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성혜의 두근두근 인생 2막 【7】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행복, 행복, 행복해야한다고 부르짖는다. 행복전도사라는 이에게 사람들이 열광하고 너도 나도 행복해지는 비법을 찾아다닌다. 행복해야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힌 듯하다. 참 이상하다.

행복은 어디에나 있고,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겪는 행복과 불행의 양은 모든 사람이 거의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남이 보기엔 모든 걸 다 가져 행복하기만 할 것 같은 사람도 남모르는 고통으로 괴로워하다가 세상을 등지기까지 한다. 어떻게 저렇게 살 수 있지? 싶은 사람의 얼굴이 행복으로 환하게 빛나기도 한다. 행복은 각자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다.

지금까지 살아보니, 아이들 다 제 밥벌이 하고 부모님 챙겨드리는 일도 거의 끝난 지금. 모든 의무에서 해방되어, 내 몸을 내 뜻대로 할 수 있는 자유가 있는 60대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때지 싶다.

나는 행복하다 © 김선주
나는 행복하다 © 김선주

내 인생에 가정주부가 되리라고는 꿈도 꿔보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이 어디 뜻한대로 살아지는가.

애 셋 혼자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입히면서 서태지가 언제 왔다 갔는지 이문세 노래가 얼마나 감미로운지 알지 못했다. 친구 애들 장난감과 옷들을 받아다 쓰고 병원이 아니라 보건소에서 애들 무료예방접종하며 아껴 알뜰살뜰 살았다. 남편은 만날 야밤에 들어와 얼굴도 못 보고 사는 날이 허다했다. 주말마다 시댁가면 남편은 방에 들어가 냅다 낮잠만 자고 난 밥하고 상차리고 시부모님과 남편과 애들 받들어 모셨다.

내 친구들은 우리중 제일 불가사의가 ‘나’란다. 내가 이렇게 살줄은 아무도 몰랐다고. 나는 그렇게 살면서도 불행하지 않았다. 그게 사람의 도리고 그냥 잘 살고 있는 거겠거니 했다.

다만 내가 애 셋 둔 엄마로 내 일 찾아 나서서 뭔가 이루지 못한 것만 좀 가슴이 쓰렸다. 집에서 아이들을 돌보며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큰 아이가 중학교 들어가면서 영어과외선생을 시작했다. 살림하랴 일하랴 정신없었지만 돈도 벌고 보람도 얻었기에 감사한다.

남편이 은퇴하면서 나도 일을 그만두고 평생 살던 복잡한 서울을 떠나 살기 좋은 용인으로 이사왔다.

이제는 날 위해 산다.

여행을 좋아해 여기저기 많이 돌아다녔는데 아직도 갈증이 가시지 않았다. 최소비용 최대효과가 내 여행의 모토다. 내가 모든 일정 짜고 비행기 기차 버스 호텔 예약하고 맛집리스트까지 뽑아, 남편과 함께 또는 친구들과 함께 때로는 아이들과 함께 재미있게 놀고 있다. 이들과 함께 즐길 때 나는 행복하고, 나와 함께 있어 행복해하는 이들을 보면 더 행복하다.

​틈을 내어 내가 속한 사회를 위해 베풀고 봉사한다.

돈이 없어 크게 기부는 못하지만, 내게 있는 체력과 재능을 바쳐 우리 사회가 조금 나아진다면 감사할 따름이다.

이럴 수 있는 시간이 앞으로 10년이나 남았을까? 큰 변수가 없다면.

그 후엔 그때 나름 행복할 일이 있을 거다.

다리가 성치 못해 더 이상 돌아다닐 수 없을 땐, 아담한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전세계에서 오는 외국친구들을 돌봐주고 싶다. 우리나라에서 즐길 수 있는 최고를 보여주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다. 

지금 여기서,

나는 행복하다.

행복하기로 마음먹었다.

 


최성혜 편집위원
최성혜 편집위원

 

저작권자 © 용인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