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껍데기는 가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의 시인 신동엽은 1970년대 이후 참여시인들에게는 한용운, 임화를 비롯한 카프 계열의 시인들과 이육사의 맥을 잇는 대표시인이다.
신동엽은 1930년 충청남도 부여에서 태어났다. 부여국민학교를 졸업하고 집안이 워낙 가난해서 관비가 지원되는 전주사범학교에 입학한다. 1948년 동맹휴학 사건으로 기숙사에서 나와 귀향한 신동엽은 부여 근처 초등학교 교사로 발령받지만 사흘만에 그만두고 1949년 단국대 사학과에 입학한다. 한국전쟁이 일어나자마자 귀향해 부여에서 민청 선전부장을 하다가 수복 뒤 국민방위군에 징집된다. 대학졸업후 환도령과 함께 서울로 올라와서 돈암동 네거리 한 귀퉁이에 헌책방을 차린다. 이 책방을 자주 찾았던 인병선과 결혼하여 교사자리를 얻지만 건강악화로 학교를 그만두고 아내와 아이는 서울 처가에 보내고 시인은 부여에 홀로 남아 병과 가난속에서 독서와 습작에 몰두한다. 이시기에 「장시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를 써서 195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입선, 문단에 나오고, 이어 진달래 산천, 시로 열리는 땅 등을 발표하며 본격적으로 시인이 된다.
1960년 건강을 되찾은 신동엽은 서울에서 <교육평론사>에 들어가 4월 혁명의 열기를 체험하고 『학생 혁명 시집』을 펴내며 문학으로 혁명에 뛰어든다. 다음해 명성여고 야간부 교사로 옮겨 간암으로 타계할 때까지 8년동안 교단에 선다. 이 무렵 신동엽은 4.19 혁명정신이 오래지 않아 격동의 세월을 거치며 무너지고 민족의 전통양식이 붕괴되는 과정을 목격하면서, 현실의 허구를 폭로하는 시를 쓰게 된다. 1967년 <신구문화사>가 간행한 현대문학전집 제 18권으로 기획된 52인 시집에 그동안 발표한 시들과 신작시 껍데기는 가라 등 7편을 실음으로써 확고하게 자신의 영역을 구축한다.
껍데기는 가라 / 사월도 알맹이만 남고 / 껍데기는 가라. // 껍데기는 가라 / 동학년 곰나루의, 그 아우성만 살고 / 껍데기는 가라. / 이곳에선,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논 / 아사달 아사녀가 / 중립의 초례청 앞에 서서 / 부끄럼 빛내며 맞절할지니 // 껍데기는 가라./ 한라에서 백두까지 / 향그러운 흙 가슴만 남고 / 그 모오든 쇠붙이는 가라.
동학년 아우성은 힘없는 밑바닥 민중들이 일어나 외세를 배격하고 민중의 해방을 외쳤던 1894년 동학혁명의 아우성을 말한다. 사월혁명도 알맹이는 그 정신뿐, 나머지는 껍데기라고 말한다. 1960년대에 이미 그는 냉전체제 아래 주변부였던 한반도가 국제정치의 역학구도 속에서 중립을 통해 민족 자주국가를 이루자고 말한다. “한라에서 백두까지 향그러운 흙가슴”에 묻혀있던 이 알맹이는 1967년 4천8백여 행에 장편 서사시 「금강」으로 태어난다.
총 26장으로 구성된 이 서사시는 4.19혁명, 1919년 기미독립운동, 1894년 동학혁명 사건들을 차례대로 놓지 않고 현재와 과거를 빈번히 오가거나 병치하는 방법으로 서로 다른 시간대에 일어난 사건을 하나의 전체로 파악하고 있다. 시인은 이 시에서 연민을 느끼는데서 주저앉지 않고 연민의 근원을 생각하고 연민의 상황을 만들어내는 사회의 불의에 대하여 맹렬한 분노를 쏟아내고 동학이야기에서 오늘날의 상황과 똑같은 과거를 발견하고 있다. 4월 혁명에서 들끓는 민중의 염원은 인간 본연의 삶, 민족 고유의 덕성이 어우러진 삶을 회복하는 것이다. 바로, 외세의 압제에서 벗어난 우리 민족의 자주적이고도 주체적인 삶이다.
1969년 간암선고를 받은 지 한 달 만에 신동엽은 서울 성북구 자택에서 서른아홉살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그의 사후 미처 활자화되지 못한 유작시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조국, 영, 서울 등이 고대문학 월간문학 현대문학, 상황 등에 발표된다.
1975년 <창작과 비평사>에서 신동엽 전집이 나온 이래 1979년 시집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1983년 『신동엽 –그의 삶과 문학 1984년 껍데기는 가라 – 신동엽 평전 시선집』. 1989년 시집 『금강』이 잇달아 간행된다. 역사의식과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민족의 자주와 해방을 쉬운 언어로 노래한 민족시인 신동엽에 대한 관심은 그의 사후에 오히려 높아진다.
『아사녀(阿斯女)』는 1963년 문학사(文學社)에서 간행한 신동엽의 첫 시집이다.
이 시집에는 「진달래산천」 · 「풍경」 · 「눈나리는 날」 · 「그 가을」 · 「빛나는 눈동자」 · 「정본문화사대계(正本文化史大系)」 · 「산사(山死)」 · 「이곳은」 · 「산에 언덕에」 · 「내 고향은 아니었네」 · 「아사녀(阿斯女)의 울리는 축고(祝鼓)」 · 「꽃대가리」 · 「미쳤던」 · 「아니오」 · 「나의 나」 · 「완충지대」 · 「힘이 있거든 그리고 가세요」 ·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 등 18편이 제3부로 나누어져 수록되어 있다. 이 시집은 고대사에서 현대사로 역사적 시점을 이동하며 민중의 비극적 삶과 저항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이 시집의 1부는 방랑 생활과 군대 생활이 한창인 어려웠던 서른 고비에 쓴 것이고 2부는 정착 생활을 하는 동안 쓴 작품들이다. 또한, “제3부의 장시 「이야기하는 쟁기꾼의 대지(大地)」는 1959년 1월 3일자 『조선일보』에 ‘신춘 현상문예작품’이라는 제목으로 발표되었던 작품이다.
“유월의 하늘로 올라보아라./황진이 마당가 살구나무 무르익은 고려 땅, 놋거울 속을 아침저녁 드나들었을 눈매 고운 백제 미인들의./지금도 비행기를 바라보며 하늘로 가는 길가엔 고개마다 괴나리봇짐 쇠바퀴 밑으로 쏟아져단 흰 젖가슴의 물결치는 아우성 소리를 들어보아라.”(「아사녀의 울리는 축고」),
“아시아와 유럽/이것저곳에서/탱크부대는 지금/쉬고 있을 것이다.//일요일 아침, 화창한/토오꾜오 교외 논둑길을/한국 하늘, 어제 날아간/이국(異國)병사는 걷고.”(「풍경」),
“다만 억천만 쏟아지는 폭동을 헤치며/고고(孤孤)히/눈을 뜨고/걸어가고 있었다.//그 빛나는 눈을/나는 아직/잊을 수가 없다.//그 어두운 밤/너의 눈은/세기(世紀)의 대합실 속서/빛나고 있었다.”(「빛나는 눈동자」)
이 시집은 백제의 유민(遺民)과 한국전쟁, 4‧19혁명을 연상시키는 시적 장면들로 고대사부터 현대사로 민중의 비극을 잇고, 격동의 시대를 관통하면서 자기를 상실하지 않는 역사적 주체로서의 민중을 시적 이미지로 보여준다. 1960년 7월 발간된 『학생혁명시집』에 실린 작품인 「아사녀」부터 신동엽 시에는 ‘백제’와 ‘아사녀’가 등장한다. 이들 시어는 『아사녀』 시집에서 역사의식과 민중 의식을 본격적으로 나타내며. 『금강』(1967)과 『신동엽전집』(1975)에 이르면 아사달과 아사녀, 이름 없는 동학군이라는 민중의 표상이 1960~1970년대 민족주의, 민중주의 담론과 결합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