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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

햇살이 대추나무 잎 사이에서 초록으로 떨리고 있다.

수다스런 참새가 나뭇가지와 나뭇가지 사이를 옮겨 다니며 한 낮을 깨우고 있다.

몸이 앞으로 15도 정도 기울어진 할머니는 검은 봉다리를 들고 눈길도 없이 자귀나무 그늘을 지나고 있다.

송충이 한 마리가 수많은 털을 움직거리며 내 하양 운동화 옆을 지나 햇빛 속에서 꿈틀거린다.

개미들이 길을 만들고 자기보다 몇 배나 큰 잎을 물고 캄캄한 어딘가로 줄지어 줄지어 사라지고 있다.

담장에는 넝쿨장미가 빨갛게 빨갛게 빨갛게 흔들렸다.

배달 오토바이가 굉음을 내며 휙 지나갔다.

멍하니 그저 멍하니 콘크리트 담장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오래 오래 오래 시간이 오래 흘렀다.

하지만 이 모든 일을 눈길 한 번으로 전부 빨아들였다.

너무도 짧았다.

 


정진혁 작가(1961. 01. 13)
정진혁 작가(1961. 01. 13)

공주사범대학 국어교육과 졸업
2008년 『내일을 여는 작가』 등단
2009년 구상문학상 젊은 작가상 수상2014년 천강문학상 수상
2013년,  2018년 아르코 창작기금 수혜
현)  용인일보 편집위원 
시집 - 『간잽이』 『자주 먼 것이 내게 올 때가 있다』 『사랑이고 이름이고 저녁인』 『드디어 혼자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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