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P에 사인하고 있는 가수 최백호 ⓒ조대안 
LP에 사인하고 있는 가수 최백호 ⓒ조대안 

“영일만 친구”, “낭만에 대하여”, “입영 전야” 등 최백호 선생님의 노래는 가슴을 저리게 하는 묘한 울림이 있다.

2017년 6월, 최백호 선생님의 데뷔 40주년 기념공연이 성남아트센터에서 있었고, 평생 마음고생 시킨 마누라와 손을 잡고 결혼기념일을 핑계 삼아 공연의 한자리를 차지한 적이 있다.

선생님은 수십 곡을 쉬지 않고 열창하셨고, 열성 팬들은 흥분의 도가니가 되어 떼창으로 화답했다. 지루하기 일색이던 다른 콘서트와 달리,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너무도 멋진 공연이었고, 생각만 해도 선생님의 “낭만에 대하여”가 귓가에 울리는 것만 같다. 많은 관객으로 직접 만나 뵐 수 없어 아쉬웠지만, 최고의 날 중 하루였다.

지금은 고인이 된 백기완 선생이 생전에 필자에게 유일하게 칭찬한 가수가 최백호 선생님이시다.

“왜냐하면 최 선생은 노래를 가슴으로 부르잖아.”
그 말씀 이후로 최백호 선생님의 노래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언젠가 기회가 되면 꼭 공연을 보러 가리라 마음먹고 있었다.

마침 40주년 기념콘서트가 있어 참석하게 되었고, 진짜 가슴 깊은 곳에서 울려오는 영혼의 목소리에 모든 관객이 기립박수를 치며 하나가 되었다.

중광 스님이 “붓을 던져도 그림이 된다”고 하셨듯, 최백호 선생님은 어떤 글귀라도 노래가 되는 마력을 가지고 계신다.

창법은 국악과 트로트, 포크를 모두 아우르며 선생님만의 독특한 장르를 개척하신 선구자이시다.

기타에 사인하고 있는 가수 최백호와 필자 ⓒ조대안 
기타에 사인하고 있는 가수 최백호와 필자 ⓒ조대안 

LP와 기타에 사인을 전화로 부탁드리자, 공덕동 SBS 방송국 사옥 1층으로 오후 7시까지 오라고 하셨다.
만사를 제쳐두고 달려갔다. 조금 일찍 도착해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는데 바로 옆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선생님이 서 계셨다.
필자는 못본 채 아무 말도 못 하고 잽싸게 로비로 나와 멀리서 화장실 쪽을 바라보다가 달려가 공손히 인사를 드렸다.

SBS 러브FM 라디오에서 “최백호의 낭만시대”를 2008년부터 생방송으로 진행해 오신 선생님께서는 방송 준비 중이라 시간이 없다며 1층 로비에 마련된 탁자에서 20여 장의 LP에 사인을 해주셨다.

기타 1대에는 대표곡 “영일만 친구” 제목과 함께 사인을 부탁드렸는데, “낭만에 대하여”라고 적으시며 멋진 사인을 해주셨다.

‘왜 “영일만 친구”라고 안 쓰시고 “낭만에 대하여”라고 쓰셨을까’
고개를 갸우뚱하는 필자를 바라보시더니, 들고 있던 다른 기타에 “영일만 친구”라고 추가로 사인해주시며 미소를 지으셨다.

“선생님, 제가 고 백기완 선생님과 친분이 많았습니다. 백 선생님께서 선생님의 노래를 정말 좋아하셨고, ‘최 선생님은 노래를 입으로 부르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부르신다’고 항상 칭찬하셨습니다.”

이렇게 말씀드리니, “그래요? 처음 듣는 얘기네요.” 하시며 미소를 지으셨다.

건강이 좋지 않으시다는 말씀에 많은 대화를 나누진 못했다.

LP 한 장 한 장에 사인하시는 모습이 진지했고, 싸인도 멋진 그림처럼 정성스럽게 해주셨다.
정말 대단한 날이었다.

생방송 시간이 되어 급히 사무실로 올라가시는 뒷모습이 많이 지쳐 보이셨다. 사실은 싸인한 기타를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싶었지만, 선생님의 건강이 걱정되어 용기가 나지 않았다.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이렇게 직접 만나 LP에 사인받고, 기타에도 사인받은 것만으로도 대단한 영광이었다.

사무실 한켠에 서 있는 기타를 바라보면 공덕동 SBS 사옥 1층에서 있었던 그날의 추억이 흑백사진처럼 오버랩된다.

부디 건강하시고, 또 건강하시길 빈다.


♬ 낭만에  대하여

궂은 비 내리는 날
그야말로 옛날식 다방에 앉아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새빨간 립스틱에
나름대로 멋을 부린 마담에게
실없이 던지는 농담 사이로
짙은 색소폰 소릴 들어보렴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실연의 달콤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이 잃어버린 것에 대하여

밤늦은 항구에서
그야말로 연락선 선창가에서
돌아올 사람은 없을지라도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첫사랑 그 소녀는
어디에서 나처럼 늙어갈까
가버린 세월이 서글퍼지는
슬픈 뱃고동 소릴 들어보렴

이제 와 새삼 이 나이에
청춘의 미련이야 있겠냐만은
왠지 한 곳이 비어 있는
내 가슴에 다시 못 올 것에 대하여
낭만에 대하여

 


 조대안
 조대안

단국대학교 경영학 석사
 필리핀국제문화대학 명예 철학박사
 칼빈대학교 명예인문학박사
 한국고승유묵연구소장
 중광미술연구소장
 용인한국근대문학관 건립위원장
 음반수집 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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