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물화의 초고봉이요 수묵산수화의 시조라 불리는 동진 시대의 인물 고개지(顧愷之, 344~406))는 뛰어난 것이 세 가지가 있었으니 재주가 뛰어나 재절(才絶), 그림 솜씨가 뛰어나 화절(畵絶)이요, 어리석음이 뛰어나 치절(癡絶)이라 불렸다.(진서(晉書). 그도 이 세 가지 재주를 주변에 자랑하고 다녔다.

누가 스스로 자신이 어리석다는 것을 드러낼까 싶지만 간서치(看書癡)를 호로 삼은 이덕무(李德懋, 1741~1793)가 있었고 45년 뒤에 태어난 추사 김정희의 180과 인보 중에는 치절(痴絶)이라는 낙관이 있다. 천하의 추사도 작품을 쓰며 항상 이 단어를 새겼다는 것이다.

호남화단의 거두 허유(許鍊,1808~1893)는 서른 살에 스승 추사를 만났다. 어느 날 저녁 허유는 큰 사랑으로 불려가 차를 함께 마시고 나서 추사는 허유 앞에 글씨가 쓰여 있는 화선지 조각을 꺼내 보였다. 거기에는 차분한 예서체로 '소치(小癡)'라고 적혀 있었다. ​

"내 그동안 자네의 호를 하나 지어놓았지. 옛날 진나라에 호두장군(虎頭將軍)이라고 박학한 고사(高士)가 있었는데, 그가 재절(才絶), 치절(癡絶), 화절(畵絶)의 삼절이었어. 중국 황대치(黃大癡)의 호도 거기서 유래한 것이네. 소치라, 거기에 비해서 어때 너무 작은가?"

제자에게 “작은 어리석은 자”라는 호를 지어준 스승 김정희도 “압록강 동쪽으로 소치를 따를 만한 화가가 없다.” “소치 그림이 내 것보다 낫다.” 하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3절(三絶)이란 세 가지 재주에 아주 뛰어난 사람을 일컫는다. 무릇 어느 문인화가 시, 화, 서 등 남들이 부러워하고 존경할 만한 재주를 가져 3절로 불린다면 큰 영광이다. 고개지는 재절을 바꿔 문절(文絶), 화절(畵絶), 치절(癡絶)의 3절인 셈이다. 다른 분야도 아니고 어리석다는 것을 재주로 인정하여 절(絶)의 하나로 인정하다니 중국스러운 것이기는 하다. 어리석은 걸 재주라고 하는 이가 있다니 하겠지만 어찌 생각하면 어느 한쪽 분야에 치열하게 몰두하여 마치 세상일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깊은 깨달음과 경지를 얻은 상태가 바로 치절(癡絶)의 상태가 아닐까. 그의 일화를 보면 그림을 맡긴 사람이 훔쳐 가놓고 나중에 그림이 없어진 것을 알고 그림이 어디 갔냐고 물었다. 훔쳐 간 이가 “신묘한 그림이 신령과 통하여 변화해서 날아간 것이다. 이는 사람이 신선이 되어 올라가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하자 의심하는 기색이 없었다고 한다. 정말 신령과 통해 날아간 것으로 믿은 건지, 아니면 사실을 알면서 속아준 건지는 오직 그만이 알 일이다.

모두가 자기의 재주를 자랑하는 시대이다. 보통 어리석다고 하면 자존심이 상해 불쾌해야 맞다. 치(癡)는 한자로 아는 것(知)이 병들었다는 뜻이다. 미치광이라는 뜻도 있다. 그래서 사물의 이치나 도리를 모른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불교에서는 탐진치(貪瞋癡)를 3독(三毒)이라 하여 경계한다. 그러나 극과 극은 통하니 그 경계에 끝까지 다다르면 시작함과 같음이다. 허공의 끝은 어디이며 허무의 끝은 어디인가. 원상(圓相)의 끝은 시작과 같지 않은가. 도(道)는 비어 있으나 다함이 없다고 한 노자(老子)의 가르침과도 통한다.

장강치절(長康癡絶)은 세상살이가 그렇게 바보스러울 수가 없다는 말이다. 장강 고개지는 재치가 뛰어나 치절이 아니라 바보처럼 순수하고 천진난만하여 치절이었던 것이다.

글씨는 황곡양충(黃鵠壤蟲)을 융합해야 하는데 나는 이에 미치지 못한다며 겸허했던 졸박청고(拙朴淸高)한 추사의 작품을 보며, 마치 어린이의 장난같이 고졸한 미친 중이며 걸레를 자처했던 중광의 그림과 글씨를 보며 그들이야말로 치절의 극치를 보여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새삼 나는 무엇이 남보다 뛰어날까 하니 귀가 얇아 속는 것이 뛰어나다고나 할까 보다.

 


최계철 
최계철 

1990년 동양문학 신인상 등단

현 공무원문인협회인천지회장, 인천문협회원

현 용인일보 문화에디터

시집 도두를 꿈꾸는 하루 외 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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