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외로웠습니다
                    - 동봉


하이얀 달밤
맑고 잔잔한 호수에
달이 놀러와 얼굴을 씻고 가고
별들이 떼로 내려와
이야기 보따리 풀어놓고 갑니다

개구리도 첨벙
소금쟁이도 살폿
물방개도 사록사록 놀다 갑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시간이
호수에게
말 한 마디 조용히 건넵니다

"호수야 호수야!
난 어느 시간에 놀러 올까?"

호수는 말이 없습니다
호수에는 모습을 가진 자만이
올 수 있었는데
시간에겐 모습이란 게 없었거든요

시간이 외로웠습니다
모습이 없다는 게 아쉬웠지만
그에게는 그럴 힘이 없었습니다

그는 호수가
모습이 없는 그의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습니다

시간은 깨달았습니다
그에게는 보채고
채근할 권리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또 깨달았습니다
그가 없이는 호수도
호수를 사랑하는 달과 별과
개구리 소금쟁이
물방개까지도
결코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을요

그래서 시간은
콧노래를 흥얼거렸습니다
아으! 아으!
저도 모르게 춤을 춥니다
뭔가에 이끌린 듯
시간이 가볍게 몸을 흔듭니다

호수가 느낍니다
자기 옆에  누군가가 
함께 있다는 것을
그래서 호수도 춤을 춥니다
하이얀 비늘의
비단옷을 사붓거리며
자즈락 자즈락 흔들어댑니다

시간은 행복에 겹습니다
혼자 외로워했고
혼자 서러웠던 게
호수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달도 별도 받아 주고
개구리도 소금쟁이도
물방개도 다 받아주는 호수
자신이 없으면
안된다는 걸 아는 까닭입니다

호수에게
품었던
서운한 감정을
훌훌 벗어 던지는 시간

호수는 달빛을 받으며
별들과 얘기하면서
분홍빛깔 연꽃을
쑴북 쑴북 쑴쑴북 피워냅니다

 

 

 

동봉스님


서기 1953년 강원도 횡성군 갑천면 하대리에서 출생. 1979년 2월 해인승가대학을 졸업하고 91년 동국대 불교대학원 관리자과정 이수. 2018년 10월 윤동주 시문학상 수상으로 시인으로 등단하였으며 2020년 5월 태국 왕립 마하출라롱컨대학교에서 명예 교육학박사를 취득하였다.

- 저서 및 역서

《대각사상과 전개》, 《사바세계로 온 부처님의 편지》 ,《관음경 강화》, 《우리말 관음경》, 《현우경(비유의 바다)》 등

대한불교조계종 곤지암 우리절

광주시 도척면 시어골길 166-27 & 16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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