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모르는 이야기
【1】
할머니는 늙은 오이를 길게 채를 썰어 소금에 절여 물기를 짜낸 다음 오이를 무쳤다. 할머니, 오이에 소금을 왜 뿌리는 거야? 그래야 오이가 울거든 사람처럼 오이도 울어야 쓴맛이 없어진단다. 너도 울고 싶을 때 많이 울어라. 그래야 꼬들꼬들 맛이 있단다.
【2】
아버지가 어릴 적 이야기를 해 주셨다. 동네에 키가 크고 빼빼 마르고 어디서 자고, 어디서 사는지 모르는 머리를 빡빡으로 밀고 다니는 젊은이가 돌아다녔다고 한다. 중얼중얼 뭐라고 혼잣말을 하면서 다녔다고 한다.
그때는 집집마다 대문 밖 담장 옆에 음식물 버리는 통이 있었는데 썩고 냄새나는 거기에 손을 넣어 휘휘 저어서 손에 잡히는 것을 입으로 가져가던 사람이었다고 한다.
어느 날인가 아버지는 할머니가 해 준 호박 부침을 마당에서 먹고 있었는데 그가 나타나서 먹고 싶은 듯 한참 아버지를 서서 바라보았다고 한다. 더럽고, 두렵기도 했지만 할머니가 호박 부침을 한 접시 내 주었더니 가지 않고 그걸 먹으면서 여전히 무어라 무어라 중얼거렸다고 한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 엄마, …… 호박, ……무지개, ……색깔” 뭐 그런 말들을 중얼거렸다고 했다. 그러다 ”종이, 종이, 종이,“ 해서 아버지는 쓰던 공책과 연필을 가져다 주었더니 하얗게 웃었다고 했다.
”그리고 쭈그려 앉더니 공책에 글을 썼어. 한글도 있고 아주 이상한 글자들도 많았어. 계속 중얼거리며 오래오래 글을 썼어. 그리고 공책 한가득 글을 쓴 것을 내게 주면서 ‘읽어, 읽어’하고는 가버렸어“
그의 글씨체는 멋졌다고 아버지는 말했어. 아버지는 아버지의 아버지에게 이게 무슨 말이냐고 물었더니 이건 한자고 이건 일본어고 이건 영어고 이 글자는 잘 모르겠다고 하면서 글의 내용은 모른다고 하셨대. 그러며 이 사람 글씨체가 아주 좋다고 말씀하셨대. 동네 돌아다니는 그 빡빡이 글씨라고 하니 아버지의 아버지는 그 사람이 공부하다가 미쳤나 보다고 쯧쯧 혀를 찼대.
그러다 어느 날은 하굣길에 골목에서 그를 만났는데 그가 아버지를 아는지 모르는지 모르겠지만 무섭고 더러워서 피해서 가려는데 그 냄새 나는 놈이 갑자기 달려들어 아버지를 안았대. 입에서 썩은 냄새가 말도 못하게 났대. 숨이 막혔대. 그래서 기겁을 하고 소리를 지르며 풀려나서 도망을 쳤다고 해. 그리고 그 후 몇 번 그를 보았고 그럴 때마다 아버지는 무서움에 다른 길로 집에 갔대. 그리고는 언제부턴가 그의 모습이 사라졌다고 해.
세상에는 참 잊혀지지 않는 얘기가 있단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언뜻 생각나는 일이 있단다.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3】
“야, 그 샤프 멋진대?” 친구가 좋다고 하면 나는 친구에게 샤프를 준다. “동화책 재밌니?” 내가 좋아하는 책에 관심을 갖는 친구에게 나는 동화책을 준다. 운동화가 참 멋지다고 했을 때 나는 운동화를 주지는 못하고 며칠 친구와 운동화를 바꿔 신은 적도 있다. 엄마는 그러는 나를 헤프다고 했다. 하지만 친구에게 뭔가를 줄 때 내 마음에 날개가 삐죽 돋아나는 것 같다. 마음이 간지럽다.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2008년 『내일을 여는 작가』 등단
2009년 구상문학상 젊은 작가상 수상2014년 천강문학상 수상
2013년, 2018년 아르코 창작기금 수혜
현) 용인일보 편집위원
시집 - 『간잽이』 『자주 먼 것이 내게 올 때가 있다』 『사랑이고 이름이고 저녁인』 『드디어 혼자가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