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희은은 1971년 9월 데뷔 앨범 <양희은 고운노래 모음>을 발표했다. 김민기가 쓴 「아침이슬」, 「그 날」과 고은 시에 김광희가 멜로디를 붙인 「세노야 세노야」 이렇게 단 3곡의 창작곡과 7곡의 팝송 번안곡이 들어있는 이 음반은 「아침이슬」의 최초 버전이 수록된 진정한 한국 포크의 클래식 명반이다. 재킷 사진은 남산 어린이회관 앞 광장에서 촬영한 양희은의 이미지로 당시 전형적인 가수의 화려함과는 거리가 멀었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풋풋한 젊은이의 모습이었다. 선머슴 같은 청바지, 청남방, 청색 운동화 그리고 생머리에 통기타가 전부였지만 풍기는 이미지는 당당했다.
맑고 청아한 보컬로 들려준 아름다운 멜로디와 시적인 노랫말은 젊은이들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었다. 팝 번안 곡들도 원곡을 능가하는 포크의 순수한 감각을 드러내며 청년세대들에게 열렬하게 사랑받았다. 신곡 수가 많지 않은데도 이 앨범은 3차례나 한국 대중음악 명반 100에 매번 선정되며 역사적 의의를 인정받는데 「아침이슬」 덕분이다. 곡을 만든 김민기는 '수유리 집 뒤 야산에서 본 아침이슬 이미지로 노래를 만들었을 뿐'이라며 정치적 저항의 의미를 거부 했지만 이 노래는 암울한 독재정권 시대에 청년들이 더 나은 세상을 바라며 어두운 현실을 버티게 해준 시대의 깃발이었다. 맑고 단단한 목소리로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라고 거침없이 외치는 양희은의 가창은 답답하고 서러운 시대를 이겨낼 힘을 주는 장엄한 선언이었다. 포크의 전설 김민기와 양희은이 빚어낸 포크송들은 대중가요의 범주를 뛰어넘어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양희은은 2024년 7월 24일 방송된 자신의 MBC 라디오 프로그램 <여성시대>에서 고 김민기를 추모하며, 노래 「아침이슬」을 처음 만난 순간을 증언했다. "미국으로 떠나는 한 선배의 환송 음악회에서 김민기 선생이 만든 '아침이슬'을 어떤 분이 부르는 걸 들었는데 그 노래에 반해서 사람들 사이로 까치발 들면서 무대를 집중해서 봤다. 한 호흡이라도 놓칠 새라 숨을 죽이고 집중해서 들었는데 너무도 감동적이어서 콧날이 시큰거릴 정도였다"고. “그 노래를 부르고 싶다고 했더니 선생의 친구분이 ‘아까 민기가 악보에 적는 거 봤는데’하더라. 찢어진 채 바닥에 버려져 있는 악보 조각을 테이프로 붙였다.”며 지금까지도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다고. 이 노래를 부르고 싶었던 만 18세의 양희은은 직접 김민기에게 청했고 그는 '그래라'라고 간단히 허락했다.
서울 명동 YWCA에 있었던 ‘청개구리홀’은 많은 대학생들이 모여드는 장소였다. 나일론 자루로 만든 신발주머니에 신발을 넣어 들고 들어가 앉는 다방이었던 이곳에는 한 뼘 높이의 단상 무대가 있었다. 여기서 양희은은 재수생일 때부터 팝송을 부르면서 김민기를 처음 만났다. 데뷔앨범을 준비할 때 김민기뿐 아니라 청개구리 식구들인 김광희와 이용복등이 많이 도와주었다. 음악적 중심에 있는 김민기가 멜로디 파트를 맡고 국내 최초의 시각장애인 가수로 등장해 장안의 화제였던 이용복이 12줄 스틸기타로 리듬파트를 맡아 녹음을 마쳤다. 양희은의 목소리와 기타 두 대 그리고 하모니카 연주외엔 아무 소리도 나오지 않는다. 코러스도 없다. 그래서 더 가사와 감정전달이 효과적인 대곡이 되었다. 파격적인 구조의 곡, 두 대의 기타와 하나의 목소리로만 이룰 수 있는 최고의 힘을 이곡은 발휘한다.
발매된 음반은 양희은의 또렷한 발음과 청아하면서도 힘 있는 목소리, 김민기의 아름다운 멜로디와 가사로 청년층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이 앨범이 대단히 히트하며 양희은은 유명세를 타게 되는데, 특히 아침 이슬은 거의 국민가요라 할 정도로 인기를 얻었다. 아름답고 시적인 우리말 가사의 우수성을 인정받아 1973년 정부가 주는 ‘고운 노래상’을 받고 건전가요 리스트에도 올랐던 「아침이슬」은, 그러나 1970년대 초중반 민주 항쟁의 상징적인 노래가 되었다. 이듬해 「아침이슬」을 비롯해 그녀가 부른 30여곡의 노래들이 하루아침에 금지곡으로 지정되면서 양희은은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저항 가수의 상징이 되었다.
아침이슬 (김민기 작사 작곡)
긴 밤 지새우고 풀잎마다 맺힌
진주보다 더 고운 아침 이슬처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내 맘에 설움이 알알이 맺힐 때
아침 동산에 올라 작은 미소를 배운다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떠오르고
한낮에 찌는 더위는 나의 시련일지라
나 이제 가노라 저 거친 광야에
서러움 모두 버리고 나 이제 가노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