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임금의 어머니, 연산군의 할머니, 인수대비는 청주 한씨(淸州 韓氏)이다. 한덕수 총리와 한동훈 대표가 한가(韓家)이다. 인수대비는 며느리인 중전 윤씨가 자신의 생일에 아들 성종의 용안(龍顔)에 손톱자국을 내었다. 대비의 격노는 겉잡을 수 없어 윤씨의 폐서인(廢庶人)을 강행했다. 임금은 어머니의 엄명을 뿌리치지 못했다. 윤씨가 사가로 쫓겨 나와서도 소복(素服)을 벗고 화장을 했다는 모함을 하자 대비의 더큰 노여움을 사 사약(賜藥)을 받고 세상을 떠난다. 연산군이 겨우 6세의 나이였다. 인수대비의 혹독한 훈육은 연산군의 성품을 삐뚤어지게 했다. 어미를 사사(賜死)한 할머니의 가슴팍에 술상을 던지는 패덕도 서슴치 않았다.

또한, 이미 죽은 압구정(狎鷗亭) 한명회 시신을 부관참시(剖棺斬屍)했다. 시체를 토막내고 목을 잘라 한양네거리에 걸어두었다가 가루를 내어 날려버렸다. 한명회는 중종반정이라는 쿠테타로 복권은(復權) 되었지만, 연산군은 임금자리에서 쫓겨나 처자식과 강화도 교동섬에 위리안치(圍籬安置)되었다가 두 달 후에 역질을 앓다가 세상을 떠난다. 춘추 31세 짧은 생애였다. 한씨가와 윤씨가의 처절한 권력투쟁의 말로는 서로의 비극으로 끝났다. 연산군은 자신의 종말을 처연한 심정으로 절창의 시 한 편을 후세의 사람들에게 남겨 심금을 울린다. 

"인생여초로(人生如草露) 회합부다시(會合不多時)". 

인생은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아서 만날 때가 많지 않다는 말이다. 

희대의 폭군이었지만 연산군이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한 시이어서인가 한번더 새겨 보게 되는 것이다. 연산군은 이 시 외에도 재위 12년 동안 백여 편이 넘는 많은 시를 지었다고 한다. 

요즈음 시절을 염량세태(炎凉世態)라고 해야할 것 같다. `불꽃처럼 뜨거웠다가 얼음처럼 차가워지는 세태`라는 뜻이다. 권세를 쥔자에게는 모든 것을 다받칠 것처럼 아부하고 잘 보이려고 했지만, 그 권세가 몰락하면 가차 없이 외면하는 야박한 세상인심을 일컫는 말이다. 어깨에 별을 주렁주렁 단 인간들이 서로 책임을 전가하는 꼴이라니, 

'정승집의 개가 죽으면 급히 조문을 가지만 정승이 죽으면 눈도장 찍을 일 없으니 회피를 한다던가. 레임덕에 빠진 절대 권력자에게서 부나비들은 떠나가는 법이다. 권세가있고 잘 나갈 때 구름떼처럼 몰려들었지만, 몰락할 때는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간사한 인간들의 두 얼굴이 오버랩(overlap)된다. 

대통령 윤석열이 셀프 비상계엄령을 선포했다고 직권남용, 내란혐의로 며칠 사이에 피의자가 되어 사상 초유의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국운이 풍전등화(風前燈火)에 놓인듯하다. 권력이란 무상한 것이며 언젠가는 다 놓고 떠나야 함에도 끊임없이 움켜쥐려고 발버둥치는 이전투구(泥田鬪狗)의 세상을 바라볼 때 옛사람들이 남긴 시 한 편을 권하고 싶다. 진흙밭에서 개싸움을 벌이다가, 어느 날 그들도 때가 되면 주무르던 떡고물을 내려놓고 무장해제가 된다. 

부끄러운 줄 모르고 백성 위에 군림하던 세도가도 어느 날은  홀연히 흩어질 것이며 부나방처럼 권력에 모여드는 세태가 안타까울 뿐이며 연민의 정을 느끼기까지 한다. 허울 좋은 '부귀영화란 만인의 피땀이다.'황량하고 이 씁쓸한 계절 피 끓는 신학생시절에 보았던 바이블의 한구절이 있다. 

"모든 것은 헛되고 헛되다."

사뭇치게 와 닿는다. 지혜로운이여! 가슴에 깊이 새겨둘지어다. 

"저가 모태(母胎)에서 벌거벗고 나왔은즉 그 나온 대로 돌아가고 수고하여 얻은 것을 아무것도 손에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 하지를 않던가. 

물거품같은 찰나의 권력보다 영원한 것은 무엇일까?
베풂이다. 널리 베푼 자욱은 지워지지가 않는 법. 

잔인한 권력의 복수는 더 잔인한 복수를 남길 것이 뻔할 뿐이다.

 


탄탄스님 서래사 주지 / 용인대 객원교수
탄탄스님 서래사 주지 / 전 불교중앙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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