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혜의 하프타임, 책이 내게로 왔다 【41】
혼자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라
여자가 글을 쓰려면, 연 5백 파운드의 수입과 자기만의 방이 필요하다.
<자기만의 방>에서 나오는 이 유명한 구절은 수십 년 전 내가 학생일 당시 젊은 페미니스트 여성들의 깃발이었으며 내게도 큰 영향을 끼쳤다.
저자인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는 1925년부터 잇달아 발표한 ‘댈러웨이 부인’ ‘등대로’와 ‘올랜도’로 호평을 받은 소설가이긴 하지만 뛰어난 비평가로도 이름을 날렸다. 여성의 사회적 성취가 드물었을 당시 성공한 여성 작가로서 재능있는 젊은 여성들의 롤모델이었을 버지니아가 그들에게 강연한 내용을 책으로 엮었다.
저자는 ‘여성과 픽션’이라는 주제로 강연을 준비하면서 자신의 생각을 풀어놓는다. 일반적으로로 책의 서두에 주제가 나오면 독자들은 곧이어 작가가 주장을 전개해 나갈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독자는 이 책에서 어떤 한 소주제에 대한 작가의 결론을 들으려면 꽤 오랫동안 참을성 있게 작가의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야 한다. 눈에 보이는 꽃과 나무, 시냇물의 흐름 등을 자세하게 보여주고, 대학 건물과 모인 사람들의 모습과 행동에 대한 상세한 설명, 또한 만난 사람의 행동과 자신의 느낌 등 소소한 사건과 식사 메뉴 하나하나까지 상세하게 묘사한다. 그 사이에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과 느낌과 비평을 더하면서. 주변 풍경과 처한 상황에 반응하는 자신의 의식을 물 흐르듯이 술술 묘사하는 부분은 감탄하면서 읽었지만 주장하는 바가 나올 때까지 집중력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여성과 글쓰는 일’을 말할 때 셰익스피어의 여동생 ‘주디스’와 작가와 동시대인 ‘메리 카마이클’이란 가상의 두 인물을 만들어내어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기법이 참신하다.
먼저, 역사적으로 왜 여성이 애초에 능력을 키울 수 없었는지를 ‘셰익스피어에게 여동생이 있었다면’이라는 발칙한 상상을 통해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16세기에 빛나는 명작들을 남겨 ‘대문호’라는 찬사를 받은 셰익스피어는 그가 단지 남자였기 때문이라고. 그의 여동생은 같은 환경에 그에 못지않은 재능을 가졌더라도 여자기 때문에 사회의 편견과 부당한 압력과 비난에 맞서 몸부림을 치다가 재능을 피우기도 전에 죽었을 거라고 주장한다.
다음, 자신과 동시대 여성인 ‘메리 카마이클’이 쓴 책은 혹평한다. ‘천재적인 재능’도 없고 재치도 없고 상상력도 없는 작가지만 이전 세대보다 여성들에게 더 많은 자유가 주어진 덕분에 부족한 환경에서라도 철저하게 노력했기 때문에 그 정도라도 이룬 거라고 말하며 이렇게 덧붙인다. “그녀에게 1백 년이라는 시간이 더 주어진다면, 그녀에게 자기만의 방과 매년 5백 파운드라는 돈이 주어진다면 (…) 머지않아 더 나은 책을 쓸 수 있을 거라고 확신했어요.”(p.141) 여기에서 ‘백년’은 버지니아 울프가 여성이 남성과 평등한 삶의 조건을 가지게 될 때까지 걸릴 거라고 예상하는 시간을 말한다. 작가의 예언처럼 이 책을 쓴 1929년 이후 거의 백년이 지난 요즘이 되어서야 여성들은 겨우 비슷한 기회를 얻었다. 여성이 타고난 재능을 발휘하려면 돈과 집뿐만 아니라 여성들에게 우호적인 사회적인 환경도 필요함을 역설했다.
마지막으로, 버지니아 울프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매달릴 수 있는 팔은 없으며 혼자 힘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p.169)
스스로 돈을 벌어 자신과 세계에 대해 생각하며 재능을 갈고닦아 작품을 남겨 세상에 좋은 일을 하라고. 그렇게 치열하게 산다면 설사 살아서 인정받지 못해도 가난하게 산다 해도 가치있는 삶이라고 등을 두드려준다.
가정과 아이들만이 진정 내 생의 전부인지, 세계의 일부로서 여성으로 태어난 나는 홀로 설 수 있는 인간인지 회의하는 여성들에게, 특히 이루고 싶은 꿈이 있지만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며 부족한 기회와 우호적이지 않은 환경 때문에 앞으로 나아가기를 주저하는 모든 여성과 남성들에게 큰 울림을 주는 책이다.
1982. 2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도서관학 학사
1982. 2 한국도서관협회 정사서
1981. 12 대한조선공사
2000~2015년 수능 영어 강사
2018. 11 용인시 문화관광해설사 영어담당 근무
2021년 용인일보 '책이 내게로 왔다' 오피니언 시리즈 연재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