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주영장 재직 시절 받은 민영환 등 조선말 사대부 27인의 친필 편지글 묶어

용인출신 우경 안정구 선생이 조선말 국정에 참여한 주요 인물 27인으로부터 받은 32통의 친필 편지 희귀본이 144년 만에 그의 증손자에 의해 한글 번역으로 발간돼 화제다.

▲144년 만에 증손자가 발간한 책표지《우경 안정구 선생 간찰집》
▲144년 만에 증손자가 발간한 책표지《우경 안정구 선생 간찰집》

안재식 작가가 편찬한 ‘조선말 사대부 27인의 편지, 우경 안정구 선생 간찰집’ (학자원 264쪽)은 당대에 내로라하는 역사적 인물들의 간찰(簡札)을 한데 묶어 발간함으로써 당시의 시대상과 생활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

이 책은 안 작가의 증조부인 우경 안정구 선생이 충주영장으로 재직하던 1879년 6월부터 1880년 6월까지 받은 32통의 친필 편지를 안 작가의 부친인 장손 안필형(安珌炯, 1893~1949) 선생이 유산으로 물려받아 한지 양면에 배접(褙接)하여 서첩으로 엮었다.

충주영장은 중앙에서 파견한 정3품 당상관으로 충주목사와 동급이었다. 충주, 제천, 단양, 괴산, 음성 등 8개 군을 관장하는 사령관급 최고 지휘관이다.

서첩의 표구는 35폭 병풍 모양으로 접었을 때 두께는 3cm, 크기는 가로 17cm 세로 29.7cm, 펼쳤을 때 길이는 595cm나 된다.

그 후 안 작가의 부친이 작고하고 모친 이기만(李奇滿) 여사가 물려받아 6·25 전쟁의 피난살이 등 고단하고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귀히 간직하다가 아들인 안 작가에게 전승해 마침내 빛을 보게 됐다.

안 작가는 서첩을 토대로 ‘우경 안정구 선생 간찰집 간행위원회’를 구성하고, 2019년부터 편찬 작업을 시작하여 국사편찬위원회 박상수(朴相水) 교수의 탈초・번역과 편집위원 원숙희(元淑姬) 작가의 교정・교열을 거쳐 4년 만에 출간하게 됐다.

조선말기, 일제강점기, 해방과 한국전쟁으로 대변되는 격변의 시기를 거치며 144년간이나 서첩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여 대를 이어 전승하고 출간까지 했다는 사실이 높게 평가된다.

이 책은 간찰문(초서・행서)을 원형 그대로 스캔받아 게재하여 서체의 예술성을 살린 것이 특징이다. 탈초 한자에 한글로 독음을 달아 한문 공부에 도움을 줬다.

또 간찰집에 등장하는 인물의 프로필을 진솔하게 기록했고, 주석을 상세히 달아 낱말이나 문장의 뜻을 쉽게 풀이했다.

친필편지 27인은 흥친왕 이재면, 충정공 민영환, 영의정 김병국, 대제학 민태호, 무위대장 이경하, 포도대장 김기석, 병조판서 민영익, 선혜청당상 민겸호, 공조판서 김병주, 형조판서 홍재현, 충주목사 조신희, 오위도총관 김흥균, 대사성 김경균, 도승지 이태용, 이조판서 민영준, 금군별장 허습, 충청병사 이봉의, 한성좌윤 박장하, 전의현감 김제봉, 훈련판관 이명현, 내금위장 이두현, 유생 심능호, 기사장 정약풍 등 철종과 고종 시대를 살았던 유생으로부터 영의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계층의 편지가 담겼다.

우경 안정구 선생이 받은 편지글 중에서 시대상을 반영하는 내용들이 눈길을 끈다. 충정공 민영환은 ‘조카가 내지 못한 세금을 그의 삼촌에게 대신 내라고 하는 것은 부당하니 바로잡아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고, 금군별장(경호실장급) 허습은 ‘상주인 처지에 초(燭)를 구하기 매우 어렵다’는 딱한 사정을 전한다.

흥친왕 이재면은 ‘왕세자 이척(훗날 순종)이 천연두에 걸렸다가 회복된 소식’을 전하고, 홍문관교리 이태용은 ‘부친이 병을 겪고 원기가 다해 애태우고 있는데, 도하에 돌림병이 불처럼 일어나 사망자가 속출하여 모두 두려워한다’고 썼다.

형조판서 홍재현은 ‘왕대비를 10여 년간 모시며 명을 전달하던 정 지사가 아랫사람에게 치욕을 당했으니 그 분함을 풀어달라’고 부탁하고, 포도대장 김기석은 ‘이웃 마을 임 상서 어른의 집안 사정을 전하며 독촉을 늦추어 체면을 살려달라’는 청탁도 나온다.

안재식 작가는 “조선말 사대부들의 유려한 필치와 당시 생활상, 꾸밈없는 시대 상황, 벼슬아치들의 청탁과 처세 등 민낯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생활사 연구와 인물 탐구에 중요한 자료니만큼 유형문화재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책은 용인 지역의 도서관과 학교, 단체는 물론 책을 필요로 하는 개인에게 기증할 예정이다.

▲충주영장을 지낸 우경 안정구 선생 묘소 모습.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 선영. 이곳에는 유사비와 사각묘테석, 상석, 안내판 등이 설치돼 있다. (사진=저자)
▲충주영장을 지낸 우경 안정구 선생 묘소 모습.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 선영. 이곳에는 유사비와 사각묘테석, 상석, 안내판 등이 설치돼 있다. (사진=저자)

우경 안정구(禹卿 安珽求, 1828~1881) 선생은 용인 출신이며 본관은 죽산(신)이다. 문성공 회헌 안향(安珦) 선생 후손으로 죽산안씨 대교공파종중의 중시조인 대교공 신손(信孫)의 14세손이다. 1828년 부친 안종벽(安鍾璧, 성균진사)과 모친 함평이씨 사이에 장남으로 태어나 1852년 25세에 식년시 무과급제했다.

그후 인차외만호・사천현감・부호군을 거쳐 정3품 당상관 통정대부에 오르고, 1879년 충주영장 관직을 제수받았다. 1880년 종2품 오위장에 이어 평안북도 삭주부사로 부임했다.

그러나 1881년 삭주지역에 대홍수가 발생했고 이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향년 54세로 순직했다. 나라에서는 살신성인으로 백성들과 고난을 함께하다 순직한 우경 안정구 선생의 애민정신을 기리고자, 생가가 있는 고향 용인시 처인구 백암면 용천리 선영으로 운구(運柩)하여 예장으로 치제(致祭)하며 애도했다.

지금도 백암 용천마을은 죽산안씨(신) 세거지로 집성촌과 선영이 있고, 백암면지(白岩面誌, 용인문화원 향토문화연구소 2006년 간)에 명문가로 등재됐다.

▲소정 안재식 작가의 모습(사진=저자)
▲소정 안재식 작가의 모습(사진=저자)

증조부의 유산을 계승 발전시켜 조선말 사대부 27인의 편지를 한데 묶어 국역 출간한 이 책의 저자인 안재식(安在植, 1942~)은 아호가 소정(小亭)으로 시인이며 동화작가, 작사가로 널리 알려졌고 한국녹색문학회장을 역임했다. 한국아동문화상, 대한아동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등을 수상했고, 대한민국 혁신한국인과 파워코리아 앤 톱리더(2014 동아일보)로 선정됐다. 특히 한국문학을 빛낸 100인과 지하철에 꼭 수록하고 싶은 시 100편에 선정된 작가이자 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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