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팔 룸비니동산은 신비로운 대평온의 밀림이다.
아침 안개꽃이 피어나면 출렁이고 파도치던 욕망의 가슴이 스스로 잠자는 대지의 어머니이다.
고타마 싯다르타(Siddhartha Gautama)는 기원전 623년 룸비니(Lumbini) 동산에서 태어났으며, 이곳은 곧 순례 장소가 되었다.불교를 공부하거나 종교로 믿고있는 신자라면 이곳을 순례하는 것을 소중히 생각하고 있다. 필자도 불교신문 여태동불교신문 기자와 함께 붓다의 탄생지인 룸비니동산에 머물며 생과사에 대한 의문을 풀고자 이곳을 순례하며 대성석가사 법신스님을 만났다.
룸비니는 몇 세기 동안 방치되다가 1895년 독일의 저명한 고고학자 포이러(Alois Anton Feuhrer)가 추리아 산맥의 작은 언덕을 배회하다가 큰 석주를 발견하였다. 포이러는 주변 지역을 조사하고 발굴하여 벽돌로 된 사원과 사원 안에서 싯다르타의 탄생 장면을 묘사한 사암 조각을 발견하였다. 학자들은 마야데비 사원이 하나 이상의 사원 또는 불탑 위에 건축되었으며, 따라서 아소카 불탑 위에 세웠을지도 모른다고 지적하였다. 마야데비 사원 남쪽에 푸스카르니(Puskarni)로 알려진 유명한 연못이 있다. 이 연못은 마야데비가 출산하기 전에 목욕한 곳으로 추측된다.
1995년에 부처가 태어난 정확한 지점에서 표지석을 발굴하여 1997년 룸비니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으며, 2003년에 마야데비 사원이 불탄일에 대중에게 공개되게 이르렀다.
거의 남북방향을 장축으로 삼고 있으며, 동서방향 길이는 1600미터이며, 남북방향 길이는 4500미터이고 면적은 720만 평방미터 정도이다. 상상했던 우리네동산이 아니라 넓디넓은 끝이 보이지 않는 평야지대나 마찬가지다.
성지는 남북방향으로 3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고 마야데비사원을 중심으로 한 남측은 신성한 정원구역으로 정하고, 중앙부는 사원구역으로 정하여 중앙부를 관통하는 곳에 남북방향으로 수로를 2000미터 길이로 배치하였다. 그리고 북측지역은 지원시설 호텔 등이 있는 "새룸비니 마을"로 구획되었다.
이넓은 광야에 네팔정부는 관광과 부처님 탄생지를 세상에 알리고져, 전세계 각나라의 사찰들이 자신들의 양식으로 신축할 수 있게 토지사용권을 임차해주었다.
룸비니동산에는 일본, 중국, 베트남, 티베트, 싱가폴 등 각양각색의 양식으로 지어진 전세계 사찰의 전시장이다.
한국불교를 대표해서 법신스님이 약 2만 평에 이르는 토지 위에 황룡사 9층석탑을 모방하여 대성 석가사를 신축, 룸비니 동산에서 제일규모가 큰 사찰을 창건했다.
이렇다할 건축도면도 없이 스님이 직접, 그리고 현지주민들과 함께 시멘트 콘크리트를 비벼서 맨손으로 일군 기적이었다.
법신스님은 한국인 최초로 네팔정부에 귀화를 신청했다고 귀뜸하신다.
필자가 룸비니를 찾았을 때에는 외관만 완성되고 내부는 아직 공사가 이루어지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모두 완공되어 전세계인이 찾는 성지가 되었다.
특히 대성 석가사에서는 전세계인을 대상으로 저렴한 가격에 약1500명 정도의 템플스테이를 동시에 받을만큼 룸비니동산에서 규모가 크며,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가이드역할을 하는 참고마운 사찰이다.
식당입구에는 동네어린이들을 돕기 아이들이 채취해 온 오미자를 팔아주는 코너가 있어 필자도 한봉지샀다.
법신스님과 함께 약10일간 카투만두, 포카라, 마차푸차레 기슭 등 네팔 전역을 여행했다.
오랜시간이 지났어도 동자승같은 해맑은 스님의 미소가 잊혀지지 않아 지금도 룸비니동산의 대성석가사가 그립다.
세월이 흘러도 히말리야 설산은 그대로 거기에 있고 나는 늙어가지만, 마음만은 항상 히말리야의 미소를 추억하며 또다시 찾아갈 부처님탄생지 룸비니동산의 평화 등불을 상기시켜본다.
단국대 경영학 석사
필리핀국제문화대학명예철학박사
한국고승유묵연구소장
중광미술연구소장
용인한국근대문학관 건립 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