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준(1904.~1978) 소설가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이태준(1904~1978) 소설가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상허 이태준(李泰俊)은 1904년 강원도 철원에서 보통학교 교관과 주사를 지낸 지식층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개화당에 가담한 그의 아버지는 나라를 개혁하려다 실패하자 가족을 이끌고 러시아 땅인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지만 이태준이 다섯 살 나던 해에 화병으로 죽는다. 얼마 뒤 어머니마저 세상을 뜨는 바람에 고아가 된 이태준은 누이 둘과 함께 철원의 친척집에 맡겨진다. 철원의 간이농업학교를 거쳐 휘문고보를 다니면서 교내청소로 학비를 면제받고 책장사로 수업료를 조달하는 생활에서도 학예지 <휘문>의 학예부장으로 다수 작품을 실어 문학적 소양을 발휘한다. 학내 동맹휴교를 주도하여 퇴학당한 후 늦은 나이에 입학한 도쿄의 조치대학에서도 중퇴했다.

1925년 단편소설 「오몽녀(五夢女)」(1925)를 『시대일보(時代日報)』에 발표하면서 등단한 이후 「달밤」(1933), 「까마귀」(1936), 「복덕방」(1937) 등 단편소설의 미학을 보여 주는 여러 작품을 썼다. 1932년부터 이화전문학교, 경성보건전문학교에 출강하며 <삼천리(三千里)>와 <동방평론> 잡지에 「불우선생(不遇先生)」, 「고향」, 「어떤 날 새벽」, 「실낙원 이야기」등을 발표했다.

이태준은 이효석(李孝石)·김기림(金起林)·정지용(鄭芝溶)·유치진(柳致眞) 등과 구인회(九人會)결성하여 활동하였고 일제 말기에는 순문예 잡지 《문장(文章)》지의 편집자로 활약하면서 최태응, 임옥인 등의 작가를 배출하였다.

그는 문장 자체에도 관심을 기울여 『문장강화』(1940)를 쓰기도 했다. 여기에서 그는 현대적이고 개성적인 문장의 정체는 ‘사물에 대한 정확하고도 극명한 지각’에 있다고 하면서 구체적인 방법으로 일물일어설, 언어의 감각적인 운용, 사물에 대한 개성적인 접근 등 세 가지를 제시한다.

일제의 탄압이 더욱 가혹해지자 1940년 <문장>에 친일색채가 짙은 「토끼이야기」와 「지원병 훈련소의 1일」을 싣는 등 일본어로 된 많은 글을 내놓는다. 그는 황군위문작가단, 조선문인협회와 같은 친일 단체에 관여하고, 일제가 주는 ‘조선예술상’을 받기도 하였다. 하지만 춘원처럼 적극적으로 협력하지는 않고 그 활동이 소극적이고 미온적이었으며 작품 내용도 친일성향이 그다지 격렬하지는 않았다.

고향으로 내려가 글쓰기를 중단할 때까지 이태준은 그 주제에 있어서나 연작에 가까운 유형의 작품을 발표한다. 「토끼이야기」, 「사냥」, 「무연」, 「석양」, 「돌다리」가 이에 해당하는데, 자신의 창작 변화를 더는 지속시킬 수 없는 작가의 고뇌가 드러난 작품이다. 1943년 <인문사>에서 『대동아전기』를 간행하고 같은 해 장편소설 『왕자호동』을 마지막으로 붓을 꺾고 고향인 철원 용담으로 낙향하여 ‘한내천’에서 낚시를 하는 등 유유자적한 생활로 소일하다가 해방을 맞는다.

해방 이후에는 조선문학가동맹 부위원장으로서 활동하며 이 단체의 기관지인 <문학>에 자신의 변모 과정을 담은 「해방전후(解放前後)」를 발표한다. 일종의 고백서인데 자신이 좌파 이념을 선택하게 되는 계기 등 8.15 전후의 일들을 풀어낸 작품이다. 일제강점기 민족의 과거와 현실적 고통을 비교하는 문제의식을 가지고 작품을 썼으며, 그의 간결하면서도 호소력 있는 묘사적 문장은 독자의 호응을 크게 받았다. 그가 선택한 인물들은 가난하고, 무력하지만 우리의 전통적 삶 의식을 잘 드러내며 인간미가 풍기는 것이 특징이다.

결국 그는 일제 강점 기간에 보인 자신의 소극적 처세에 대한 자책과 자괴감으로 ‘민주주의민족전선’의 일원이 되어 1946년 홍명희와 함께 월북한다. 그는 ‘방소문화사절단’의 일원으로 약 2개월간 소련을 돌아보고 기행문집 『소련기행』을 출간한다. 1956년에 그는 지난날 구인회에 가담해 다수의 우경적이고 친일적인 작품을 썼다는 죄목으로 혹독한 규탄을 받고 함흥으로 쫓겨간다. 거기서 그는 <함흥로동신문>의 교정원과 콘크리트 블록 공장의 노동자로 전락한 이후 같은 해 문학예술출판부 열성자회의에서 비판을 받고 숙청된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알려진 그의 마지막 행적은 66살이던 1969년 강원도 장동탄광 노동자 지구에서 사회보장으로 부부가 함께 살고 있는 모습이었다.

한국근대문학, 이태준 - 돌다리 초간본 표지  ⓒ용인일보 소장
한국근대문학, 이태준 - 돌다리 초간본 표지  ⓒ용인일보 소장

[작품 소개] 돌다리는 1943년 1월 『국민문학』에 발표한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의 단편소설이다. 일본 강점기인 1930년대 시골 농촌 마을을 배경으로, 물질적 가치관에 젖어 농토를 팔아 병원을 확장하려는 아들과 땅을 소중히 여기는 아버지 사이의 갈등을 통해, 물질만 중시하는 근대적 사고방식에 대한 비판 의식을 잘 드러낸 작품이다.

의사로 성공한 창섭은 병원을 확장하기 위하여 아버지에게 도움을 청하러 고향을 찾는다. 아들과 아버지는 집앞 돌다리를 고치는 문제로 언쟁한다. 나무다리가 쉽게 만들 수 있어 비용이 적게 들고 실용적이라는 근대적 사고방식의 아들과 비록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지만, 지속성 있는 돌다리를 추구하는 전통적인 가치관을 가진 아버지가 대립한다. 근검으로 동네에서 칭찬이 자자한 아버지는 재산을 늘리기보다는 선대가 물려준 땅을 잘 가꾸는 데 집중하는 사람이다. 창섭은 어차피 자신이 부모님을 모셔야 하고, 소작을 맡기는 것도 마음이 안 편하니 땅을 모두 팔자고 하지만 아버지는 땅을 팔 수 없다면서 자식에게도 물려주지 않겠다고 말한다. 창섭은 거의 종교적인 신념으로 땅을 대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인정하기보다는 이해하면서 서울로 돌아가고, 아버지는 튼튼하게 고쳐진 돌다리에 기뻐한다.

「돌다리」는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면서도 아버지의 세계를 인정하고 어느 선에서는 경외하는 마음으로 바라보는 창섭의 모순적 심리를 잘 나타낸다. 이태준은 승자로 아버지를 선택하며, 물질만능주의에 빠져 있는 당시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조대안
 조대안

단국대 경영학 석사
필리핀국제문화대학명예철학박사
한국고승유묵연구소장
중광미술연구소장
용인한국근대문학관 건립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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