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을 비는 그림, 동양화
세계 4대 박물관중 하나인 국립고궁박물원(國立故宮博物院)이 타이페이에 있다. 중국 국민당의 장제스가 국공내전에서 마오쩌뚱에 패하여 1948년에 대만으로 도망하면서 가져온 온갖 진귀한 보물들의 보고다. 그 중에서도 파리 루브르 박물관의 ‘모나리자‘급 인기를 누리는 작품이 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어서 경비원의 통제 하에 줄서서 차례대로 알현해야하는 그것은 바로 유명한 ‘옥배추‘, 한자로는 ’취옥백채(翠玉白菜)‘다.
흰색과 녹색이 함께 있는 한 덩어리의 옥으로 흰색부분엔 배추줄기를 녹색부분엔 배추이파리를 섬세하게 조각했다. 19cm 길이로 실제 배추보다 작아서 그렇지 안 그러면 진짜 배추인 줄 알고 뽑아다 김치 담게 생겼다. 게다가 푸른 이파리에는 더듬이도 있고 배의 주름까지 선명한 여치 한 마리까지 앉아있다. 최고로 정교한 솜씨에 감탄하긴 했지만 조각한 사람은 어떻게 이 옥을 보고 하고많은 사물 중에 하필 배추를 떠올렸을까 궁금했다.
박물관에 가서 동양화를 볼 때면 소재가 참 제한적이라고 느꼈다. 소나무, 대나무, 모란꽃, 사슴, 학, 고양이, 호랑이, 까치, 나비 등 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세상에 예쁜 꽃과 나무들도 많고 동물들도 종류가 다양한데 왜 천편일률적으로 몇 가지만 그렸을까? 조용진의 책 <동양화 읽는 법>은 그 물음에 답한다.
중국에서 시작된 동양화는 보는 그림이 아니라 읽는 그림이라고 한다. 그림으로 만들어진 상형문자인 한자를 쓰는 중국에서는 전혀 다른 뜻의 두 글자가 같은 소리가 나면(동음이의어) 함께 연상한다. 뭔가를 말하려 할 때 그것과 발음이 같은 다른 한자가 뜻하는 사물을 그림으로 그린다는 것이다.
학은 바닷가에 살지 않는데도 파도치는 바닷가에 학 한 마리가 거니는 그림이 있다. 학은 ‘제일’ 이라는 뜻이 있고 밀물 조와 왕조라는 뜻도 있는 아침 조와 발음이 같다. 그러므로 ‘조정에 일등으로 오르다’는 뜻으로 장원급제를 기원하는 그림이다.
서재에 걸려있게 마련인 책거리 그림은 가운데에 조그만 어항속의 금붕어가 있는데. 실은 금붕어가 아니라 ‘쏘가리‘다. 쏘가리의 한자는 ’궐‘인데 임금이 정사를 보는 집이 ’궐‘이다 그래서 임금 가까이 중요한 자리의 벼슬아치가 되기를 바란다는 뜻이다.
고양이와 나비가 함께 있으면 ‘모질도’다. 고양이 ‘묘’와 노인 ‘모’, 나비의 ‘접’과 노인 ‘질’은 중국어로 발음이 같다. 즉, 장수하길 기원하는 그림이다.
화가는 기원하는 글을 그림으로 바꿔 그렸다. 그림을 사는 사람이나 감상하는 사람도 그림을 보는 게 아니라 글자로 바꾸어 뜻을 이해하며 걸어두거나 선물로 주고받았다. 고상한 이상을 추구하는 정신세계가 아니라, 오래살기를, 복 많이 받기를, 장원급제해서 출세하기를, 이름을 널리 알리기를, 부자 되기를 열망하는 현실적인 내용이라니 대단한 기복주의자들이다. 중국에서 들여온 그림을 우리나라 화가들도 그대로 본 따서 그려 양반들 사이에 유행하면서 그 정신세계도 이어받았다.
용인의 등잔박물관에 있는 옛날 촛대의 바람막이에서 꽃, 나비와 박쥐문양을 보았다. 꽃이나 나비는 예쁘니까 그렇다 쳐도 시커멓고 음침한 느낌의 박쥐는 왜 무늬로 썼을까 했는데 의문이 풀렸다. 암컷박쥐의 한자인 ‘복‘이 행복의 ’복‘과 발음이 같기 때문에 복을 비는 뜻이다.
이제 대만박물관에 있는 옥배추의 의문도 풀렸다. 흰배추인 ‘백채’와 백가지 재물인 ‘백재’가 중국어로는 발음이 같아 흰배추는 온갖 재물을 뜻한다. 온갖 재물이 집안에 들어오기를 기원하는 이 작품은 부자에게 엄청나게 비싼 값에 팔려 월씬 더 큰 부자가 되는데 기여했을 지도 모르겠다.
최성혜

최성혜
1982.2.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도서관학 학사
1982.2. 한국도서관협회 정사서
1981.12. 대한조선공사
2000-2015년 수능 영어 강사
2018. 11 용인시 문화관광해설사 영어담당 근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