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혜의 하프타임, 책이 내게로 왔다【25】
권태의 덫
프랑스 루앙에서 태어난 구스타브 플로베르(Gustave Flaubert)는 1856년 처음으로 출간한 소설 「마담 보바리」로 대중의 인기를 얻고 프랑스 최고의 작가로 인정받았다. 노르망디에서 실제로 있었던 여인의 음독자살사건을 토대로 쓰여진 이 작품은 당시 여자의 불륜이 사회적으로 지탄받던 분위기에서 부도덕한 내용을 이유로 기소당했으나 무죄판결을 받아 더욱 유명세를 타게 되었다.
주인공 엠마는 수도원 기숙학교에서 연애소설을 탐독하며 낭만적인 사랑의 여주인공에 대한 동경을 품고 집으로 돌아오지만 현실은 그저 초라하기만 하다. 용케 농부의 딸로서는 최고의 선택인 의사, 샤를 보바리와 결혼하지만 ‘사자처럼 용맹하고 양처럼 유순하고 한없이 다정다감한 남자’와 ‘오래된 저택에 사는 왕비’를 꿈꾸던 엠마를 기다리는 것은 낭만이라곤 조금도 없이 평범하기 짝이 없는 남편과 사는 권태로운 시골생활 뿐이다.
샤를의 치료를 받은 후작이 초대한 호화로운 무도회를 어쩌다 한 번 경험한 엠마는 그 세계에 속할 수 없는 자신의 처지에 절망한다. 시골에 살면서도 도시의 사교계의 소식에 촉각을 세우고 최신유행의 온갖 물건을 사들여 장식하며 욕망을 채우기에 급급하다. 남편에게서 멀어진 마음의 틈새를 비집고 들어온 바람둥이 로돌포의 유혹에 엠마는 쉽게 넘어간다. “나에게 애인이 생긴 거야!”라며 사랑에 빠진 엠마는 오랫동안 밀회 끝에 마침내 아이까지 데리고 함께 멀리 도망가자고 로돌프를 조르기에 이른다. 하지만 애당초 엠마를 불장난 상대로만 여겼던 로돌포는 떠나기로 한 날 엠마를 배신하고 도망가버린다.
죽음 같은 절망에서 겨우 회복된 엠마는 다른 도시에 갔다가 청년 레옹을 만나면서 다시 사랑이 불타오른다.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 교습을 받는다는 핑계로 남편을 떠나 도시로 가서 레옹과 함께 지내는 꿈같은 하루를 위해 엠마는 사치스러운 치장과 최고급 선물과 호텔에 아낌없이 돈을 쓰며 큰 빚까지 지게 된다. 마침내 레옹과의 관계도 파국으로 치닫고, 자신의 불륜을 눈치 챈 약삭빠른 장사꾼의 간계에 넘어가 재산을 모두 차압당한 엠마는 남편 몰래 해결해야 했기에 돈을 빌리러 옛 애인들을 찾아 가지만 모두 거절당한다. 막다른 골목에 몰린 엠마는 독약으로 목숨을 끊어버리는데 남편은 아내가 왜 그래야했는지 끝까지 알아차리지 못한다.
이 소설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꿈꿔왔던 연애소설과 같을 수 없는 자신의 현실에 탄식하는 엠마의 모습이다.
“왜 나는 옷자락이 긴 검은 벨벳 옷을 입고 우아한 장화에 끝이 뾰족한 모자와 소맷부리에 장식을 단 남편과 함께 스위스 산장 발코니나 스코틀랜드의 산골집에서 애수에 젖을 수 없다는 말인가?” (58쪽)
이처럼 현실에 발을 딛지 못했던 엠마의 인생은 공허했다. 자신이 있는 자리는 보지 않고 늘 저 멀리 어딘가 있어 보이는 허망한 신기루만을 쫓아갔다. 엠마는 그토록 열렬하게 사랑한다 믿었던 두 남자를 사랑한 걸까? 낭만적인 사랑에 빠진 비련의 여주인공역인 자신의 모습만을 사랑했을 뿐이다. 플로베르는 현실에 닻을 내리지 못하고 허영과 몽상으로 방탕의 덫에 빠지게 된 여인의 내면 심리를 정확하게 묘사하면서 서서히 파탄에 이르게 되는 과정을 잔인하리만치 사실적으로 그려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마담 보바리」는 여러 번 영화로 만들어졌지만 가장 최근 소피 가르트 감독의 2015년 작품은 엠마 역에 미아 와시코브스카 (Mia Wasikowska), 레옹역에 에즈라 밀러(Ezra Miller)가 열연한 수작이다.
1982. 2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도서관학 학사
1982. 2 한국도서관협회 정사서
1981. 12 대한조선공사
2000-2015년 수능 영어 강사
2018. 11 용인시 문화관광해설사 영어담당 근무
2021년 용인일보 '책이 내게로 왔다' 오피니언 시리즈 연재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