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혜의 두근두근 인생 2막 【6】
“나이 치곤 진짜 정정하시네요.”
살이 자꾸 찌면서 체력이 떨어져서 헬스를 시작했다. 피티 첫시간, 트레이너가 내게 내린 진단이다.
‘엥? 나더러 하는 말이야? 정정하다고? 내가 파파할머니로 보이나?’
얼굴에는 점잖게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속으론 궁시렁댔다.
‘이 트레이너 정말 영업을 못하는군. 어휘를 가려써야지, 날보고 정정하다니. 이래서야 어디 손님이 오겠어?’
친구들이 듣고는 “정정하대!” 라며 다들 배를 잡고 쓰러졌는데, 한 친구는 나처럼 분개한다.
“아니, 정정하단 말은 완전 꼬부랑 노인에게나 쓸 말 아니냐?”
60대 중반, 우리는 아직도 우리가 팔팔하다고 생각한다. 노인은 아니라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든 갈수 있고 지적능력도 못하지 않다고 말이다. 하지만 천만에 말씀, 만만에 콩떡이다. 아들보다 어린 그에게 우리는 그저 할머니일 뿐이다. 그러니 정정하다고 칭찬한 건데. 정정하단 말이 왜 싫지? 그는 고개를 갸우뚱할 만하다.
세월은 가면서 주름과 축 처진 살을 남긴다. 세상 누구에게라도 공평하게. 어쩌겠나, 받아들여야지.
언젠가부터 움직이기 싫고 앉아서 책만 읽다보니 느는 게 살 뿐이다.
“언제가 출산이세요?” 남편이 놀린다.
“그냥 이렇게 살다 죽을래.” 자포자기로 난 한숨을 쉰다.
그러다가 문득 내 버킷 리스트 중 하나가 떠올랐다. 10kg 빼고 예쁜 드레스 입기.
그래, 죽기 전에 해보자. 더 늦기 전에. 바로 지금.
하루 3시간씩 이를 악물고 진땀 흘린 지 거의 3개월 반, 8kg이나 감량했다! 근육을 키우면서도 이 정도면 성공이다.
지난 주 친구 아들 결혼식에 동창들이 모였다. 나의 신랑 엄마친구 하객룩을 보더니 다들 탄성을 지른다.
“어머어머, 너 무써운 녀자였구나.”,
“강철의지 대박!”,
"와~~ 최성혜 살아있네!" 칭찬 일색이었지만,
한 친구는 가까이 다가와 내 귀에 대고 은밀하게 속삭인다.
“너 위고비(다이어트약) 먹었지?”
“야, 먹긴 뭘 먹어. 진짜 빵과자 딱 끊고 빡세게 운동한 것 뿐이야.”
“대단하다......” 부러운 기색이 역력하다.
“새 옷 사느라 돈 깨나 썼겠다.”
“이거 15년전 옷이야.”
“아니, 그걸 여태 안 버리고 끼고 있었다구? 너도 참 너다.”
“언젠가 빠지겠지 싶어 미련을 못 버렸지. 드디어 오늘이 왔도다.”
살이 빠지니 자신감이 올라와 이제야 거울을 본다. 생전 거울도 안 보고 살았는데.
새삼 이마에 깊은 주름이 보인다. 나이에 맞게 볼살도 늘어졌다.
불과 얼마전 우리 엄마 모습이다. 나도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정정’이란 말은 한자말, ‘亭亭’이다. 산속에 있는 정자에 쓰는 말로 ‘높은 곳에 지어진 집’이란 뜻이다. ‘나무나 바위가 우뚝하다’란 뜻도 있어, 으레 구부정하리라싶은 노인의 등이 의외로 꼿꼿하여 건강해보이면 하는 말인가 보다.
트레이너 말대로 난 정정하다.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홀로 우뚝 설수 있는 씩씩한 할머니다. 그러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