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성듀엣 라나에로스포의 1기 여성 멤버 출신인 은희(본명 김은희)는 화려한 패선이 돋보였던 포크가수였다. 챙이 넓은 멋진 모자를 쓴 은희의 사진이 똑같이 들어있는 음반은 두 가지가 있다. 1973년 지구레코드에서 발매된 초반은 <학창시절>을 타이틀곡으로 표시하고 모든 신곡을 만든 ‘백창민 작곡’이란 문구가 커버에 나와 있다. 같은 사진의 재킷에 <골든디럭스 20> 이란 문구와 <사랑해>와 <꽃반지 끼고>를 타이틀곡으로 한 음반은 재반이다.
초반은 은희의 노래 7곡과 라나에로스포 시절 노래 3곡으로 총 10곡이 수록되어 있다. 재반에는 은희의 초창기 히트곡들 20곡이 수록되어 있다. 재반에는 없는 희귀한 5곡이 수록되어 있는 초반은 쉽게 구할 수 없어 훨씬 고가에 거래되고 있다.
본명이 김은희인 은희는 1951년 제주도 모슬포에서 태어났다. 제주 남초등학교 시절, 방송국의 어린이 합창단원과 어린이 성우로 활약할 만큼 재능이 있었다. 뛰어난 예능소질로 입학금을 면제받고 제주여중에 진학한 그녀는 학교가 끝나고도 음악실에 홀로 남아 피아노를 연습할 만큼 음악에 빠져 들었다. 제주여고 때는 민속예술단의 일원으로 전국민속경연대회에 참가, 제주 해녀의 춤 솜씨를 뽐내기도 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중에 한국의 대표적인 중견 연기자인 고두심이 있다.
은희는 당시의 시대 분위기에 눌리지 않고 자유분방하고 당돌했다고 한다. 1968년 1월 가족들 몰래 여군에 지원하여 주변을 놀라게 했을 정도다. 서울에서 여군훈련을 거친 후 대구에서 육군 제2군사령부 소속 여군 타자병으로 근무했지만 여군생활에 싫증난 은희는 6개월 후 정기휴가로 나가서 귀대하지 않았고 이후 서울 예고로 전학하였다.
1970년 3월, 서울 예고를 졸업한 은희는 서울에서 무명가수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는 새롭게 결성된 이필원과 박인희의 혼성 듀엣 <뚜와에무와>의 인기가 높았다. 은희는 한민과 혼성듀오 <라나에로스포>를 결성하고, 대학가에 흘러 다니던 주인이 분명치 않던 <사랑해>를 타이틀곡으로 1970년 말에 음반을 발표하였다. 음반이 발표되고 몇 달이 지나자 <사랑해>는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또한 <사랑해>의 애절한 노랫말은 한 대학생이 백혈병으로 죽은 애인을 그리며 지은 곡이라는 애틋한 사연과 이 노래의 목소리가 은희로 알려지면서 더욱 관심을 끌었다. 나중에 한민은 '작사 작곡 모두 당시의 중앙대학교 학생인 오경운'이라고 밝혔다.
<사랑해>는 지금도 각종 모임에서 불멸의 연가로 애창되고 있다. 1972년 8월 평양에서 개최된 역사적인 최초의 남북적십자회담에서 우리측 이범석 수석대표와 북측 김태희 대표단장이 손을 맞잡고 <사랑해>를 부르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박정희 대통령이 <라나에로스포>를 청와대로 불러 치하했다고 화제가 됐다.
은희만큼 폭발적인 대중적 인기를 모았던 1세대 포크 여가수는 없었다. 1970년대 초반 발표되는 곡마다 트로트 가수들을 제치고 가요차트의 상위에 랭크되었던 통기타 가수는 은희가 유일했다. 단순하고 쉬운 멜로디에 애간장을 태울 만큼 달콤하고 상큼했던 그녀의 노래들은 학생층에 국한되지 않고 전 국민에게 폭넓게 사랑을 받았다. 약 3년 동안 활동하면서 독집 음반을 무려 37개나 냈으며, 5천 장만 팔려도 화제가 됐던 시절에 첫 독집음반 <꽃반지 끼고>는 50만 장이나 판매되었다고 알려진다.
학창시절 -백창민 작사·편곡
즐겁던 학창시절 다 지나가고
이제는 아빠되고 엄마 되었지
세월은 말이없고 추억만 남아 그시절 그리워하네
청운의 푸른꿈 이꽃 피던 시절
그때가 그리워라 언제다시 오려나
멋쟁이 사각모자 으시대면서
파란꿈 새겨보던 젊은 그 옛날
영원히 잊지못할 우정에 친구 즐겁던 학창시절아
청운의 푸른꿈 이꽃 피던 시절
그때가 그리워라 언제다시 오려나
멋쟁이 사각모자 으시대면서
파란꿈 새겨보던 젊은 그 옛날
영원히 잊지못할 우정에 친구 즐겁던 학창시절아
즐겁던 학창시절아 즐겁던 학창시절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