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래식 음악’에서 실력의 우위를 가늠하는 기준에 어떤 것이 있을까. 완벽한 기술, 감동을 주는 표현력, 설득력 있는 해석 정도를 떠올려볼 수 있겠다. 최근 들어 한국 연주자들의 해외 콩쿨 입상이나 해외 유수 오케스트라 입단 소식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수많은 경쟁자를 제치고 원하는 결과를 얻었을 때, 경쟁에서 이겼다는 기쁨도 있겠지만 자신만의 ‘개인적인’ 음악이 보편적으로 인정받았다는 성취감도 클 것이다. 스승의 가르침을 그대로 흡수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재능, 즉 음악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이는 감각과 정확하게 이해하는 지성 모두가 필요하다. 그리고 잘 훈련된 신체를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저명한 콩쿨 중 쇼팽 콩쿨을 떠올려보자. 폴란드 출신의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프레데리크 쇼팽을 기리기 위해 5년에 한 번씩 열리며 약 백 년의 역사 속에서 스무 명에 가까운 우승자가 배출되었다. 그렇다면 우승자들 중에서 또 한 번 순위를 매겨 우위를 가릴 수 있을까. 심사위원을 섭외해 음원 또는 영상을 기준으로 진행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렇다면 음악 콩쿨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마치 운동선수들이 실격 사유 없이 시간 단축을 목표로 올림픽에 나가는 것처럼,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인간 승리의 드라마 같은 것일까. 쇼팽 콩쿨에서는 참가자의 ‘해석’을 평가해야 한다는 규정이 나와 있으며, 쇼팽 작품이 지닌 고유한 스타일의 특징을 고려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경기나 경주와는 다르게 개인의 기록 경신이 아니라 ‘작품’과 ‘작곡가’라는 외부의 대상이 목표가 되는 것이다. 연주를 통해 그 시대, 그 사람이 가졌던 생각과 인생에서 탄생한 작품들을 탐닉하며 음악의 정당성을 추리해본다. 이 작업은 음악에 가치를 불어넣어 주면서 대를 이어 연구를 지속하도록 만든다. 완벽하게 정복하고 싶지만 불가능하다.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필자는 지난주에 두 명의 콩쿨 우승자 연주를 감상하고 왔다. 2025년 쇼팽 콩쿨의 우승자 ‘에릭 루’와 반 클라이번 콩쿨의 한국인 우승자 ‘임윤찬’의 연주였다.

11월 2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파지올리 피아노와 에릭 루 ⓒ손다영
11월 2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파지올리 피아노와 에릭 루 ⓒ손다영

에릭 루는 10년 전, 17세에 출전했던 첫 도전에 이어 두 번째 도전에서 끝내 우승을 거머쥐었다. 이미 4위로 한 차례 입상했었는데, 어느새 20대 중반의 프로 연주자가 되어 있었다. 10년 후, 한층 성숙해진 음악으로 쇼팽 콩쿨의 우승자가 되었다.

KBS교향악단과 지휘자 레너드 슬래드킨이 현대 작곡가 신디 맥티의 ‘순환(Circuits)’ 국내 초연을 선보인 뒤, 에릭 루의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이 이어졌다. 콩쿨에서는 예선과 본선 3차까지는 피아노 독주 무대로 평가를 받고, 마지막 무대에서 오케스트라와 협주곡을 연주한다. 홀로 좋은 음악을 펼치는 것도 중요하지만, 결국 함께 호흡하는 것이 중요하다. 독주자가 얼마나 세심하게 연구했는지, 지휘자는 독주자의 음악적 흐름을 파악해 오케스트라도 그 흐름을 따라갈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 자신만의 해석이 다른 사람과 만나 새로운 음악이 되는 과정을 즐기면서 ‘현재진행형’으로 음악이 완성되어 간다.

그는 콩쿨 때와 마찬가지로 파지올리 피아노를 선택했다. 맑고 부드럽게 번지는 음색은 겸손하면서도 따뜻한 음색 해석과 자연스럽게 어울렸다. 오케스트라 음향과 조화를 이루며 소박하게 피어나는 선율을 통해 연주자의 ‘해석’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협연이 끝나고 이어진 바흐 ‘골트베르크 변주곡’ 아리아 앵콜에서는 음악에 대한 순수함과 경외심이 고요하게 번져 나왔다.

타이중 국립 가극원에서 다니엘 하딩과 임윤찬 ⓒ손다영
타이중 국립 가극원에서 다니엘 하딩과 임윤찬 ⓒ손다영

그리고 지난 일요일, 대만 타이중 국립가극원에서 지휘자 다니엘 하딩, 산타 체칠리아 오케스트라, 그리고 임윤찬의 무대가 있었다. 이탈리아 오케스트라답게 롯시니 ‘윌리엄 텔 서곡’은 문화적 자부심이 고스란히 느껴질 만큼 압도적이었다. 이어서 임윤찬 피아니스트의 라벨 피아노 협주곡 연주는 생각하거나 판단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했다. 라벨이 미국 여행에서 느낀 향수가 재즈 화성과 선율로 발산된 작품에서 이 젊은 연주자는 결점 하나 없는 음색과 과감한 전개로 동료 연주자들과 관객을 매료시켰다. 단 두 마디를 연습하는 데 7시간이 걸리고 하루의 절반을 연습에 할애하는 그는, 심장을 강타하는 음악가가 되기를 원하며 아주 작은 단위로 음악을 나눠 마음에 와 닿으면 조금씩 연결하는 방식으로 연주자 자신과 끊임없이 소통한다고 한다. 음악에 대한 그의 헌신이 귀로 들리는 듯했다. 이어진 앵콜곡 ‘가장 아름다운 밤’은 12음기법과 무조 음악이 주목받던 시대에 자신만의 낭만을 써 내려간 코른골트의 초기 작품이다. 훗날 미국에서 펼쳐질 영화음악 인생에 대해 그는 아직 알지 못했겠지만, 그의 낭만적 스타일은 마지막까지 변함이 없었다.

두 젊은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통해 클래식 음악의 본질을 다시금 깨닫는다. 나 이외의 본질을 끊임없이 수렴하는 일. 사람을 이해하고 음악을 받아들이는 일은 경쟁이나 정복이 될 수 없으며, 끝없는 공부를 통해 한 발 나아가는 수행길 위에서 마주하는 ‘나’와 ‘사람’ 사이의 관계이자 만남이다.

 


손다영 바이올리니스트
손다영 바이올리니스트

손다영 아르케컬처 대표

단국대학교 음악대학 바이올린 전공 학사 졸업䟃
한양대학교 음악대학 바이올린 전공 석사 수료

현재 아르케컬처 무지카 클래시카 음악회(2022~), 금요반달클래식클럽(2022~), 용인일보 오피니언(2025~) 강연 및 기획공연 등 다양한 문화예술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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