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혜의 두근두근 인생 2막 【4】
70년대 중고등학교를 다녀본 사람들은 기억할 것이다. 한여름 땡볕아래 이 갈리는 운동장 조회를. 교장(선생님이라 하고싶지도 않다.)이 애들은 운동장에 세워놓고 자기는 그늘막 아래서 한 시간 동안 떠들던 잔인한 훈시를. 선생들이 막대기를 들고 돌아다니며 움직이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을 때, 내 모은 두발 앞 땅은 얼굴에서 떨어진 땀으로 흥건했다. 그때쯤이면 여기저기서 애들이 픽픽 쓰러졌다. 70년대 만해도 넉넉하지 않을 때라 몸 약한 애들이 많았다. 쓰러진 애 옆에 있는 애들은 요즘말로 대박. 한 명당 두 명이 양쪽에서 부축해서 함께 양호실로 갈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교장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설을 계속했다.
조회가 끝나면 뒷 번호 우리들은 너무나 튼튼한 몸을 슬퍼하며 서로를 타박하기 바빴다. “야, 너 좀 쓰러져.”,“쓰러지지 못하면 척하는 연기라도 좀 하던가.” 친한 친구들 죄다 새가슴이라 감히 그런 짓은 못했다.
하얀 얼굴에 가냘픈 몸매의 얌전한 여자들이 각광받는 시대를 살았다. 금방이라도 훅 불면 쓰러질 것 같아 남자들의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여자들 말이다. 흰 손을 이마에 얹으며 “아! 어지러워요.” 하고 비틀거리면 척 감싸주며 남자를 기사가 되게 해주는 여자애들. 그런 낯간지러운 짓을 어떻게 하나. “내일은 내가 한다!” 무거운 거 척척 들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며 내 일뿐 아니라 남의 일까지 해결해주면서 친구들 사이에 ‘원더우먼’과 ‘소머즈’ 소리 들으며 살다가 결혼하더니 ‘무수리’가 되었다.
‘쓰러지는 느낌은 어떤 걸까?’ 평생 궁금했는데, 그걸 알게 되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며칠 전 일하러 나갔는데, 점심때쯤 갑자기 속이 메스껍고 어지럽더니 몸을 가누지 못해 쓰러졌다. 하늘이 빙빙 마구 돌았다. 운전을 할 수 없어 택시타고 집에 와 침대에 누웠는데, 천정이 계속 빠르게 뱅글뱅글 도니 갑자기 무서워졌다. 응급실에 가야하나 잠깐 고민하다가, 이비인후과의사인 친구언니에게 전화했더니 진단이 쿨하다.
“이석증이야. 그거 약도 없어. 의사들이 이런저런 검사해도 솔직히 원인을 몰라. 환자가 와도 특별히 해줄건 없어. 그냥 약국에서 멀미약 사먹고 푹 쉬면 낫는 병이야.” 약을 먹으니 좀 진정이 되긴 했는데 걱정이 되어 이번엔 약사친구에게 SOS. “우리 남편도 그걸로 2년이나 고생했잖아. 그거 쉽게 볼 병 아니야. 곧 설 연휸데 어쩌려고? 지금 빨리 병원에 가봐.” 겁을 준다.
병원에 있을 때 한 친구가 전화했다.
“뭐하냐? 우리 집에 놀러와.”
“나 병원이야.”
“니가 왜?” 화들짝 놀란다.
“이석증이래. 의사가 설에 일도하지 말라네. 큰일 난대.”
“야, 나도 그것 때문에 죽을 뻔했잖아. 그거 아주 고약해.”
친구들 단톡방에 내가 쓰러졌다는 속보가 뜨니 모두 슬퍼한다. “너마저도!” 여행갈 때 주렁주렁 약봉지 꺼내는 친구들을 보고 난 약 먹는 거 없다고 잘난 척 했더니만 급기야 나도 그 대열에 끼고 말았다.
가천대 이길녀총장이 내 미래라며 자신만만했더니, 아니다. 이젠 맨 손으로 소도 때려잡을 무수리가 아니라 조신하게 두 손 포개고 있어야하는 왕비마마가 되어버렸다. 재미없어서 어찌 살꼬? 왕비마마 등극이 하나도 기쁘지 않다. 열심히 운동해서 튼튼한 무수리 지위를 탈환하리라.
염색일 하느라 보라손이 된 이 베트남 파파할머니처럼 주름이 자글자글해도 자긍심으로 눈이 빛나는 건강한 할머니가 되고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