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음대 성악과 출신인 최양숙은 1966년 「황혼의 엘리지」를 히트시키며 제2회 TBC 방송가요대상에서 최희준과 함께 남녀 최우수가수상을 수상했던 인기 가수였다. 맑고 깊은 목소리에 뛰어난 가창력으로 샹송을 주로 불렀다. 당시 우리 가요계에서 주를 이루었던 여가수들의 트로트와 달리, 우아하고 가늘게 떨리는 최양숙의 맑은 음색과 쓸쓸함이 묻어나는 분위기는 특히 인텔리층에게 인기가 많았다. 1961년부터 텔레비전 방송이 시작되고, <선데이 서울> 등의 상업적 주간지 매체들과 본격적인 엘피(LP) 음반시대가 열리면서 그녀의 눈에 띄는 외모와 노래분위기는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이후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최양숙은 1971년 통기타 열기를 타고 김민기의 곡인 「가을편지」와 「꽃피우는 아이」를 수록한 포크 음반을 발매했다. 「가을편지」가 히트하면서 최양숙은 샹송가수를 탈피하고 통기타 음악 분야에서도 명곡을 남긴 가수가 되었다.
최양숙의 오빠인 최경식은 당대의 저명한 평론가였다. 시인 고은과 대포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던 최경식이 시를 한편 지어달라고 하자 고은이 즉석에서 써준 시가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다. 평소 친분이 있던 김민기에게 이 시에 곡을 붙여 달라 부탁해서 만든 곡이 바로 「가을편지」로 이 앨범에 최초로 수록됐다. 이후 최경식은 김민기가 만든 「꽃피우는 아이」를 듣고 감탄한 나머지 이미 완성된 음반을 포크 앨범으로 다시 제작할 결심을 한다. 재킷과 수록곡을 대거 수정하고 최양숙의 얼굴 사진으로 크게 장식한 초반 재킷을 신선한 디자인으로 바꾸었다. 타이틀곡은 「세노야 세노야」에서 「꽃피우는 아이」로 바뀌었다. 또, 초반에 수록한 5곡이 재반에서 빠지고 「꽃피우는 아이」를 비롯해 「가을편지」, 「기다리겠어요」, 「젊은날의 그 시절」과 대중가요의 고전인 「사의 찬미」에 번안곡 5곡을 추가했다.
작품성이 강화된 재반을 발표한 최양숙은 1971년 5월 남산 드라마센터에서 컴백 리사이틀을 갖고 음악적 변신을 증명했다. 인기 샹송 가수 최양숙이 포크 가수로 변신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대중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런 호응에 힘입어 대도레코드는 곧바로 신인 포크 가수 김민기의 독집을 제작했다. 하지만 제법 잘 팔리던 최양숙과 김민기의 앨범은 갑자기 음반 진열대에서 사라졌다. 1972년 봄 군사정권이 요주의 인물로 낙인찍은 김민기의 독집이 그랬듯, 최양숙의 앨범 「꽃 피우는 아이」도 금지곡으로 묶였던 것이다.
이 앨범이 한국 포크의 명반으로 대접받는 이유는 문제작 「꽃피우는 아이」와 고은의 시를 대중가요로 만든 「세노야 세노야」와 「가을편지」의 오리지널 버전을 수록했기 때문이다. 김민기의 클래식 기타 연주와 최양숙의 품격 있는 보컬만으로 심플하게 편곡된 이들 오리지널 버전은 당대 대중가요의 수준을 예술의 경지로 높여주었다. 피아노 한 대로 진행한 번안곡 「험한 세상에 다리가 되어」와 「사의 찬미」도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꽃 피우는 아이 (김민기 작사 작곡)
무궁화 꽃을 피우는 아이
이른 아침 꽃밭에 물도 주었네
날이 갈수록 꽃은 시들어
꽃밭에 울먹인 아이 있었네
무궁화 꽃 피워 꽃밭 가득히
가난한 아이의 손길처럼
꽃은 시들어 땅에 떨어져
꽃 피우던 아이도 앓아누웠네
누가 망쳤을까 아가의 꽃밭
누가 다시 또 꽃 피우겠나
무궁화 꽃 피워 꽃밭 가득히
가난한 아이의 손길처럼
가을 편지 (고은 시·김민기 작곡)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쌓이는 날
외로운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 주세요
낙엽이 흩어진 날
헤매인 여자가
아름다워요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모든 것을 헤매인 마음
보내 드려요
낙엽이 사라진 날
모르는 여자가
아름다워요
아름다워요
기다리겠어요 (윤용남 작곡/최양숙 작사)
너무나 당신을 사랑했기에
떠나가버린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날이가면 갈수록
사무치는 그리움
영원히 못잊을 그날의 그 속삭임
다시 돌아와 주신다면
못다한 이야기 나누어요
뉘우치는 마음으로 용서를 빌겠어요
밤이나 낮이나 그리운 그 모습
언제나 변함없이 기다리겠어요
너무나 당신을 사랑했기에
떠나가버린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날이가면 갈수록
사무치는 그리움
영원히 못잊을 그날의 그 속삭임
다시 돌아와 주신다면
못다한 이야기 나누어요
뉘우치는 마음으로 용서를 빌겠어요
밤이나 낮이나 그리운 그 모습
언제나 변함없이 기다리겠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