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필(李相弼)은 1924년 제천에서 태어나 양정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법정학부에서 수학하였다. 열네살의 나이에 제1시집 『잔몽(殘夢)』을 출간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는 고향인 제천에 자리 잡고 1975년 작고할 때까지 제천에서 거주하며 문학인으로서, 교육가로서, 향토사가로서의 삶을 산다.
그는 어상천국민학교에서 가르치다가, 해방 후에는 고향인 제천에서 유학생 출신 청년들로 꾸려진 제천군 치안유지위원회 선전대에서 활동하였고, 정부 수립 후에는 초대 제천읍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45년 제천농업고등학교 교사와 청주대학 강사로 출강하였고, 1949년에서 1950년 초반 김동리의 추천을 받아 소설가로서 『문예』지에 등단하였다. 중앙문단에서 촉망 받던 소설가이며 시인이었던 이상필은 6·25동란 이후 제천으로 내려와 후학을 양성하며, 1955년에는 제2시집 『향수애가』를 제천에서 출간한다. 6·25 전쟁 후 잠시 제천여자고등학교 교사를 지냈으며, 1955년 이후 2년간 제천중학교와 제천고등학교에서 후학을 지도하였다. 국민대학교·청주대학 등에 출강하는 한편, 시 창작에 몰두하여 제천의 현대 문학사에 커다란 자취를 남겼다.
오늘날 제천의 대표적인 문학 단체인 ‘제천문학회’의 초기 회원이 대부분 이상필의 옛 동료이거나 제자이다. 교단을 떠난 후로는 『제천군지』[1969]의 편찬 과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정리하는 큰 업적을 남겼다. 1972년 남산고등공민학교를 설립하였다.
시집으로는 『잔몽』과 1955년 가난한 제자들의 대학 진학을 돕기 위해 『잔몽』에 약간의 시를 추가하여 펴낸 『향수애가(鄕愁哀歌)』가 있다. 유작으로 희곡 「금환식」, 「진성여왕」 등이 있다. 사후에 미발표작 「바람」, 「밤의 노래」, 「흑석리에서」 3편의 시가 1978년 5월 발간된 『제천문학』 제4집에 실렸다.
이상필의 시는 대상 상실의 시이다. 그가 잃어버리고 상실한 대상은 어머니, 누이, 임만이 아니었다. 그가 원초적 어머니로 표상하는 것은 조국이며 식민지인으로 살아가는 우리 민족이었다. 그러므로 그가 갈망하는 것은 구원의 여인이며 온전한 조국이었다. 채워질 수 없는 대상에 대한 욕망과 상실감에서 그의 시는 애도로 승화된다.
그의 시에서 끊임없이 등장하는 고향의 이미지는 잃어버린 고향을 회복하려는 유토피아적 이상으로 그려진다. 고향은 자연과 어우러진 건강한 노동의 공간이며 생명의 온전한 안식처로서의 의미를 갖지만 6·25동란 이후 폐허가 된 고향은 현재의 삶 속에서 결핍된 공간이며, 상실된 낙원이다. 그는 풀피리의 세계로 돌아와 ‘전원’의 공간을 회복하고 상실된 낙원을 회복하고자 한다.
이상필이 초·중기 시에서 ‘인식’으로서의 앎을 추구했다면 후기 시에서는 ‘해탈’로서의 앎이 그려진다. 그에게 “인생의 산다는 방식”은 자연의 순리와 이치에 세계를 맡기는 것이며, 옮음에 대한 신념으로 살아가는 것, 대원(大圓)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마음으로부터 얻어지는 앎, 해탈로서의 앎을 덧없는 무상(無常)이자 ‘꿈’으로 인식했다.
그의 시는 제천의 지역성을 담고 있다. 전원 공간을 배경으로 한 시들을 비롯해 「의림지 호반에서」, 「초가를 보면서」, 「제천팔경풍물시」등에 고향인 제천의 모습이 담긴다. 이상필의 문학이 갖는 제천지역문학으로서의 특수성이다.
<작품 소개> 1937년 9월 2일 인쇄, 9월 5일 삼문사 발행
가버린 님, 슬의 애사(哀詞), 이별(離別)의 애사, 홍등의 서름, 싹, 마음, 못잇는 정(情), 밤의 비가(悲歌), 못올님, 거리에서, 마음, 추상,그여자, 고독 등 35편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