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야 이로운가?

무상법현스님

 

이런저런 일로 속상하고 화나고 우울해서 이런저런 말로 울부짖어도 조금 시원하거나 좀 더 시원하거나 할 뿐 온전히 바라는 만큼 되기는 참으로 어렵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그래서 좀 해결해보려고 종교가 생겨났다. 물론, 불교도 생겨났다. 불교는 부처의 가르침 또는 가르침을 따르는 종교다. 부처는 싯다르타로 출발해 마음의 현상을 잘 살펴 깨달았다 해서 부처(Buddha)라 한다. 그가 속한 석가족 출신의 성자(muni)라 해서 석가모니라고 부른다. 

제대로(本), 잘(善), 행복(淸)하게 살기 위해서는 지키고(戒), 살펴서(定), 슬기롭게(慧) 살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가르침을 따르는 이들이 태어난 인도에서도 많았다. 옆으로 또 위아래로 나눠서 동남아로, 중국으로, 한국으로, 일본으로 요사이는 세계로 퍼졌다. 슬기롭게 산다는 것은 지키고 살펴는 삶이다. 나눠 보면 그렇고 모아보면 나를 살피고 너를 살피는 짝 마음(配慮)으로 사는 것이다. 

처음에는 집중하여 잘 살핀다는 뜻에서 사마타(samatha), 위빳사나(vipassana)라 불렀다. 나중에 동네를 달리해 동북아시아에서는 그침(止)과 봄(觀)으로 불렀다. 그 뒤에는 모든 것이 스스로 또 함께 주고받고, 생각하는 말(話)을 제대로 알아야겠다는 현실적인 필요에 의해서 말씀 참선 곧 간화선(看話禪)이 쓰였다. 화두참선(話頭參禪) 곧 말씀을 주제로 하는 명상이다.

초기에는 어떻게 살아도 복잡하기 이를 데 없어서 괴로운 삶 자체를 벗어나는 것이 누구나 느끼고 인지하는 목표였다. 

세월이 흐르고 다른 동네와 발달기에서는 조금 다르게 느끼게 되었다. 특히 다른 민족이 50여 개나 되어 백 년을 지나는 정권, 왕조가 없다 보니  윗사람의 말씀, 아랫사람의 말을 보고 들어서 본뜻, 제 뜻, 행간에 숨은 뜻, 진정성을 알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였고 지금도 중요하다. 그런 흐름이 신라, 고려, 조선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다. 여러 뜻과 흐름이 있어도 쭉 흘러오는 것은 지혜 곧 슬기로운 삶을 살게 하는 방법으로 명상 곧 참선을 수행하는 방법이다. 

조선 고승인 서산대사의 후학 청매인오선사가 쓴 부정적인 십무익송(靑梅印悟,1548∼1623)을 나의 긍정적인 십익송으로 바꿔보았다. 읽어보고 함께 하시면 어떨까?

마음 되새겨 말씀 보면 이익 서너 배
본질 없음 알면서 참선하면 꼭 깨치리
바른 법 믿으면 괴로움(苦行)도 이롭고
자만심을 꺾어내면 공부가 이뤄지네
스승 덕 갖추면 뭇삶 건진 이득 절로절로
안으로 덕 갖추면 밖으로 위의 있고 도움받네
마음 믿음직 알차면 어떤 말도 이롭고
원인 귀히 여겨 열매보고 도 닦으면 꼭 이루니
마음 뽐내지 않으면 배움마다 쓸모 있고
부드럽게 늘 대하면 누구랑 살아도 편안하다"

(心必返照 看經有益 必達性空 坐禪有益 必信正法 苦行有益 必折我慢 學法有益
必人師德 濟衆有益 內必實德 外儀有益 心必信實 巧言有益 重因望果 求道有益
心不驕慢 有識有益 一生無角 處衆有益 ,無相十益頌) 

 

 

무상법현(無相法顯) 스님
무상법현(無相法顯) 스님

현) 서울 열린선원장, 인천공항2청사 세계선원장, 평택 보국사 주지, 일본 나가노 금강사 주지.

저서.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 매화처럼> <법현스님과 함께하는 법구경><그래도, 가끔> 등
<틀림에서 맞음으로 회통하는 불교생태사상> 논문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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