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
햇살이 대추나무 잎 사이에서 초록으로 떨리고 있다.
수다스런 참새가 나뭇가지와 나뭇가지 사이를 옮겨 다니며 한 낮을 깨우고 있다.
몸이 앞으로 15도 정도 기울어진 할머니는 검은 봉다리를 들고 눈길도 없이 자귀나무 그늘을 지나고 있다.
송충이 한 마리가 수많은 털을 움직거리며 내 하양 운동화 옆을 지나 햇빛 속에서 꿈틀거린다.
개미들이 길을 만들고 자기보다 몇 배나 큰 잎을 물고 캄캄한 어딘가로 줄지어 줄지어 사라지고 있다.
담장에는 넝쿨장미가 빨갛게 빨갛게 빨갛게 흔들렸다.
배달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휙 지나갔다.
멍하니 그저 멍하니 콘크리트 담장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오래 오래 오래 시간이 오래 흘렀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눈길 한 번으로 전부 빨아들였다.
너무도 짧았다.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2008년 『내일을 여는 작가』 등단
2009년 구상문학상 젊은 작가상 수상2014년 천강문학상 수상
2013년, 2018년 아르코 창작기금 수혜
현) 용인일보 편집위원
시집 - 『간잽이』 『자주 먼 것이 내게 올 때가 있다』 『사랑이고 이름이고 저녁인』 『드디어 혼자가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