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온 아들
코비드 팬더믹 사태로 인해서 오랫 동안 오가지 못하다가 얼마 전 미국에 사는 아들네 식구가 한 달의 일정으로 한국에 왔다. 아이들은 방학을 맞았고, 아들은 병원에서 휴가를 얻었으며, 며느리는 운영하는 샵을 매니저에게 맡기고 해서 모처럼 네 식구가 같이 한국에 나들이를 온 것이다.
아들은 국내에서 의대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후 미국에 가서 다시 시험을 보아 내과와 마취과 전문의 면허를 따고 미국국립암연구센터 등을 거쳐 지금은 I U(Indiana University) Arnett Hospital에서 의사 일을 하고 있다.
내 DNA를 물려받아서인지 어릴 때부터 싸돌아다니기를 좋아하더니 학창시절에 유럽을 여행하고, 공중보건의로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던 때에는 남극 세종기지에 근무를 지원하여 남극에서 일 년여를 근무하더니 군복무가 끝나자마자 미국으로 가버렸다.
타국에서 혼자서는 너무 외로울 것 같아서 부랴부랴 결혼을 시키고 며느리와 함께 미국으로 보내면서 나는 아들에게 “세계 최고 수준인 미국에 가서 세계 최고의 의사가 되어 돌아오라”고 당부했었다. 그 때는 “네”하고 대답을 잘하더니 지금은 마음이 변했나 보다.
내가 몸이 아파서 병상에 누워 있을 때 어느 순간 아들이나 며느리 그리고 손주들이 옆에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 때가 있었다. 그래서 아들한테 넌지시 귀국할 생각이 있는 지를 물었더니 아들은 “지금 한국에 가봐야 미국에서 받고 있는 대우나 보수를 받을 곳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며느리는 많은 사람들이 자식들 미국유학을 보내고 싶어 하는데 반대로 아이들 데리고 한국에 귀국하고 싶지는 않다며 최소한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갈 때까지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미국에서 살겠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오히려 우리 부부가 미국에서 사는 것은 어떠냐는 것이었다. 확실히 말하는데 나는 미국에 가서 살고 싶지 않다. 그 곳에 몇 번을 가보았지만 마음이 끌리지가 않는다. 친구도 없고 골프 말고는 무얼 할만한 것도 없으니 말이다. 그래서 아들이 미국에서 벌어서 매달 보내주는 얼마간의 달러에 만족하며 그냥 한국에서 살다가 죽기로 했다.
요즘은 미국에서 온 중1 손녀와 초5 손자를 데리고 다니며 한국의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볼만한 곳이나 재미있는 곳 보여주며, 여러 가지 한국 문화와 예법을 가르치고, 할아버지와 정을 붙이게 하느라 매우 바쁘고 힘이 들며 피곤하기도 하다. 아이들은 미국의 집에서는 엄마나 아빠와 한국어로 소통을 하지만 그 곳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한국어보다는 영어를 훨씬 편하게 사용한다. 저희들끼리 빠르게 영어로 대화를 하면 못 알아들어서 짜증이 나고, 한국말로 하라고 하면 어눌한 그들의 한국말에 짜증이 난다. 그러나 그 놈들이 정말 너무너무 예쁘다. 미치고 환장하게. 나는 손주바보다.
아들이 한국에 온 첫날 저녁식사 자리에서 아들이 한 말에 나는 작은 충격을 먹었다. 미국에서 듣는 한국 뉴스는 매일 정치하는 사람들의 싸움질, 노사간 · 빈부간 · 지역간의 갈등 그리고 사기꾼들의 사기행각 등 부정적인 것들인데 막상 몇 년에 한 번씩 한국에 와 보면 몰라보게 많은 변화가 느껴진다고 한다. 건물이나 도로 등 외형적인 것들뿐만이 아니라 사회 즉 나라 전체가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발전해 가는 것이 온 몸으로 와 닿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매우 다이내믹한 역동성으로 미국이나 유럽의 어느 나라보다도 활기가 넘쳐 보인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자기의 개인적인 생각인지는 모르겠지만 몇 가지 문제만 넘는다면 한국은 머지않은 장래에 세계 최고의 일등국가가 될 것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완전히 그 의견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볼 수 있는 측면이 있다는 점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
그리고 또 하나 내가 충격을 받은 것은 아들이 미국을 비롯해서 세계의 톱 수준에 있는 많은 의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확신을 갖게 되었는데, 지금처럼 빠른 속도로 의학적, 과학적 지식과 기술이 발전한다면 2045년경에는 우리 인간들에게 수명이라는 말이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성경에 나오는 태초의 사람들처럼 몇백 년도 살 수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 몸의 어떤 부분이나 장기가 고장이 나면 그것을 생산하는 공장에 가서 사다가 갈아 끼우면 되고, 세포 자체를 새로운 것으로 이식하는 등... 나이 먹고 그렇게 오래 살면 다른 사람들한테 피해나 주지 뭐가 좋겠느냐고 물으니까 그것도 아니란다. 그 다음에 바로 오는 단계는 젊어지는 것이라고 한다. 글쎄, 그런 날이 정말 올 수 있을까? 온다면 세상은 과연 어떻게 변할 것인가.
이 홍 영 (李 洪 永)
1948. 3. 2 출생
1963. 3 - 1966. 2 대전고등학교
1978. 3 - 1980. 8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지리교육학 (석사)
1986. 3 - 1988. 2 고려대학교 대학원 지리학전공 (박사과정)
1979. 3 - 1999. 7 국토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
1988. 3 - 1994. 2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 강사
2006. 3 - 2011. 9 충청교육신문사 사장
2004. 1 - 2020. 현 경기도 용인시 문화관광해설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