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곤강(尹崑崗)은 충청남도 서산에서 태어났다. 1928년 혜화전문학교에 진학하였으나 5개월 만에 자퇴하고 1930년 일본 센슈대학으로 유학하였다. 이때부터 문학에 관심을 가져 <시인춘추>의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대학 졸업 후 1933년에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하였다.
1934년 제2차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관련자로 구속되어 전주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고 그해 12월 석방되었다. 1936년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여 이듬해 첫 시집 『대지』를 낸 이후 시작에 전념하여 많은 작품을 썼다. 1939년에는 『시학(詩學)』 동인으로 활약했으며, 징용을 피해 낙향, 면서기로 근무하다가 해방 후 다시 상경해 1946년 보성고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다. 이후 조선문학가동맹에 가입해 활동하다가 1948년 중앙대학교 및 성균관대학교 강사를 역임했다.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창작 활동을 병행하여 『피리』, 『살어리』 등 여러 권의 시집과 평론집을 냈다. 1950년 신경쇠약으로 39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1936년 시와 시론을 활발히 발표하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전개된 그의 작품세계는 크게 해방 전과 후 두 시기로 구분된다. 첫 시집 『대지(大地)』를 비롯해 『만가(輓歌)』·『동물시집(動物詩集)』·『빙화(氷華)』는 전기에, 『피리』·『살어리』는 후기에 속한다. 『대지』와 『만가』에서는 ‘시는 현실적·시대적 진실의 열정적 표현이 되어야 한다’는 그의 시론에 충실했던, 소극적 저항의 시기에 쓰인 작품집이다. 자연이나 인생보다는 고통스러운 현실을 우울한 정서로 노래하고 있다. 카프의 영향과 옥중 생활(獄中生活)의 체험을 바탕으로 식민지 지식인의 허탈과 무력함을 고백하고 있는 그의 시는 결국 자신에 대한 만가를 스스로 지어 부르는 자조(自嘲)에 이르렀다. 제3시집 『동물시집』은 나비·올빼미·원숭이·낙타 등 동물을 소재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때까지의 우리 시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한 면을 보이는 작품집이다. 여기에서 시의 소재인 동물들을 자연물이 아니라 현실의 객관적 상관물(相關物)로 노래하고 있어 그의 시세계의 본질은 거의 변함이 없다. 이 『동물시집』과 제4시집 『빙화』에서는 대상과의 객관적인 거리를 통해 감정 과잉이라는 자신의 시적 결함을 어느 정도 극복하고 있다는 면에서 진일보한 경지를 보여준다.
해방과 더불어 그의 시세계는 크게 달라진다. 광복 후 윤곤강은 한국의 고유어의 회복과 전통의 계승을 주로 하는 시를 쓴다. 『피리』·『살어리』 두 시집에서 그는 전통 계승에 대한 관심, 민족정서의 탐구, 밝고 건강한 세계의 지향 등을 새롭게 드러낸다. 고유어를 중심으로 언어를 다듬고 복원하여 우리의 고유한 가락을 되살려 서정적인 감동이 있다.
저서로는 평론집인 『시(詩)와 진실(眞實)』(정음사, 1948) 및 기타 편저로 『근고조선가요찬주(近古朝鮮歌謠撰註)』(생활사, 1947) 등이 있다. 시론으로는 「포에지에 대하여」(1936), 「표현에 관한 단상(斷想)」(1936), 「이데아를 상실한 현조선(現朝鮮)의 시문학(詩文學)」(1937), 「시와 현실(現實)의 상극(相克)」(1937) 등이 있다.
특히, 그가 1930년대 후반 시잡지의 뛰어난 기획자였다는 점, 그의 시론집 ≪시와 진실≫(1948)이 김기림의 ≪시론≫에 이어 우리 문학사에서 두 번째로 발간된 점 그리고 그의 시 <나비>와 <해바라기> 등이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점등은 윤곤강이 한국의 근현대문학사에서 적잖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그럼에도 이러한 문학사적 위상에 비해 지역에서 홀대받고 있다는 평가도 있다.
1939년에 발행된 윤곤강의 제3시집이다. 동물시집이 해방 이전의 시사(詩史)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독보적이다. 나비, 올빼미, 원숭이, 낙타 등 동물을 소재로 하여 그때까지 우리 시 역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한 작품집이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시의 소재인 동물들은 비유적 이미지나 시적 소재에만 충실했던 자연물이 아니라 현실의 객관적 상징물로 그려지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동물 표상을 중심으로 살펴본 시들의 주제의식은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 정치적 경향성과 상징주의의 영향이 혼재했던 초기 시에서는 ‘가마귀’, ‘배암’, ‘고양이’ 등의 동물은 이념적 표상으로 활용되었다. 집짐승의 표상들은 서정적인 정경(情景)을 만드는 데 활용되었으며, 시대적 아픔을 반영한 비유적 이미지로 제시되었다.
둘째, 『동물시집』 간행을 전후하여 ‘공작’, ‘낙타’ 등의 외래종 동물이 사회 현실을 풍자하기 위한 시적 소재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동물원과 식민지의 도시 경성을 연결시키는 독창적 시각을 보여주었지만 지속되지는 못했다.
셋째, 윤곤강 시에 가장 많이 등장했던 ‘버레・곤충’ 은 엄혹한 현실에 대응하는 식민지 지식인의 내적 고민을 반영하는 은유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일회적인 소재의 범주를 넘어 지속적으로 활용된다는 점에서 윤곤강 시의 특질을 구성하는 핵심적인 요소라고 말할 수 있다.
목차로는 [ 독사 / 나비 / 고양이 / 벌 / 종달이 / 달팽이 / 잠자리 / 문각시 / 개똥벌레 / 왕거미 / 낙타 1 / 사슴 / 사자 / 원숭이 / 붕어 / 갈범 / 황소 / 낙타 2 / 비둘기 / 박쥐 / 올빼미 / 할미새 / 매아미 / 염소 / 검둥이 / 당나귀 / 쥐 / 파리 / 굼벵이 / 털벌레 ], 이 작품집에 들어있는 시 <나비>는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있다.
나비
비바람 험살궂게 거쳐 간 추녀 밑― / 날개 찢어진 늙은 노랑나비가 / 맨드라미 대가리를 물고 가슴을 앓는다 / 찢긴 나래에 맥이 풀려 / 그리운 꽃밭을 찾아갈 수 없는 슬픔에 / 물고 있는 맨드라미조차 소태 맛이다 / 자랑스러울손 화려한 춤 재주도 / 한 옛날의 꿈조각처럼 흐리어 / 늙은 무녀(舞女)처럼 나비는 한숨진다.
당나귀
장돌뱅이 김첨지가 노는 날은 / 늙은 당나귀도 덩달아 쉬었다 / 오늘도 새벽부터 비가 왔다 / 쉬는 날이면 당나귀는 더 배가 고팠다 / 배가 고파 쓰러진 채 당나귀는 꿈을 꿨다 / 대문이 있는 집 마룻판 마구에서 / 구수한 콩죽밥을 실컷 먹고 / 안장은 금빛, 고삐는 비단 / 목에는 새로 만든 방울을 달고 /하늘로 훨훨 날아가는 꿈이었다
단국대 경영학 석사
필리핀국제문화대학명예철학박사
한국고승유묵연구소장
중광미술연구소장
용인한국근대문학관 건립 위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