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하의 일 중에서 커다란 근심은 오직 남의 비웃음을 두려워하는 것이라 하였다. 거의 모든 사람들은 가진 것 없어 거친 음식과 성기고 낡은 옷으로 빈곤하게 살면 비웃음을 살까 두려워한다. 가난하여 금정(金情)으로 상대의 환심을 사거나 과시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한다.

이는 마땅히 살아야 할 때 살고 죽어야 할 때 죽으며, 오늘의 만종(萬鍾 : 고액의 녹봉을 의미)도 내일 버릴 수가 있고, 오늘의 부귀가 내일 굶주림으로 된다 해도 또한 근심하지 않고 오직 의(義)만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옛사람들은 말한다.

어떤 이들은 빈천(貧賤)에 편안하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꾀가 궁하고 힘이 모자라거나 재주가 부족하여 계획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욕망에 유혹당하여 마음이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빈천이 편안하다고 하지는 않을 것이다. 근사록(近思錄)에서는 의리의 즐거움이 이욕보다 좋다는 것을 알 때만 빈천에도 편안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맹자는 “생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이고, 의(義) 또한 내가 원하는 것인데 두 가지를 함께 얻을 수 없다면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할 것이다.”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의란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 필요한 바른 지침이다.

고위직이라면 당연히 국가와 민족을 위하지 못함을 부끄러워해야 하지만 하위직 공무원들은 소신있게 일하지 못함보다 승진에 뒤처짐을 부끄러워한다. 직장이라는 집단생활에서 느끼는 것이 별반 차이가 없겠지만 사실 함께 입사한 이들이 이런저런 까닭(자신이 인정하지 못하는)으로 선호하는 보직을 받거나 먼저 승진하여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 심정은 참으로 쓰린 것이다.

조직사회에서 승진이란 것이 그 사람의 능력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승진을 하게 되면 더 많은 권한(대우의 상승과 같은)을 누리고 급여도 올라간다. 대게 그런 이유이고 더 높은 위치에서 시민을 위해 더 나은 행정을 하겠다고 승진을 꿈꾸는 이는 보기 힘들다. 하기는 일부러 한직(閑職)을 원하고 승진을 싫어할 자가 있을까. 부를 추구하는 것은 본능이라 자연적으로 이루어진다고 사마천은 말하였지만, 공직자 또한 상대보다 재주가 없고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까짓것 그저 시키는 일이나 적당히 하라고 하던가. 능력을 평가하는 공평한 잣대가 형식적이어서 나는 오직 의(義)를 좇겠다고 하면 부끄럽지 않을까만 그게 그렇지 않다. 지구가 조금 기운 것과 같은 자연의 섭리일지도 모른다.

치졸한 수단과 방법으로 서열에서 오르려 하는 이들의 틈에서 밀려난 자는 불의를 거부하여 얻지 못한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 승진의 방해가 된 그 의로움을 즐거움으로 여기는 마음의 자세를 가져야 하는데 오히려 그런 방법으로 처세를 하지 못하는 자신을 책망한다. 그리고 상대를 비방하고 조직의 행태를 비난한다. 그러나 자신이 바르다면 하늘을 우러러, 만나는 모든 것에게 떳떳한 것이 아니냐.

그렇다. 자신의 마음이 의롭다면 하늘 아래 부끄러울 것이 없다. 남들의 시선에 마음이 쓰이는 것도 결국은 자신의 의로움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암혈지사(巖穴之士)라면 응당 가난과, 벗이 없음과, 부릴 것이 없음을 부끄러워해서는 안 된다. 용반봉일(龍蟠鳳逸)하다 세상일에 쓰임을 받는다면 그날에 새겼던 의로움을 실천해야 한다.

만일 비록 작은 직위일지라도 공직자가 되었다면 불의를 보고도 외면함을, 비겁을 알고도 영합함을, 자신과 국민을 기만함을, 보직과 승진에 굴복함을 경계해야 할 일이다.

지방의 공직자로서 40여 년을 보낸 뒤 무엇을 가장 부끄러워하였는지. 그리고 남은 날까지 무엇을 부끄러워하면서 지낼 것인지. 비록 지방행정의 말단이었지만 아닌 것을 보고도 쉬 지나친 것을 부끄러워는 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지금 생각하니 은자(隱者)를 흉내 냈으나 사실은 좋은 작록(爵祿)에 얽매였던 주옹(周顒)과 무엇이 다르랴. 그러니 자식에겐들 누구더러 세속의 명리와 감투의 욕망을 버리라고 하랴.

 


최계철 
최계철 

1990년 동양문학 신인상 등단

현 공무원문인협회인천지회장, 인천문협회원

현 용인일보 문화에디터

시집 도두를 꿈꾸는 하루 외 6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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