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작 (1940.2.3.~) 한국현대문학대사전
조선작 (1940.2.3.~) ​ⓒ한국현대문학대사전

1940년 충남 대전에서 태어난 조선작은 초등학교때 한국전쟁을 겪었고 그때 행방불명된 아버지의 생사도 모르고 가난하게 자랐다. 1960년에 대전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소설가로 데뷔하기 전까지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며 신춘문예에 여러 번 도전했지만 번번이 낙방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당시 신춘문예 심사를 자주 했던 김동리 작가는 조선작이 글 솜씨는 뛰어났는데 작품의 소재가 건전하지 못하다고 판단해 당선작에서 제외했다고 한다. 1971년 월간 『세대』에 단편소설 「지사총(志士塚)」을 발표하고 등단했다. 그의 작품 속엔 가난, 억압, 방황, 소외, 부조리 같은 암울한 느낌이 가득했다.

‘모눈종이 위의 생’은 조선작이 ‘영자의 전성시대’로 일약 스타 작가가 된 1970년대를 마감한 직후에 써낸 작품이다. 1981년에 신문 연재가 끝난 후 단행본으로 펴내기 위해 자신이 직접 ‘신작사’(新作社)라는 출판사를 만들었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고 나중에 텔레비전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다.

주요작품으로 「시사회」(1971), 「영자의 전성시대」(1973), 「밀도살」(1973), 「여자 줍기」(1974), 「경자의 코」(1974), 「외야수」(1974), 「미술대회」(1974), 「아버지 찾기」(1975), 「초토」(1978), 「굴레」(1987) 등의 소설과 『영자의 전성시대』(1975), 『외야에서』(1975), 『장대높이뛰기 선수의 고독』(1980), 『미완의 사랑』(1982), 『완전한 사랑』(1983), 『우수의 사슬』(1984) 등 6편의 창작집이 있다.

그는 현실 사회의 구조적 부조리, 특히 소외된 밑바닥 인생을 소재로 하여 현실에 대한 비판적인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주제의 심각성과 그 무거움에도 불구하고 언어 표현의 새로움과 재치있는 구성으로 소설의 재미를 살려 놓고 있다는 평을 받는다.

조선작의 작품들은 크게 두 가지 경향으로 나누어 볼 수 있다. 그 하나는 <영자의 전성시대>로 대표되는 창녀 등 밑바닥 인생들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작품들이고, 다른 하나는 <고압선>과 같이 소시민의 일상을 다룬 작품들이다.

<고압선>은 월급장이 가장과 근검하게 살림해 온 아내, 아이들 그리고 모은 돈으로 자기 집을 가지려는 소시민의 이야기다. 마음에 드는 집을 발견하지만 집 위로는 고압선이 지나가고. 나중에 문제가 생겨 팔려고 하자 집을 소개 할 때와는 다른 복덕방 영감의 태도에 화낼 기력도 없는 소시민의 삶과 무기력한 태도를 그린다. 출근길의 남편을 배웅하며, 동네 사람들에게 들리도록 큰 소리로 집 살 동네를 남편에게 소리치는 아내의 모습, 자기가 돌아본 집의 구조와 위치를 서투른 솜씨로 그려 보이는 남편의 모습, 새로 마련한 집에서 마루에 나란히 배를 깔고 누워 숙제를 하는 아이들의 모습, 이 모두가 당대 소시민의 삶에 대한 전형적인 풍속도이다. 소시민의 생활의 디테일과 집 마련에 나선 그들의 기쁨에 대한 작가의 묘사가 사실적이며 소시민의 일상을 위협하고 있는 보이지 않는 폭력을 우회적으로 다루고 있다.

한국근대문학 조선작, 영자의 전성시대 초간본 표지  ​ⓒ용인일보 소장
한국근대문학 조선작, 영자의 전성시대 초간본 표지  ​ⓒ용인일보 소장
한국근대문학 조선작, 영자의 전성시대 초간본 판권지
한국근대문학 조선작, 영자의 전성시대 초간본 판권지  ​ⓒ용인일보 소장

<작품 소개> 1973년 발매된 조선작의 소설이다. 먼저 발표된 '지사총'과 '영자의 전성시대' 두 편이 함께 묶여 있는 연작이다. 당시 유행하던 호스티스물의 전형적인 구성을 따르고 있는 통속소설이지만, 70년대 당시 사회상을 사실적으로 대변하는 사회소설이기도 하다.

「영자의 전성시대」에서 작가는 산업사회로 본격적으로 접어들면서 한국 사회의 새로운 문제로 부각된 여성의 상품화 현상을 ‘창녀’ 혹은 ‘호스티스’라는 사회적 존재에 초점을 맞춰 다루면서 1970년대 고도성장의 이면에 숨은 우리 사회의 슬픈 자화상을 보여주고 있다.

주인공 창수는 베트남 전쟁에 파병되었다가 3년 만에 돌아와 제대한 뒤 목욕관리사(때밀이)로 일하는데, 사창가를 찾았다가 영자를 만난다. 그가 군대에 가기 전, 시골에서 올라온 영자는 창수가 일하던 철공소 사장네 식모였다. 창수는 영자를 좋아했지만 영자는 돈 벌러 온 거지 연애하러 온 게 아니라며 마음은 있으면서도 창수를 거절한다. 창수가 군대 영장을 받고 떠난 사이 영자는 철공소 사장집 아들에게 겁탈 당하고 쫒겨나면서 식모일도 못하게 된다. 공장 등을 전전하다 버스 안내양을 하게 되지만, 사고로 한쪽 팔을 잃게 된다. 외팔이 창녀가 되어 꿈도 희망도 없이 살아가다 창수와 마주치게 된 것이다. 창수는 양복점을 차리겠다는 꿈도 뒤로 하고 영자에게 계속 돈을 쓰다가 의수까지 만들어 줄 정도로 순정남이 되는데, 그런 그를 두고 주위 사람들은 혀를 찬다. 창수는 영자가 외팔이라고 돈을 물어내라는 남자와 시비가 붙어 남자를 폭행해서 감옥에 간다. 출소 후 창수는 영자를 찾고 둘은 함께 살기로 한다. 그 와중에 경찰 단속이 있었고, 영자는 운 좋게 단속을 피해 도망치지만 얼마 뒤 함께 살 방을 마련하기 위해 포주에게 돈을 받으러 갔다가 사창가에 화재가 일어나 불타 죽고 만다.

이들의 삶은 70년대 밑바닥 민초들의 삶의 이력을 그대로 보여준다. “기왕 이렇게 알몸뚱이로 벌어먹어야 할 줄 진작에 알았더라면 곧바로 이리로 찾아왔지 미쳤다고 여차장에 뛰어들었겠느냐고... 여차장을 하다가 만원버스에서 떨어져 마침 달려든 삼륜차 앞바퀴에 팔 한 짝을 바쳤노라”고 말하는 영자의 삶은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돈을 벌겠다고 도시로 무작정 상경한 사춘기 소녀들이 이르게 되는 최악의 코스를 보여준다. 창수 역시 변두리 직업을 전전하는 뿌리뽑힌 하층민의 젼형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준다. ‘파월’, ‘베트콩’으로 반복적으로 연상되는 국가 공권력과 전쟁, 살해와 폭력이 함께 뒤섞여 있다. 그런 “별 볼일 없는 사람들끼리” 방을 얻어 살림을 차리려는 소박한 꿈조차 비극으로 끝난다. 이렇게 불행한 현실, 초라한 꿈을 짓밟는 한국사회의 비극성은 고조되고 출구를 찾지 못한 분노는 “싹 쓸어 불질러 버리고 싶”다는 말로 표출된다.

1970년대 한국사회를 상징하는 주요한 문화기호로서 창녀, 호스티스라는 소재는 산업사회의 사회적 계급적 도시생태와 관련되어있다. <영자의 전성시대>는 70년대 경제개발의 성공과 그에 따른 소비문화의 변모와 양적 성장이라는 빛과 그 빛에 수반될 수밖에 없는 그늘인 농촌의 피폐와 해체, 도시빈민층의 소외, 노동착취 등 당시 한국 산업사회의 빛과 그늘 두 가지 측면을 동시에 보여주는 대표적인 소설이라고 평가된다.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한 동명의 영화가 1975년에 개봉됐다. 원작의 몇 장면이 수정되고 영자가 불타 죽는 원작의 불행한 결말 대신 영자가 창수를 떠나 다른 남자와 잘 사는 걸 창수가 확인하는 해피엔딩으로 대체되었다. 영화는 당시 서울 관객 36만명을 모으며 대흥행을 기록했다. 영자역에 배우 ‘염복순’, 창수역에 ‘송재호’. 김호선감독으로 태창흥업이 제작했다.

 


 조대안
 조대안

단국대 경영학 석사
필리핀국제문화대학명예철학박사
한국고승유묵연구소장
중광미술연구소장
용인한국근대문학관 건립 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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