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어자五語者
- 동봉
가부좌로
앉아 있는데
금강경 제14장
이상적멸분에 실린
오어자가 떠오릅니다
一.
진어자眞語者시여!
당신의 말씀은 참되시나이다
사자의 울음에도
끄떡도 하지 않으시지만
풀잎을 흔드는
작은 바람결에도
함께 웃고 흔들려 주시는
당신의 말씀은 그러하시옵니다
二.
실어자實語者시여!
당신의 말씀은 실다우시나이다
칠흑같은 그믐밤을
반짝이는 별들로
수를 놓으시다가
새벽녘 여명이 올 때
소쩍새 울음에도 화답하시는
당신의 말씀은 그러하시옵니다
三.
여어자如語者시여!
당신의 말씀은 여여하시나이다
새벽 공기를 가르고
아침이 찾아와
햇살이 누리를 비출 때면
풀잎 위 자신의 신명을
무주상으로 보시하려는 이슬에게
'선재선재'라 한 마디 주시는
당신의 말씀은 그러하옵니다
四.
불광어자不誑語者시여!
당신의 말씀은 소박하시나이다
가마솥 삼복더위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치며
108배를 올리는 불자에게
시원한 석간수 한 사발을
살포시 웃으며 건네시는
당신의 말씀은 소박하시옵니다
五.
불이어자不異語者시여!
당신의 말씀은 다르지 않사옵니다
땅거미가 스멀거리며
대지 위로 내릴 때
숲속 나뭇가지를 타고
위로 오르는 까만 청설모에게도
저녁 인사를 거르지 않는
당신의 말씀은 다르지 않사옵니다
六.
무실無實이시여!
저희에게 보여 주신 법이
저희는 실인 줄로만 알았사옵니다
그러나 선물 상자를 열어보니
텅 빔 그 자체였나이다
다시 보니
선물 상자도 사라져 공空이었습니다.
무실無實이었던 것이지요
七.
무허無虛시여!
그러하오나
그 텅 빈 상자까지
사라진 그 자리에
아인중생수자我人衆生壽者의
꼴마저 떠난 무허無虛
그 무허의 광명이
여기 이렇게 빛나고 있나이다
- 동봉스님 《내비금강경》 441p~444p 中 -
동봉스님
서기 1953년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하대리에서 출생. 1979년 2월 해인승가대학을 졸업하고 91년 동국대 불교대학원 관리자과정 이수. 2018년 10월 윤동주 시문학상 수상으로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2020년 5월 태국 왕립 마하출라롱컨대학교에서 명예 교육학박사를 취득하였다.
- 저서 및 역서
《대각사상과 전개》, 《사바세계로 온 부처님의 편지》 ,《관음경 강화》, 《우리말 관음경》, 《현우경(비유의 바다)》 등
대한불교조계종 곤지암 우리절
광주시 도척면 시어골길 166-27 & 166-30
E-mail : kipoo255@hanmail.ne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