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희(1906~1990)는 1937년 「흉가」를 <조광>에 발표하면서 등단하여 개성있는 문학세계를 보여줌으로써 당시로서는 보기 힘든 섬세한 여성심리묘사를 통해 여성문제를 형상화하여 문단의 관심을 받았다. 그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체험을 토대로 자기를 드러내면서도 동시에 감추는 고유한 방식으로 진실을 탐구해나갔다.
1906년 함북 예동에서 태어난 최정희는 소설가로서 또 전쟁중엔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아버지가 다른 여자를 얻어 집을 나가면서 불우한 유년시절을 보낸 작가는 자신의 결혼생활도 순탄하지 못했다. 영화감독 김유영과 결혼하여 아들을 두었지만, 시인 김동환을 만나게 되어 남편 김유영을 떠나, 부인과 헤어진 김동환과 결혼하지만 전쟁 후 그의 납북으로 홀로 되었다.
제2차 카프 검거사건으로 불리는 1934년 신건설사 사건은 그녀의 삶을 뒤집어놓았다. 사회주의자(김유영)의 아내라는 이유로, 사회주의 서적을 읽었다는 이유로 감옥에 갇혀야 했던 최정희는 9개월동안의 수감생활로 그는 지니고 있던 기독교 신념을 모두 버리고, 자신을 구원할 길은 오직 문학밖에 없다는 사실에 직면한다. 그녀는 작품의 주인공에 대해 “나 자신의 이야기인 것같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나 나는 굳이 변명을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내가 쓴 모든 소설의 주인공이 ‘나’일수도 있고 ‘나’ 아닐 수도 있기 때문이다”며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다. ‘굳이 변명하지 않는; 여성들의 삶을 재현하려 했다.
『지맥』, 『인맥』, 『천맥』 에 등장하는 주요 주제인 ‘결혼제도를 넘어선 연애’는 당시 지식인들이라면 한번쯤 시도했을 법한 사회현상이기도 했다. 조혼의 풍습이 남아있던 그 당시에는 지식인들 사이에 자유연애 사상이 퍼져있었다. 교육을 받느라 혼기가 늦어진 ‘신여성’들의 연애상대는 이미 아내와 자식까지 둔 유부남인 경우가 많았다. 그러므로 작품 속 주인공들은 당시 ‘신여성’들의 삶과 고뇌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들은 모두 교육받은 여자다. 이들은 아내가 있는 남자를 사랑하게 되어 갈등 상황에 빠지거나, 아내를 둔 남자와 동거하고 아이를 낳아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위치에 있게 된다.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부당한 대우를 받게 되는 것을 보면서 그들은 처절한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자신의 과거를 자책하면서 불합리한 사회제도를 벗어날 방법을 강구하게 되는데, 이는 아이를 정상 가정에서 키우기 위해 사랑 없는 결혼을 하거나, 아이를 위해 새로 만난 진정한 연인을 포기하거나. 그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기독교에 귀의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최정희는 서사 속에서 당시 신여성이 처한 상황을 비판적으로 재현하면서 그의 내면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지맥』, 『인맥』, 『천맥』은 이러한 작가의 장점이 잘 드러나고 있는 작품인데, 주인공들은 당시 신여성들이 그러했듯이 ‘윤리’와 ‘사랑’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하는 모습을 보인다. 특히 아이로 인해 주인공의 내적 갈등이 극심해지는데, 사회윤리를 거슬러 감행한 사랑의 결과로 겪어야 할 고통을 통해 주인공들이 선택하는 길에 다.
단편집으로는 『천맥』(1948) 『풍류잡히는 마을』 (1949) 『바람 속에서』 (1955) 『탑돌이』(1976) 등이 있으며, 장편소설로는 『녹색의 문』 (1954) 『인생찬가』 (1958)가 있다. 1990년 노환으로 정릉 자택에서 별세했다.
<작품 소개> 1947년 <백민(白民)>지에 발표된 최정희의 <풍류잡히는 마을>은 비유를 통해 소작농민들의 좌절된 삶과 농촌의 현실을 폭로한 작품이다. 지주와 소작관계 즉 서흥수와 마을사람들과의 관계는 족제비와 닭이라는, 억압하고 억압을 당하는 관계와 같다. 족제비의 폭력 앞에 무력하게 당하는 닭의 운명은 바로 경제적 취약성으로 변화 앞에 무력한 농민들의 모습이다. 그들에게 남은 것은 해방의 기대로부터 좌절된 분노뿐이다. 광복 직후 남한사회가 재편되는 과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면서, 농민의 삶을 통해 광복의 허상을 파헤친 작품이다.
‘나’는 해방되기 5년 전 서울에서 시골로 이사해 이곳에서 해방을 맞았다. 집에서 기르던 닭들이 족제비에게 자주 물려가자 닭장을 만들기 위해 목수 영감에게 일을 시키는데 그는 일을 자꾸 지체하여 족제비가 닭을 또 물어가자 화가 나있는데, 목수 영감이 일을 지체한 이유가 지주인 서흥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임을 알게 되어 분노한다.
서흥수는 친일적인 마을의 대지주로서, 소작인을 성적에 따라 징용을 보내거나 면제도 시켜주는 횡포를 부리며 부를 채운다. 광복이 되어 토지개혁으로 서흥수의 땅이 줄어들지만 그래도 토지개혁에 민첩하게 대처하는 그의 태도로 인해 소작인들의 삶은 더욱 궁핍해지고, 소작권마저 잃은 그의 전(前) 작인들과 남은 곳에 소작을 부치는 소작인들이 돈을 모아 강가에서 환갑잔치를 벌여주는 것이다. 소작권을 잃지 않기 위해서 소작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없는 돈도 추려모아 선물을 사거나 지주를 붙잡고 애원하는 일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마을 강가 회갑 잔치에서 풍류 소리가 들려오자, 나는 가서 때려 부수고 싶지만 못하고 만다. 그때 마침 풍류 소리가 그치고 목수 영감의 아들이 서흥수의 회갑 잔치상을 뒤엎었다는 소리를 듣고 통쾌해한다.
작가는 농민을 소극적인 인물로 설정하여 체념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그리고 있으며, 소작인의 멍에를 벗지 못하는 사람들의 모습과 해방이 되었어도 여전히 서슬이 퍼런 지주의 모습을 보여 주고 있다. 목수영감의 아들은 교육을 받은 인물로 잘 살아보겠다는 의지와 개혁정신을 갖추고 있으며 아첨을 거부하는 새 세대의 가장 이상적인 농민이다. 마을 사람들의 억울한 마음과 불만들은 그가 마지막에 회갑 상을 엎는 것으로 표현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