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혜의 하프타임, 책이 내게로 왔다【18】
내가 차별주의자라고?
무리짓고 편가르기 나아가서 차별하기는 인간의 본능인가? 인류는 원시인시절부터 부족한 재화나 기회를 두고 경쟁해왔다. 능력자들끼리 뭉쳐야 싸움에서 이기고 더 많은 전리품을 차지할 수 있었기에 약한 자는 소외되었다. 높고 편한 쪽에 속하려 하고 낮고 불편한 쪽에 속하지 않으려는 몸부림이 우리의 유전자 속에 남아 있다는 증거가 뉴스와 문학작품과 연구결과로 차고 넘친다. 유리한 편에 속해 많은 걸 누리는 사람들은 이 사회가 차별구조에 있다는 것을 모른다. 차별을 당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별한 적이 없다고 항변하는 우리들에게 저자는 ‘선량한’이란 수식어를 붙여 ‘차별주의자’라고 한다. 자신도 모르는 새 차별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 김지혜는 강릉원주대학교 다문화학과에서 소수자, 인권, 차별에 대해 가르친다. 그는 이 책에서 사회 곳곳에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며 행하고 있는 차별의 실태를 전방위적으로 꺼내어 우리의 눈앞에 보여준다. 우리가 몰랐거나, 알면서도 어쩔 수 없다고 치부했던 문제들을 진짜 어쩔 수 없는 거냐고 묻고 있다.
지하철 1호선에서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촉구 시위’로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역마다 타고 내리고를 반복하면서 6개 정거장을 가는데 1시간 40분이 걸려 많은 비난을 샀다. 저자는 시민들의 교통을 방해한 이 행동은 ‘범법행위’가 아니라 ‘시민 불복종’ 이라고 한다. 다수자의 결정이 소수자에게 불이익을 주고 있는데 합법적인 수단이 효과가 없을 때 공개적인 위법행위로 대중에게 알리는 것으로 일종의 ‘말걸기’라는 것이다.
흑인분장과 바보 영구를 보고 재미있다고 웃던 우리. 장애인들 앞에서 ‘내가 결정 장애가 있다’고 말하는 우리의 무신경을 짚어낸다. 사회에 만연한 비하성 유머를 농담이라고 가볍게 넘기지 말고, 웃지 못하고 들어야 하는 사람의 입장을 생각해보라고 한다. 우리사회가 신봉하는 능력주의는 동일한 기준의 평가를 기준으로해서 공정하다고 믿지만 사람들의 다름을 고려하지 않으므로 공정하지도 정의롭지도 않다고 말한다. 애당초 비장애인인 혜택을 누려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평가체계이기 때문이다. 미국 로스쿨에서 비영어권 학생들에게 1.5배의 시험시간을 주는 차별, 청각장애인에게 영어듣기평가시험을 면제해주는 차별, 비례대표 국회의원 50%를 여성에게 주는 차별은 오히려 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특별한 조치이며 이러한 ‘적극적 조치’가 여러 분야에서 시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나지 않았다.
우리는 상호간에 동등한 권리를 보장하겠다는 우리의 결정에
따라 한 집단의 구성원으로서 평등하게 되는 것이다.”
(206쪽)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며 누려왔던 많은 것들이 누군가에겐 당연하지 않았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모르고 한 차별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준다. 사회의 모든 차별을 자신의 탓이라며 개인의 능력으로만 해결하도록 종용하는 게 옳은지 반문한다. 이제, 차별적이고 정의롭지 못한 제도를 고치려는 노력에 목소리를 내고 힘을 보태자는 저자의 강력한 요청에 우리가 화답할 차례다.
최성혜
1982. 2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도서관학 학사
1982. 2 한국도서관협회 정사서
1981. 12 대한조선공사
2000-2015년 수능 영어 강사
2018. 11 용인시 문화관광해설사 영어담당 근무
2021년 용인일보 '책이 내게로 왔다' 오피니언 시리즈 연재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