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혜의 하프타임, 책이 내게로 왔다【38】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집 ⓒ 포토뉴스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집 ⓒ 포토뉴스

저자 플래너리 오코너는 1925년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에서 태어나, 아이오와대학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뉴욕주와 코넥티컷에서 창작활동을 했던 5년간을 빼곤 조지아를 떠난 적이 없다. 스물다섯살 때 발병한 루푸스병으로 서른아홉 살에 합병증(신장병)으로 사망한 저자는 짧은 생애에 좁은 고향마을에서 한정된 경험만 가지고도 흑백갈등, 세대단절, 빈부격차와 종교적 편견 등 인간의 깊은 내면을 꿰뚫은 많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플래너리 오코너 단편소설집756쪽에 달하는 벽돌책으로 서른 한편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작품마다 독특한 소재로, 뒤틀린 인물들의 위선과 허위를 신랄하게 비꼬거나 무지한 기독교도를 통렬하게 비판한다. 작품마다 마지막에 터뜨리는 아무도 예측할 수 없는 기괴한 결말에 이르러서는 작가의 천재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플래너리 오코너 기념우표 ⓒ Literary Ladies Guide
플래너리 오코너 기념우표 ⓒ Literary Ladies Guide

단편 절름발이가 먼저 올 것이다의 주인공 셰퍼드는 1년 전 사랑하는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어린 아들과 둘이 사는데, 자신의 불행에 매몰되지 않고 열성으로 불쌍한 사람들을 돕는다. 시청 소속 레크리에이션 지도사인 그는 토요일마다 소년원에서 카운슬러로 봉사하면서 사회에서 외면당한 아이들을 돌본다. 여기서 만난 소년 루퍼스 존슨이 소년원을 나와 쓰레기를 뒤지며 사는 걸 보자 그는 아이를 정상적인 사회의 일원이 되도록 돕고 싶어서 함께 살자고 제안한다. 모든 것을 가진 환경에 있는 자신의 친아들은 탐욕스럽고 둔감하기만 한 평균이하의 아이인 반면, 박탈당한 환경에 절름발이인 존슨은 예민하고 아이큐도 높아 잠재력이 보였기 때문이다.

자신의 선의를 받아들여 존슨이 집으로 들어오자 기뻐하는 셰퍼드는 거금을 들여 절름발이를 보완해줄 특수 구두를 맞춰주고 망원경과 현미경을 사주며 지적인 환경을 마련해 주는 등 온갖 정성을 다한다. 하지만 그가 선한 마음으로 베푸는 모든 친절을 소년은 교묘하게 하나하나 부숴버린다. 그는 존슨이 주워들은 엉터리 기독교 교리로 반항할 때마다 논리적인 지성으로 이끌려고 애쓰지만, 존슨은 이미 셰퍼드를 넘어선 존재다. 가장 약한 곳을 영리하게 파고들어 공략한다.

1년 전 엄마를 잃은 열 살짜리 아들이 '엄마는 어디 있냐'고 울부짖을 때, 아버지 셰퍼드는 '엄마는 죽었고 아무 데도 없다'고 단언하여 아이를 공허속에 빠뜨린다. 무신론자로서 진실만을 말해야 한다는 신념때문이다. 아들에게 실망할수록 존슨에게 더 정성을 쏟는 셰퍼드는 아들의 말은 무시하고 존슨의 말만 믿는다. 그 둘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려고 하지도 않는다.

마침내 존슨의 실체를 알게 되었을 때, 셰퍼드는 두려움에 떨면서도 존슨을 내쫓지 못한다. 자신의 실패를 인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불쌍한 인생을 도우려는 선한 마음이 왜 이런 결과를 낳았을까. 이해할 수 없어 절망 속에 주저앉아 불안에 떨고 있던 그는 끔찍한 파국을 맞는다.

고향에서 아끼는 공작새들과 함께 한 작가 ⓒ Library Hub
고향에서 아끼는 공작새들과 함께 한 작가 ⓒ Library Hub

제목인 절름발이가 먼저 올 것이다는 성경 이사야서 3323절을 인용했다. “많은 재물을 탈취하여 나누리니 저는 자도 그 재물을 취할 것이며란 성경말씀인데, 여기서 저는 자절름발이란 무력한 약자의 대표격이다. 전쟁터에서 아무 기여를 할 수 없는 자들조차도 무리 안에 있기만 하면 약탈물을 똑같이 나눠가진다는 말로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라는 뜻인데, 존슨은 절름발이인 자신을 당당하게 주장하는 근거로 이 성경구절을 끌어다 이용한다.

셰퍼드는 눈에 보이지 않는 신에 기대지 않고 꿋꿋하게 살려하는 바른 사람이다. 하지만 아내를 잃은 슬픔을 자신의 선행만으로 이겨내려고 하면서 그는 엄마 잃은 어린 아들의 고통을 보지 못했다. 아니, 어린아이가 혼자 이겨내기를 무리하게 요구했다. 그 틈새를 영악한 악마가 놓칠 리 없다. 돌봐야 할 가정보다 자신의 의에 사로잡힌 선행이 어떻게 인간을 파괴하는가를 섬뜩하게 사실적으로 보여준 뛰어난 작품이다.

플래너리 오코너의 단편들은 짧은 분량이지만 간결하고 강렬한 묘사와 빈틈없이 치밀한 구성으로 독자들은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다. 강력하게 추천한다.

 


최성혜
최성혜

1982. 2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도서관학 학사

1982. 2 한국도서관협회 정사서

1981. 12 대한조선공사

2000-2015년 수능 영어 강사

2018. 11 용인시 문화관광해설사 영어담당 근무

2021년~용인일보 '책이 내게로 왔다' 오피니언 시리즈 연재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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