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찾아 떠나는 혼행
태국 치앙마이를 여행하다가 혼자서 배낭을 메고 여행하는 독일 여자를 만났다. 30대 중반에 단발머리를 한 그녀는 처녀의 몸으로 거의 자기 몸무게에 가까울 것으로 보이는 커다란 배낭을 짊어지고 일 년 하고도 다섯 달째 세계 일주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했다.
독일의 유명한 대학에서 지리학을 전공했다는 그녀와는 같은 지리학을 했다는 공통점이 있어서 그런지 말이 잘 통했고, 금세 친해질 수 있었다. 그래서 이틀 동안 같이 동행하게 되었는데 매우 당찬 여자라는 느낌이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독일의 대기업에 들어가서 십 년 가까이 일을 하다가 회사에 사표를 내고 그동안 모은 돈을 가지고 무작정 여행을 떠났다고 한다.
여자 혼자서 다니기에 무섭지는 않느냐고 물으니까 처음에는 조금 불안한 생각이 들기도 했으나 지금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했다. 무엇이 무섭냐며 모든 사람은 다 친구가 될 수 있고, 내가 진심으로 상대방을 대할 때 상대방도 나를 배려해 주지 결코 해치는 일은 없다고 했다. 그리고 이번 여행에서 몇 번 어려운 문제에 부닥친 적이 있었지만 그런 문제들을 풀어나가면서 여행의 참맛을 느꼈고 자신에 대한 믿음이 생겼다고 한다.
그녀의 평온한 표정과 진지한 말투는 나에게 매우 강력한 인상을 심어 주었다.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둔 후에도 미래에 대한 불안감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였으며, 자기는 이 여행이 힘들고 외롭기도 하지만 많은 새로운 것들을 보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앞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고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 요가와 명상을 배우러 인도로 간다는 그녀와 작별을 고하며 나는 너무나도 당찬 그녀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대학 진학 당시에 지리학과를 선택했던 것은 단순히 이 과를 가면 여행을 많이 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지도에서만 보던 세계의 많은 나라에 가보고 싶다는 열망이 가득한 시절이었다. 중학교 시절에 보이스카웃에 들어가 캠핑을 다니면서 여행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고교 시절에는 혼자서 가는 무전여행을 다녔다.
중고 자전거를 한 대 구해서 취사도구를 비롯해 취침도구 등을 잔뜩 매달고는 혼자서 전국 각지를 헤매고 다녔다. 당시에는 전국 대부분의 도로가 비포장 자갈길이었기에 자전거 타이어에 펑크가 자주 나서 펑크를 때우는 장비와 바람을 넣는 펌프도 가지고 다녀야 했다.
자전거를 타고 낯선 시골길을 가다가 밤이 되면 이름도 모르는 어느 계곡에 조그마한 군용텐트를 치고 모기들과 싸우며 잠을 청하곤 하였다. 그 밤 풀벌레 소리는 왜 그렇게 요란스러웠던지, 그리고 누운 채로 텐트 밖으로 머리만 내밀고 쳐다보았던 캄캄한 밤하늘엔 세계 일주 별들이 그렇게도 많았던지, 그 별들을 보며 나는 그냥 엉엉 울었던 기억이 있다. 왜 그렇게 울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비교적 많은 여행을 할 기회를 가진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국내는 물론이고 해외여행도. 그 여행들은 나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었다.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나라가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 그리고 우리 인생이 얼마나 아름다운 것인지.
우리 아이들에게도 여행의 중요성을 깨닫게 하려고 애들이 어릴 때부터 여러 곳을 여행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런지 아들놈은 군의관 공익근무 때 남극 세종기지 근무를 지원해서 일 년여를 그곳에서 보내더니, 지금 미국에서 의사로 일을 하면서도 시간만 나면 손주들을 데리고 전 세계를 여행하고, 캠핑카를 사서 미국 국내를 샅샅이 세계 일주 다닌다. 딸아이도 주말이나 방학만 되면 아이들과 여행 다니느라 바쁘고.
아이들이 어릴 때는 할 수 없지만, 가능하다면 혼자 다니는 여행을 권하고 싶다. 혼자 다니는 여행은 외롭기도 하고, 안전을 보장받을 수도 없으며 때로는 예측할 수 없는 문제들을 만날 수도 있다. 더구나 개인보다는 가족과 국가를 중시하고 집단지향적인 문화에 익숙한 우리 한국인들에게는 혼행이 주는 외로움과 불안감이 보다 크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적어도 내 경험으로는 혼행이야말로 진정한 여행의 맛을 느낄 수 있는 것이고, 자유로운 영혼이 되어 오롯이 나 자신을 찾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자, 큰 맘 먹고 한 번 떠나 보자. 숨어 있는 진정한 나를 찾아서.
누군가는 그렇게 말했다. 자기가 살아야 할 곳에서 태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살고 싶은 곳을 찾아서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고.
1963. 3 - 1966. 2 대전고등학교
1978. 3 - 1980. 8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 지리교육학 (석사)
1986. 3 - 1988. 2 고려대학교 대학원 지리학전공 (박사과정)
1979. 3 - 1999. 7 국토개발연구원 책임연구원
1988. 3 - 1994. 2 고려대학교 사범대학 지리교육과 강사
2006. 3 - 2011. 9 충청교육신문사 사장
2004. 1 - 2023. 현 경기도 용인시 문화관광해설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