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혜의 하프타임, 책이 내게로 왔다 【54】 

사람을 살리는 일

빛이 멜로디를 타고 퍼지는 형상을 나타낸 책표지
빛이 멜로디를 타고 퍼지는 형상을 나타낸 책표지

조해진의 장편 ‘빛과 멜로디’는 사람을 살리는 일의 위대함을 말하는 작품이다. 세계 곳곳에서 일어나는 종족간 분쟁이나 국가간 전쟁으로 희생되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무관심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고 역설한다. 나아가 지금 우리 것이라 믿고 당연한 듯 누리는 이 안온한 평화도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고 경고한다.

이 작품은 다큐사진가 '권은'과 '게리'의 삶을 두 축으로 한다.

권은은 아무런 희망도 없이 죽음만 생각하던 열두 살 때, 자신을 살게 한 ‘남을 걱정해주는 마음’을 잊지 않는다. 그 마음은 전쟁터에서 목숨 걸고 사진 찍다가 다리를 잃고, 의족을 하고서도 난민캠프에서 계속 사진을 찍으며, 이에 그치지 않고 피사체인 사람을 살리는 일로 이어진다. 영국인 사진가 게리의 사진집은 권은을 사진가의 길로 이끌었다. 조해진 작가는 그의 다큐멘터리 필름을 연결고리로 권은과 승준은 다시 이어주면서 게리의 삶을 조명한다. 전쟁터에서 죽을 고비를 여러 번 넘기면서도 그 참상을 알리는 강렬한 사진과 다큐멘터리 필름을 발표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친 사람으로 그려진다.

이 책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전문 다큐 사진가의 두 가지 내적 갈등을 정면에서 다룬 부분이다.

하나는 전쟁터와 난민캠프의 참상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세상에 알리는 일이 과연 세계의 분쟁을 막을 수 있는가에 대한 회의이고, 다른 하나는 “배경은 아름답고 구도는 안정적이되 그 안의 사람들은 더 아프고 더 불쌍하게 보이는 사진”(P.172)을 남기고 싶은 욕망에 대한 환멸이다. 게리는 비참한 현장에서도 별이 빛나는 밤하늘을 배경으로 팔이나 다리가 없는 사람을 데려다 모델로 세우고 싶다면서 이런 의도된 설정으로 사진을 찍는 자신이 진실을 보여줄 자격이 있는지 의심한다. 그러면서도 난민캠프에서 분유를 타놓고 기다려 깡마른 엄마들이 모여들면, 그들이 아기에게 분유를 먹이는 장면을 찍는 게리의 모습을 그려 작가는 직업윤리와 작업 현실과의 괴리 사이에 갈등하는 사진가들을 형상화한다.

이 책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게리와 아버지의 관계를 서술한 부분이다.

아버지는 2차 대전 때 영국공군으로 독일 드레스덴에 소이탄을 퍼부은 폭격기 조종사였다. 그는 끝까지 그게 민간인 학살이란 걸 몰랐다고 주장했지만 실은 죽을 때까지 죄의식으로 고통받았다. 작가는 권은의 입을 빌어 드레스덴 폭격을 담은 사진들이 게리가 사진가가 된 계기라며 그가 고교졸업 후 집을 떠나 죽을 때까지 아버지와 관계를 끊었다고 썼다. 하지만 게리가 자신의 삶을 말하는 장(챕터)이 따로 있는데도 정작 중요한 그 절연의 동기와 아버지를 바라보는 그의 심정은 나와있지 않다. 그래서 독자들은 명령권자도 아니고 스무 살짜리 군인인 아버지가 폭격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걸 게리가 단죄하여 절연했다고 밖에 볼수 없어 공감하기 어렵다.

특히, 죄책감으로 자살을 기도한 아버지의 소식을 듣고도 연락조차 하지 않는 아들의 모습은 냉혹하기까지 하다. 평생 죄책감에 사로잡혀 괴로워했을 아버지를 불쌍히 여기지 않았다면, 전쟁난민에게 보여주는 그의 연민과 인류애조차 진심일까 의심하게 만든다. 작가도 이를 의식했는지 게리가 죽기 직전 아버지에 대한 언급이 한두문장 나오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는 인상을 준다.

작가 조해진 ⓒ 창비
작가 조해진 ⓒ 창비

제목 ‘빛과 멜로디’는 사람을 살리는 일을 은유한다. 팔아서 돈으로 쓰라고 건네진 카메라가 ‘빛’으로 어린 권은을 살렸고, 유대인 박해를 피해 창고에 숨어있던 바이올리니스트 알마에게 전해진 악보의 소리없는 ‘멜로디’가 알마를 살렸다. 작가 조해진은 2019년 발표한 장편 ‘단순한 진심’으로 해외입양 문제와 기지촌 여성의 존재를 우리에게 환기시켜주었듯이 ‘빛과 멜로디’를 통해서는 우리 사회 사각지대와 전쟁터와 난민캠프를 조명하면서 우리도 언제든 그렇게 될 수 있다며 깨어있어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말자고 설득한다.

이 작품은 조해진이 십년 전 발표한 단편 ‘빛의 호위’를 장편으로 확장한 소설이다. 권은의 시점으로 서술하는 ‘빛과 멜로디’와는 달리 승준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빛의 호위’가 더 짜임새있고 흡인력 있어 단편도 읽어보기를 권한다.

 


최성혜
최성혜

1982. 2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도서관학 학사

1982. 2 한국도서관협회 정사서

1981. 12 대한조선공사

2000-2015년 수능 영어 강사

2018. 11 용인시 문화관광해설사 영어담당 근무

2021년~ 용인일보 '책이 내게로 왔다', '두근두근 인생2막' 오피니언 시리즈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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