 배우는 사람은 드물죠,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가르치는 선생님 때문이 아닌가? 하는 제 나름의 결론을 얻게 되었지요, 그래서 가르치는 입장(선생)이 아니라 배우는 사람의 입장에서 채널을 진행해보고 싶었습니다. 1곡을 하더라도 배우는 사람이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하자는 컨셉입니다. 한마디로 일반 대중이 좀 더 쉽게 기타를 배울 수 있는 쪽에 중점을 두려는데 채널 설립의 목적이 있습니다. 기타를 배우는 데 특별한 비결은 없습니다. 책이건 유튜브건 배우는 데는 자기에게 막는 방법을 찾는 게 중요합니다.”
이정선이 음악에서 제일 중요하게 강조하는 게 바로 자신만의 개성(오리지널리티)이다. 대학에서 강의할 때부터 자신의 티칭 포인트로 설정해 학생들에게 강의했다. 이러한 개성을 바탕으로 현재 솔로 활동 외에 ‘통소리’라는 팀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통기타의 ‘통’과 ‘소리’를 합친 ‘통소리’는 기타 이외에 또 다른 매력이 물씬 풍기는 악기 구성의 인스트루멘탈(기악) 팀이다. 이정선을 비롯해 김택윤(기타.리코더), 박재형(기타.만돌린), 김원중(크로마하트), 윤소영(베이스) 등 5인조로 구성된 팀이다.
“리코더, 크로마하프, 만돌린 등 악기임에도 사람들이 악기로 잘 취급하지 않는 것들을 중심으로 하는 연주 중심의 팀입니다. 아이에서 할아버지까지 남녀노소가 함께 즐기는 음악을 하자는 것을 창단 모토로 했습니다. 그래서 저희 팀 레퍼토리 역시 민요, 동요, 영화음악 등 멜로디가 예쁜 곡을 주로 연주하고 있습니다.”
이정선을 여전히 곡 쓰기를 계속하고 있다. 아직 공개하지 않은 곡이 200여 곡 가까이 된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 노인의 소외를 다룬 묵직한 주제는 물론, 식사하러 갈 때 뭘 먹을지 고민하다가 ‘아무거나 먹자’에서 힌트를 얻은 ‘아무거나’ 등 가벼운 주제의 곡까지 장르에 국한을 두지 않고 그날의 일상에서 생각나는 주제를 선택해 꾸준히 노래로 담아가고 있다.
“안 그래도 소리가 많은 세상인데 여기에 제가 소음하나 더 섞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앨범을 구매해 듣던 시대가 아니란 것도 발매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 중 하나입니다. 음원이라는 보이지 않는 형태로 뭘 한다는 것도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그래서 무대 활동에 더 집중하려고 합니다. 큰 무대보다 카페나 클럽 등 작은 규모의 공연장에서, 비록 관객은 적지만 관객들과 1:1로 마주 보며 대화하는 듯한 느낌의 무대를 더 선호합니다.”
현재 이정선은 어쿠스틱과 일렉트릭 등 40대 이상의 기타를 소장하고 있다. 단지 전시용이 아닌 상황에 따라 계속 바꿔가며 연주하는 연주용이다. 어쿠스틱 기타는 ‘콜트’를 비롯해 ‘깁슨’. ‘마틴’ 등을 애용한다. 일렉트릭 기타는 최근 ‘이스트만’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앰프는 ‘펜더트윈’ ‘리버브’ 등 주로 펜더 계열을 좋아하는 반면, 마샬 앰프는 본인 취향이 아니라고. 묵직하게 가라앉는 소리를 좋아하는 성향에 마샬 앰프의 쏘아대는 소리가 그가 추구하는 음악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이유인 것 같다.
“저는 두툼한 소리를 좋아합니다. 싱글 코일보다. 험버커 픽업을 선호합니다. 그러다 보니 두툼한 소리를 내면서도 가벼운 기타를 찾던 중 이스트만 기타와 인연을 맺게 되었습니다. 요즘에 다시 빈티지 음악을 들으려고 합니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소리가 날아가듯 가벼워졌어요. 묵직하게 가라앉는 소리를 들으려면 옛날 음악만 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아직도 연습에 매진하고 있다는 이정선은 한 번 기타를 잡으면 손가락이 아플 때까지 연습할 정도로 30분 연주 연습하고 10분 쉬고 다시 30분 연주하고 10분 쉬는 패턴을 10회로 연습한다. 요즘 그가 매진하고 있는 건 통기타로 플라멩코 기타 연습을 하는 일이다. 플라멩코 기타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 스페인을 방문할 정도로 플라멩코 기타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현지에서 플라멩코 기타를 배우며 전용 플라멩코 기타로 몇 대 사 올 정도다. 플라멩코 기타 주법이 통기타를 칠 때 알게 모르게 응용이 되곤 한다고 한다.
“플라멩코는 리듬 자체가 하나의 음악이므로 여러 가지 리듬을 연습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소리의 여운이 많으면 좋은 기타라고 하지만 플라멩코 기타는 다릅니다. 여운이 없어야 플라멩코 기타를 더 잘 연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음의 여운이 많으면 연주할 때 음들이 뭉개져 버릴 수 있습니다.”
만화를 좋아한다는 그는 무협 만화의 열혈 애독자다. 무협 만화는 스토리 전개가 뻔하지만 죽도록 무공을 연마해 최고의 고수가 되어가는 과정이 음악을 하는 과정과 너무 비슷해 자신도 모르게 빨려들게 된다며 옅은 입가를 미소를 띤다.
음악인으로서는 음악에 철저하지만, 삶을 살아가는 데는 전형적인 낙천주의자이다. 산다는 것에 대해 특별히 고민해 본 적이 없다는 그는 고민해서 될 것이 아니란 생각에 항상 오늘에 최선을 다해 즐겁게 살아간다는 긍정의 마인드를 갖고 있다. 하지만 “음악은 결국, 살면서 내가 좋아하고 가장 잘할 수 있는 것”이라고 전한 그의 마지막 멘트는 그가 평생 살아온 시간을 압축한 표현이다.
”나에게 음악은 삶이다.(Music Is my lif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