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에 발매된 '현경과 영애'의 유일한 독집 앨범 <아름다운 사람>은 이들의 데뷔작이자 은퇴 기념 음반이 되었다. 여성 포크 듀엣 ’현경과 영애‘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맑고 순수한 영혼의 음악을 깨끗하고 아름다운 하모니가 그리는 단정한 수채화로 이 음반에 뚜렷하게 새겨 놓았다.

박영애와 이현경은 1971년 서울대 신입생 환영회에서 미대 회화과 대표로 함께 노래를 불렀다. 팝송이었는데 반응이 매우 좋아 입소문을 타면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하고 가수활동을 시작했다. ‘현경과 영애’란 팀 이름으로 아름답고 맑은 노래들을 부르며 1970년대 초중반 대학가에서 적잖은 인기를 누렸다. 현경과 영애의 주무대는 기존 가수들의 무대인 라이브 음악살롱이나 쇼무대가 아니라 대학이었다. 이들은 음악 동료들의 리사이틀이나 라디오 방송에 찬조 출연한 것 말고는 대학 축제 등의 비상업적 무대에만 서면서 직업 가수보다는 아마추어 즉 언더그라운드 가수로 남았다. 자신들의 노래도 십여 곡으로 늘고 팬도 많았지만 대학을 졸업하면서 음악활동도 끝냈다. 애초 둘은 대학 다니는 동안만 활동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졸업을 앞둔 두 사람은 당시 오리엔트기획의 나현구 사장이 음반 제작을 제안하자 대학 시절 부른 노래를 졸업 기념으로 음반에 남기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싶어 녹음에 응했다.

이 음반에 실린 노래들은 현경과 영애가 즐겨 불렀던 곡들로, 그들이 추구했던 음악 세계를 엿볼 수 있으며 전체가 높은 완성도를 자랑하는 한국 포크 역사에 영원히 기억될 명반이다. 이 음반에서 이현경과 박영애는 때로는 번갈아 노래하고, 때로는 함께 부르며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주는데 이들의 보컬은 성량과 기교가 아니라 사람의 음성이 어우러질 때 빛나는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10곡의 수록곡은 이현경의 자작곡 「님의 마음」과 「바다에서」 두 곡과 그가 개사한 팝송 번안곡 세 곡, 「그리워라」, 「종소리」와 「참 예쁘네요」며 나머지 다섯 곡은 음악동료들이 준 곡으로 김민기의 「아름다운 사람」 작곡가 김광희의 「나 돌아가리라」와 「내 친구」, 김덕년의 「얘기나 하지」, 그리고 「그건 너」로 유명한 이장희의 「눈송이」다.

차분하고 진지한 느린 곡들뿐만 아니라 흥겹고 발랄한 분위기의 곡들도 있는데 주로 번안곡들이다. 「그리워라」는 스페인 보컬 그룹 모세다데스(Mocedades)의 「Adios Amor」에 우리말 가사를 붙인 왈츠풍의 노래로 꽤 인기를 모았다. (모세다데스는 1973년 ‘유로비전 송 콘테스트’에서 「에레스 두 Eres Tu」로 2등을 차지하며 국제적인 지명도를 얻어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5인조 혼성그룹이다.) 「종소리」는 페기 리(Peggy Lee)가 부른 폴카 리듬의 캐롤 「O Ring Those Christmas Bells」가 원곡으로, 오리지널 영어 가사와 번안 가사를 오가며 화음과 코러스를 가미한 노래다. 「참 예쁘네요」는 피터 폴 앤 메리(Peter, Paul & Mary)의 라이브 버전으로 익숙한 「Oh, Rock My Soul」을 번안한 곡인데, 「종소리」와 마찬가지로 다채로운 화음과 남녀 코러스가 더해지고 절을 거듭할수록 템포가 빨라져 부르는 재미가 있다. 이 번안곡들은 이현경의 뛰어난 개사 솜씨를 보여준다. 원곡과 전혀 다른 가사를 붙였지만 놀라울 정도로 음악과 잘 어울려 이 곡들이 번안곡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든다.

발매된 지 50여 년이 지났지만 이 음반은 인기 있는 고가의 희귀 음반으로 남아 있다. 이 음반처럼 1970년대 초 포크의 본연을 상당부분 간직하면서 노래와 하모니가 지닌 원초적인 아름다움을 꾸밈없이 담고 있는 결정체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 음반의 편곡과 반주는 동방의 빛이 담당했다. 자칫 평이하게 들릴 수도 있는 곡들로 다채로운 편곡과 짜임새있는 구성을 통해 수준 높은 음반을 만들어냈다. 포크 붐 속에서도 아마추어 입장을 견지한 ‘현경과 영애’와 뛰어난 스튜디오 세션인 동방의 빛이 만나 절충하면서 빚어낸 성과다.

아름다운 사람     /김민기 작사·작곡

어두운 비 내려오면
처마 밑에 한 아이 울고 서있네
그 맑은 두눈에 빗물 고이면
아름다운 그 이는 사람이여라
세찬바람 불어오면
들판에 한 아이 달려가네
그 더운 가슴에 바람 안으면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여라

새하얀 눈 내려오면
산 위에 한 아이 우뚝 서있네
그 고운 마음에 노래울리면
아름다운 그이는 사람이여라
그이는 아름다운 사람이여라

그리워라   /번안곡 이현경 개사

햇빛 따스한 아침 숲 속 길을 걸어가네
당신과 둘이 마주 걸었던 이 정든 사잇길을
보랏빛 꽃잎 위에 당신 얼굴 웃고 있네
두 손 내밀어 만져 보려니 어느 새 사라졌네
그리워라 우리의 지난날들
꽃잎에 새겨진 사랑의 이야기들
그리워라 우리의 지난날들
지금도 내 가슴엔 꽃비가 내리네

다정했던 어느 날 호숫가를 거닐었지
하늘거리는 바람 불어와 꽃비가 내렸지
흘러가는 물위에 아롱지는 두 그림자
우리 마음도 우리 사랑도 꽃잎 되어 흐르네
그리워라 우리의 지난날들
꽃잎에 새겨진 사랑의 이야기들
그리워라 우리의 지난날들
지금도 내 가슴엔 꽃비가 내리네

나 돌아가리라    /김광희 작곡

나는 돌아가리라 쓸쓸한 바닷가로 
그곳에 작은 집을 짓고 돌담 쌓으면
영원한 행복이 찾아오리라
내 가난한 마음속에 찾아오리라
나는 돌아가리라 내 좋아하는 곳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 머나먼 곳에
나 돌아가리라

나는 돌아가리라 저 푸른 숲으로
이슬 젖은 풀 위에 누워 산허리에 달을 보면
그리운 모습들 비춰주리라
내 까만 눈동자에 비춰주리라
나는 돌아가리라 내 좋아하는 곳으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머나먼 곳에
나 돌아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