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공포영화의 지평을 새롭게 구축한 장재현 감독의 는 오컬트 스타일의 귀신 이야기이다. 그는 각종 단편영화제에서 많은 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후, (2011), (2012) 그리고 첫 공포 단편영화, (2014)로 전주국제영화제 단편 경쟁 부분에서 감독상을 수상한다. 첫 장편 공포영화, (2015)은 를 발전시킨 이야기이다. 이 영화로 흥행과 호평을 함께 한 장 감독은 (2019> 를 연출한 후 4년 만에 를 발표한다.
, 1892~1973)의 (1931)는 왕룽이라는 농부를 주인공으로 청나라 말기에서 중화민국 초기까지의 중국 사회 격변기를 구체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퓰리처상(1932)과 노벨문학상(1938)을 수상한 작품일 뿐 아니라, 시드니 플랭클린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1937)로도 만들어져 널리 알려졌다. 특히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메뚜기 떼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자주 회자되곤 하는 장면이다. 가난한 농부 왕룽이 오란을 아내로 맞이한 이후 대지주가 되기까지 그가 겪었던 삶의 역정을 그려낸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작품
김기림(金起林)은 1908년 함북 성진에서 태어나 1930년 니혼대학 문학예술과를 졸업했다. 귀국 후 조선일보사 학예부 기자를 지내다가 1931년 낙향하여 ‘무곡원(武谷園)’이라는 과수원을 경영하며 창작에 전념했다. 1933년 이종명(李鍾鳴)·김유영(金幽影)의 발기로 이효석(李孝石)·이무영(李無影)·유치진(柳致眞)·이태준(李泰俊)·조용만(趙容萬)·정지용(鄭芝溶) 등과 함께 구인회(九人會)를 결성했다. 당시 역량있고 주목받는 신인 및 중견작가들로서 이들은 ‘순수예술옹호’라는 문단의 분위기를 형성했으며, 이상(李箱)과 함께 당시 모더니
이상필(李相弼)은 1924년 제천에서 태어나 양정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 와세다 대학 법정학부에서 수학하였다. 열네살의 나이에 제1시집 『잔몽(殘夢)』을 출간하여 주목을 받았다. 그는 고향인 제천에 자리 잡고 1975년 작고할 때까지 제천에서 거주하며 문학인으로서, 교육가로서, 향토사가로서의 삶을 산다.그는 어상천국민학교에서 가르치다가, 해방 후에는 고향인 제천에서 유학생 출신 청년들로 꾸려진 제천군 치안유지위원회 선전대에서 활동하였고, 정부 수립 후에는 초대 제천읍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45년 제천농업고등학교 교사와 청주
이효석은 1907년 강원도 평창군 봉평에서 태어나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1930년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 영문학과를 졸업하였다. 경성제대 재학중이던 1928년 『조선지광』에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하였다. 도시유랑민의 비참한 생활을 고발한 이 작품을 시작으로 사회주의 계열의 작품들을 써서 경성고보에서 만나 평생 우정을 나누었던 유진오(兪鎭午)와 더불어 카프(KAPF: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 진영으로부터 동반자작가(同伴者作家)라는 호칭을 듣게 되었다. 한동안 동반자작가로 활동하면서 「기우」(1929), 「깨뜨려지
사뮈엘 베케트(1906~1989)의 (1952)는 오늘은 오지 않지만 내일은 온다고 하는 고도를 기다리며 외롭고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견뎌 나가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의 이야기이다. 1953년 프랑스 파리의 바빌론 극장에서 초연되었을 당시 공연에 불만을 품은 관객들이 휘파람을 불고 야유를 퍼부었을 정도로 난해한 작품이다. 무대에 등장하는 인물도 많지 않고 무대 장치 또한 화려하지 않다. 등장인물이라곤 꾀죄죄한 행색의 나이 든 방랑자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그리고 무거운 가방을 든 럭키와 그의 괴팍한 주인 포조,
1912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난 김용호(金容浩, 1912-1973)는 마산상고와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과와 신문고등연구과를 졸업하고 귀국하여 선만경제통신사(鮮滿經濟通信社) 기자로 근무했다. 광복 후에는 예술신문사(藝術新聞社) 와 자유문학의 주간과 단국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1962년 펜클럽한국본부 부회장으로 한국문단의 발전에 기여했다. 1973년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났다.1930년 4월 14일『동아일보』에 발표한 「춘원(春怨)」을 비롯하여, 1935년 10월 『동아 일보』에 시 「선언」을, 『신인문학』에는 시 「내 사랑하는
살아있는 고전, 햄릿을 읽어야 하는 이유!“사느냐 죽느냐, 이것이 문제로다.”, “약한 자여, 그대 이름은 여자로다.”라는 너무도 유명한 말은 셰익스피어(1564~1616)의 (1601)에 등장하는 대사이다. 이 두 구절에 담긴 고민과 번뇌, 연민과 증오를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셰익스피어의 을 천천히 음미할 필요가 있다.전체 5막으로 이루어진 비극 은 덴마크 엘노시아 성의 보초 바나도와 프란시스코 앞에 햄릿 왕의 유령이 밤마다 나타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바나도, 프란시스코와 함께 선왕의 유령을 목격한 호레
본명은 구상준(具常浚)으로 1919년 서울에서 태어났으나, 1920년대 초에 가족과 함께 함경남도 원산(元山)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했다. 천주교 집안의 영향으로 원산 덕원 성베네딕도 수도원 부설 신학교 중등과를 수료했고, 1941년 도쿄의 니혼대학[日本大學]종교과를 졸업했다. 이 시기에 프랑스와 서구의 급진사상을 경험한 뒤 1942년 귀국해 1945년까지 원산에서 《북선매일신문(北鮮每日新聞)》 기자로 활동했다.1946년 원산 문학가동맹이 펴낸 해방기념시집 『응향』에 실은 「여명도」, 「길」, 「밤」 등 세 편의 작품이 필화를 겪
시인 · 영화인 · 소설가인 심훈은 1901년 서울 노량진에서 태어났다.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학생이었던 1919년 3월 1일 탑골공원에서 조선독립만세를 외치는 민중대회에 참여하였고, 이어 3월 5일 서울에서 각급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된 최대의 시위운동인 남대문역(서울역) 만세 시위운동에도 참여하였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어 8개월형을 받았다. 출옥하자 중국으로 망명하여 북경에서 단재 신채호와 우당 이회영 등 독립운동가들을 만나 많은 영향을 받았다. 일제와 어떠한 형태의 타협도 거부하는 절대독립론과 독립운동의 방법으로 무장투쟁론을 주장하
독일 남서부의 작은 마을 슈바르츠발트의 한스 기벤라트는 영리하면서도 셈세한 소년이었다. 한스는 라틴어 학교 선생님들이나 교장 선생님, 친구들은 물론 이웃 사람들이나 마을의 목사님까지도 그의 재능을 인정할 만큼 영리한 두뇌를 가진 특별한 소년이었다. 그렇지만 슈바벤 지역에서는 재능 있는 아이들의 삶, 특히 부유한 부모를 두지 못한 재능 있는 아이들의 삶은 거의 정해져 있었다. 주(州) 시험을 통해 신학교에 들어가고 다시 튀빙엔의 수도원에 들어가 목사가 되거나 대학에 자리를 잡아 평탄하고 안전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었다.한스는 슈바르츠발
빌헬름 텔! 자기 아들의 머리 위에 얹힌 사과를 활로 쏘아 맞힌 명사수!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가 어떻게 해서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그 뒤 어떤 일들이 펼쳐졌는지를 기억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프리드리히 실러(1759~1805)의 (1804)은 그런 점에서 너무나도 유명한 작품이지만, 유명한 만큼 모두가 잘 아는 작품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실러의 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직할지로 자치권을 누리던 알프스 지역에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세력이 확장되면서 뜻
윤곤강(尹崑崗)은 충청남도 서산에서 태어났다. 1928년 혜화전문학교에 진학하였으나 5개월 만에 자퇴하고 1930년 일본 센슈대학으로 유학하였다. 이때부터 문학에 관심을 가져 의 동인으로 활동하였다. 대학 졸업 후 1933년에 귀국하여 연희전문학교에서 공부를 계속하였다.1934년 제2차 카프(KAPF)[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 관련자로 구속되어 전주 감옥에서 옥고를 치르고 그해 12월 석방되었다. 1936년 본격적으로 시를 쓰기 시작하여 이듬해 첫 시집 『대지』를 낸 이후 시작에 전념하여 많은 작품을 썼다. 1939년에
박두진은 1916년 경기도 안성에서 태어났다. 1939년 「향현(香峴)」·「묘지송(墓地頌)」·「낙엽송(落葉頌)」·「의(蟻)」·「들국화」 등 5편의 시작으로 『문장(文章)』을 통해 정지용(鄭芝溶)의 추천을 받고 시단에 데뷔했다. 「향현」에서는 오랜 세월 동안 침묵 속에 지내온 산에서 힘차게 치솟아 오를 저항과 창조의 불길을 예기하는 시상을 드러내어 일제 치하의 암울함을 의기(意氣)로써 이겨내는 분노의 서정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미의식은 일제에 의해 민족주체성이 훼손되었다는 인식과 제국주의를 비판하는 저항 의식에 기반한 것이다. 「
철학, 법학, 의학, 신학까지 온갖 노력을 다 기울이며 철저히 공부했던 파우스트는 결국 그가 얻은 것이라곤 석사니 박사니 하는 허울 좋은 이름뿐, 궁극적으로 알아내고자 했던 이 세상의 근원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는 사실을 깨달으면서 깊은 좌절과 고뇌에 빠진다. 그는 생동하는 자연의 신비와 약동하는 생명의 본질을 알고자 했으나, 동물의 해골과 죽은 자의 뼈다귀만 매만지고 있었음을 자각한 것이다.불안과 근심, 번뇌 속에서 안식을 얻지 못하는 파우스트 앞에 나타난 메피스토펠레스는 자신과 함께 어울려 이 세상에 발을 들
임화(林和)는 1908년 빈농의 집안에서 태어나 경성의 보성중학을 중퇴하고 19살 때부터 시와 평론을 썼다. 활동 초기인 1926년 〈매일신보〉에 시 〈무엇 찾니〉, 〈서정 소시(抒情小詩)〉 등을 발표해 문단에 이름이 나기 시작하였다. 초기 작품들은 사회적·예술적 전통을 부정하고 반이성·반예술을 내세우는 다다이즘 경향을 강하게 보였다. 이 작품들은 아직 서정적이고도 강렬한 열정을 표현하고 있어 카프 내부의 강경 이론분자로 등장하기 전의 임화에 해당한다.카프 곧 조선 프롤레타리아 예술가 동맹에 가입하면서부터는 이전의 시 창작 경향을
조지훈은 1920년 경상북도 영양군에서 태어났다. 성균관 유생의 한학자인 할아버지와 개화지식인 아버지 아래서 한학을 익히다가 중학과정을 혼자 공부하고 1938년 혜화전문학교에 입학하였다. 2학년인 1939년에 『문장(文章)』지에 시 「고풍의상(古風衣裳)」이 추천되면서 청록파중 가장 먼저 추천을 받는다. 유교적 성장 배경과 불교적 체험의 바탕 위에 「승무」나 「봉황수」와 같은 작품에서 역사적 연면성을 드러내는 고전주의적 미의 세계를 보여주어 문단의 주목을 받는다.「고풍의상」에서는 한국의 고전적 생활문화에 담긴 여성적 품위와 의상미가
함세덕은 1915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인천상업학교를 졸업 후 일본인이 경영하는 책방인 일한서방(日韓書房)에서 일했다. 이 때 많은 일역 세계희곡과 연극관련 서적을 섭렵했고 그곳에 드나들던 수필가 김소운(金素雲)의 소개로 유치진(柳致眞)을 만났다. 그의 문하생이 된 함세덕은 유치진의 사실주의 연극관과 극작법을 배웠다.1936년 『조선문학』에 단막희곡 「산허구리」로 등단했으며, 1939년 동아일보 주최 제2회 연극대회에 참가 「동승(童僧)」을 공연하여 극연좌상(劇硏座賞)을 받았다. 연이어 「해연(海燕)」이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
진정한 사랑과 행복한 결혼영화로도 만들어져 우리에게 익숙한 『오만과 편견』(1813)은 영국의 여류작가 제인 오스틴(1775~1817)의 대표작이다. 이 작품은 제인과 빙리, 엘리자베스와 다아시, 샬럿 루카스과 콜린스, 리디아와 위컴 등 다양한 형태의 사랑과 결혼을 보여주면서 오늘날 우리의 사랑과 결혼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소설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잉글랜드 북부 출신의 청년 재산가인 빙리 씨가 네더필드로 세를 얻어 온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딸을 다섯이나 둔 베넷 씨 집에서는 누군가 그와 연애를 하거나 결혼을 하게 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