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 우리의 삶을 지탱하고 건강하게 하는 힘

 만년의 펄벅 여사
 만년의 펄벅 여사

, 1892~1973)의 <대지>(1931)는 왕룽이라는 농부를 주인공으로 청나라 말기에서 중화민국 초기까지의 중국 사회 격변기를 구체적으로 그려낸 작품이다. 퓰리처상(1932)과 노벨문학상(1938)을 수상한 작품일 뿐 아니라, 시드니 플랭클린 감독에 의해 동명의 영화(1937)로도 만들어져 널리 알려졌다. 특히 하늘을 새까맣게 뒤덮은 메뚜기 떼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자주 회자되곤 하는 장면이다. 가난한 농부 왕룽이 오란을 아내로 맞이한 이후 대지주가 되기까지 그가 겪었던 삶의 역정을 그려낸 이 작품의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작품 줄거리/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아버지를 홀로 모시며 가난하게 살아가던 농부 왕룽은 어릴 적부터 황씨 댁 노비로 있던 오란을 아내로 맞이한다. 거무튀튀하고 넓적한 얼굴에 납작한 코, 커다란 콧구멍, 커다란 입, 불거져 나온 광대뼈를 가진 오란은 시키는 일을 잘하는 온순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녀는 시아버지와 남편을 모시며 열심히 살림을 일구었다. 아내가 아버지를 봉양하고 집안일을 말끔히 처리하는 틈틈이 농사를 돕기까지 하자 왕룽은 하루하루 행복한 나날을 지낼 수 있게 된다. 농사도 풍작을 이루고 아들까지 얻는다. 반면 황씨 댁은 노마님이 아편에 빠지고, 영감마님이 해마다 소실을 들여놓으며, 다섯이나 되는 젊은 주인들도 흥청망청 지냈기 때문에 갈수록 생활이 궁색해진다. 왕룽은 모아놓은 은화로 황씨 댁 땅을 사들인다. 그는 동틀 때부터 석양이 깔릴 때까지 들판에서 아내와 함께 일했으며, 얼마 안 있어 둘째 아들도 얻는다.

아이들이 굶주리고 밭에서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도 내버려 둔 채 노름판을 찾아다니던 작은아버지가 어느 날 왕룽을 찾아와 도움을 청한다. 모아 두었던 은화를 내어주면 그 돈이 노름판으로 들어갈 것이 뻔했지만, 왕룽은 어쩔 수 없이 내어준다. 그 날 오란은 딸을 낳는다. 그 해는 가뭄이 유독 심해 왕룽은 다른 논밭을 포기하고 황씨 댁에서 산 논에만 매달렸다. 다행히 이 논에서는 소출이 났다. 왕룽은 곡식을 팔아서 얻은 은화를 들고 황씨 댁 땅을 다시금 산다.

그러나 비는 여전히 내리지 않았고 모종은 옮겨심기도 전에 말라 죽었다. 콩과 옥수수를 조금 수확할 수 있었으나, 갈수록 먹을 것은 떨어져 갔다. 아이들은 배가 고프다고 울어댔고, 다시 아이를 가진 오란은 젖이 말랐다. 농사 밑천이었던 소까지 잡아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왕룽의 집으로 찾아가 먹을 것을 빼앗아 가고자 했으나, 남아 있는 것이 없었다. 이웃 칭만이 콩 한 줌을 가슴 속에 넣어 가지고 갈 수 있을 뿐이었다.

상황이 더 악화되면서 굶주리는 아이들을 보다 못한 왕룽이 마침내 집을 떠나 남쪽으로 가기로 하자, 딸아이를 사산한 오란은 가족과 함께 험난한 길에 오른다. 집안 세간을 판 은화 두 닢으로 화차를 타고 남쪽으로 온 왕룽은 구걸과 날품팔이로 목숨을 이어간다. 어느 날 구걸을 나갔던 둘째 아들이 훔쳐 온 고기를 내놓자, 왕룽은 구걸은 할 수 있어도 도둑질을 해서는 안 된다며 야단을 친다.

캉수[江蘇] 도심 성벽 그늘에서의 삶은 왕룽이 사랑하는 삶이 아니었다. 그에게는 돌아가고 싶은 땅이 있었다. 게다가 군인들이 총포와 탄약을 운반할 짐꾼들을 마구 끌고 가는 상황에서의 삶이란 그에게 새로운 공포를 안겨다 주었다. 전쟁터로 떠나는 군인들의 발자국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상점들은 문을 닫았다. 마침내 흉측한 폭음과 함께 성안은 아수라장이 되고, 부유한 사람의 집에는 사람들이 몰려들어 너나 할 것 없이 물건을 가져갔다. 그 와중에 왕룽과 마주친 부유한 집 자제는 목숨만 살려달라며 돈은 얼마든지 주겠다고 한다. 뜻하지 않게 황금을 얻게 된 왕룽은 고향으로 돌아온다.

농사를 짓기 위해 소와 씨앗을 사고, 이웃 칭에게 씨앗을 나누어주며 왕룽은 새로운 출발을 다짐한다. 땅을 일구고 집안을 수리하는 데 정성을 쏟던 어느 날, 왕룽은 오란이 몸에 지니고 있던 보석을 발견한다. 그것은 부잣집에서 숨겨 놓았던 보물로, 전쟁 통에 오란이 몰래 가져온 것이었다. 왕룽은 그것을 가지고 황씨 댁 땅을 더 산다.

땅이 많아진 왕룽은 칭에게 자기 집으로 들어와 함께 살면서 농사를 도와 줄 것을 청하고, 칭은 왕룽의 제안을 기꺼이 수락한다. 때마침 일기가 순조로워 풍년이 들고, 오랜만의 풍요 속에 오란은 아들과 딸 쌍둥이를 낳는다. 왕룽에게는 같은 또래 아이들처럼 말이나 행동을 하지 못하는 첫째 딸이 유일한 걱정이었다.

재산을 모아 부자가 된 왕룽은 두 아들에게 글공부를 시킨다. 일꾼도 많아져 더 이상 직접 들에 나가 일하지 않아도 되었다. 왕룽은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저 사람이 황씨 댁에서 땅을 사들였다는 왕씨 마을의 부자 왕룽’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으며 뿌듯해한다.

그러던 어느 날 왕룽은 읍내 커다란 찻집을 찾아갔다가 그곳에서 황씨 댁 노비로 있던 토츄엔을 만나고, 그녀를 통해 롄화를 알게 된다. 노동의 깨끗한 땀으로만 씻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던 왕룽이 매일 같이 향기 나는 비누로 목욕을 하고 길게 땋아 내렸던 머리까지 짧게 깎아버리자, 집안에서는 그가 왜 그러는지 어느 누구도 알지 못한다. 단지 오란만이 그런 왕룽의 모습을 보면서 황씨 댁 아들이 생각난다며 침울해 한다.

왕룽이 부자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작은아버지가 가족을 데리고 찾아온다. 왕룽의 달라진 모습을 본 작은어머니는 남자가 저렇게 달라지는 것은 새 여자가 생겼기 때문이라면서 밖으로 나돌아다니게 하느니 차라리 집으로 들이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한다. 왕룽은 작은어머니에게 부탁해서 토츄엔과 함께 롄화를 집으로 들인다.

그렇게 되자 집안에서는 풍파가 일어난다. 오란과 토츄엔, 오란과 롄화, 왕룽의 아이들과 롄화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갈등과 사건이 집안을 편치 않게 만든 것이다. 그러면서 롄화는 왕룽의 마음에서 점점 멀어져 갔고, 왕룽의 마음에는 다시금 흙과 괭이, 쟁기가 찾아왔다. 흙과 함께 하면서 왕룽은 건강한 농부의 생활을 다시 찾았고, 그러면서 왕룽의 집안은 일정한 질서를 회복하게 되었다.

그러던 중 장성한 맏아들이 서당에는 가지 않고 작은아버지를 따라 유곽에 드나든 사실을 알게 된 왕룽은 작은아버지를 집에서 쫓아내고 싶어 한다. 그러나 붉은 수염을 단 도적 패거리의 부두목이었던 작은아버지 덕분에 그동안 집안이 피해를 보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작은아버지를 쫓아낼 수도 없었다. 도리어 작은아버지를 잘 모셔야 했다.

어느 날 메뚜기 떼가 날아와 하늘을 뒤덮자, 사람들은 도리깨를 휘두르고 들판에 불을 지르며 수백, 수천만 마리의 메뚜기 떼와 싸웠다. 왕룽도 메뚜기 떼가 들판의 곡식들을 다 먹어 치울까 봐 모든 것을 잊고 싸웠다. 다행히 가장 좋은 밭들은 무사히 살아남았고, 수확할 밀이 남아 있었으며, 못자리들도 무사했다. 왕룽은 이 일을 계기로 누구에게나 걱정거리는 있기 마련이고, 힘자라는 대로 적응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라는 교훈을 얻는다.

맏아들 눙엔은 남방으로 가서 더 큰 학교에 들어가고 싶어 하지만, 왕룽은 이 지방에서만 배워도 넉넉하다며 보내지 않는다. 그러나 눙엔이 안채에 드나들며 롄화와 가까워지자 왕룽은 노여움을 참지 못하고 아들을 내쫓는다. 눙엔이 떠난 뒤, 왕룽은 눙엔과 약혼을 한 읍내 곡물상을 찾아가 둘째 아들 눙웬이 그곳에서 일을 익힐 수 있도록 허락을 받고, 둘째 딸과 곡물상의 아들 사이의 혼담도 나눈다.

그런데 아내 오란이 뱃속 통증으로 자리에 눕고 만다. 의사는 비장이 붓고 간이 병들었으며, 자궁 속에 어른 머리만한 돌멩이가 들어 있고 위장도 헐어서 회복된다는 보장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오란이 누워 있는 동안, 왕룽의 가족들은 그녀의 존재가 얼마나 컸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오란 곁을 지키며 왕룽은 그동안 자신이 아내에게 얼마나 무심했는지, 아내의 가슴에 평생 상처가 되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으며 미안함과 연민에 빠진다. 오란은 혼인식을 올린 아들과 며느리를 불러 시아버지와 시할아버지, 그리고 백치인 시누이를 잘 돌보아달라고 부탁한 뒤 숨을 거둔다. 며느리의 죽음을 지켜보며 얼이 빠져 있던 왕룽의 아버지도 곧이어 세상을 떠난다.

장례를 치르고 난 뒤, 심한 홍수가 닥쳐 강둑이 터지면서 벼들이 쓸려나가고 논밭이 물에 잠긴다. 가을걷이는 할 수 없었고 어디를 가나 사람들이 굶주리고 도둑 떼가 창궐했다. 왕룽네만은 저장해 놓은 곡식이 있었고 숨겨 놓은 은화가 있었기 때문에 굶주리지 않을 수 있었다. 작은아버지 덕분에 도둑 떼의 약탈 대상이 되지도 않았다. 그러나 작은아버지의 요구가 갈수록 더해가자, 왕룽은 마침내 작은아버지에게 아편을 드리기로 한다.

작은아버지 내외와 사촌동생의 불미스러운 행동이 도를 더해 가자, 왕룽은 읍내 황씨 댁으로 이사를 한다. 사촌동생이 전쟁에 참여하겠다며 집을 떠나면서 왕룽 집안에는 평화가 찾아오지만, 안타깝게도 젊은이에게 타작하는 법을 가르쳐주던 칭이 도리깨질을 하다가 무리를 하여 목숨을 잃는다.

어느새 사람들은 ‘농부 왕룽’이 아니라 ‘왕 대인’이라거나 ‘왕 부자’라고 불렀다. 맏아들 눙엔은 그런 이름에 걸맞게 집안을 널찍하고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하고, 둘째 아들 눙웬은 그렇게 하면 분배해야 할 유산이 낭비된다고 했다. 눙엔은 왕룽에게 막내동생이 무식한 사람으로 성장해서는 안 되니 남방으로 보내 무엇인가를 배우게 해야 한다고도 했다. 막내아들이 농부로 남아 주기를 기대했던 왕룽으로서는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

그해 겨울 왕룽의 작은아버지는 아들의 혼인을 부탁하며 세상을 뜬다. 왕룽은 작은어머니를 읍내로 옮겨 살게 하는데, 얼마 후 군에 갔던 작은아버지의 아들이 일행을 데리고 와서는 한 달이 넘게 묵는다. 제멋대로 집안을 돌아다니며 계집종들에게 눈독을 들이는 사촌동생이 두려웠던 왕룽은 차라리 그가 머무는 동안 데리고 놀 계집종을 하나 붙여주고자 한다. 사촌동생은 롄화의 시중을 들던 리화를 지목하는데, 리화는 두려움에 벌벌 떨며 살려달라고 매달린다. 결국 병에 걸린 소녀라는 핑계를 대고 다른 계집종을 붙여주는데, 사촌동생은 그녀에게 임신을 시키고 떠난다. 왕룽은 그 계집종으로 하여금 작은어머니의 시중을 들게 했는데, 그녀는 결국 딸을 낳는다. 작은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왕룽은 가난한 농부와 함께 살게 해달라는 계집종의 뜻에 따라 칭을 죽게 만들었던 어수룩한 청년과 짝을 맺어 준다.

집안일이 정리되면서 왕룽은 평화가 찾아올 줄 알았으나, 맏며느리와 둘째 며느리의 사이가 좋지 않고 맏아들과 둘째 아들은 서로 생각이 달라 집안이 조용할 수 없었다. 리화를 구해 준 것으로 인해 왕룽과 롄화의 관계도 편치 않았다. 왕룽은 자신이 마음에 두고 있던 리화에게 막내아들도 마음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 아버지와 리화의 관계를 알게 된 막내아들은 끝내 집을 나가고 만다.

 영화 '대지'의 한 장면 
 영화 '대지'의 한 장면 

리화에 대한 왕룽의 마음은 부모의 사랑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 왕룽의 마음을 리화는 받아들였고, 왕룽의 마음에 평생 짐이었던 백치 같은 딸을 리화는 돌보아 주겠다고 한다. 왕룽은 자신이 원래 살던 흙집에서 생을 마감하고 싶다며 리화와 백치 딸을 데리고 읍내 성안의 집을 떠나 자신이 살던 곳으로 간다. 그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대지에 대한 사랑이었다. 그는 흙 속에 묻혀 있는 이들을 떠올리며 영원히 그 옆에 묻혀 있을 자신을 상상한다. 왕룽의 의식이 갈수록 흐릿해지던 무렵, 아들들이 찾아왔다. 밭을 팔아 똑같이 나누자는 아들들의 대화를 듣게 된 왕룽은 땅을 팔기 시작하면 집안이 망한다며 절대 안 된다고 한다. 우리는 땅에서 왔고 땅으로 돌아가야만 하기 때문에 절대 안 된다는 것이다. 아들들은 땅을 팔지 않겠다고 왕룽을 안심시키면서 의미심장한 미소를 주고받는다.

이렇게 끝나는 펄 S. 벅의 <대지>는 근대화 이전 중국인들의 삶과 의식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높은 평가를 받은 작품이다. 특히 남성과 여성에 대한 동양의 전통적인 인식이 작품 전편에 걸쳐 일관되게 드러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가치관과 세계관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여성의 삶에 대한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뛰어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가난한 농부 왕룽이 세상과 자연에 맞서가며 집안을 일으키는 과정과 떵떵거리는 세도가였던 황씨 댁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대비적으로 그려낸 점도 주목할 만한 것이었다.

이 작품에서 무엇보다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왕룽이라는 주인공의 땅에 대한 꿈과 애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땅에서 왔고 우리는 그 땅으로 돌아가야만 해.”라고 하는 그의 말은 땅에 대한 그의 사랑을 대변하는 말이면서 우리 자신의 생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아내 오란을 땅 속에 묻은 뒤 “저곳 내 땅에 내 삶에서 훌륭했던 처음의 절반 이상인 그 무엇이 묻혔다.”라고 한 말에서는 차마 표출하지 못했던 아내에 대한 그의 사랑과 삶에 대한 진정성을 땅을 통해서 대변하고 있다. 우리는 생을 살면서 많은 꿈을 쫓고 허상을 따라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하지만 우리의 삶을 숨 가쁘게 만드는 그 꿈과 허상은 우리의 마음을 과연 얼마나 채워줄 수 있을까. 우리의 마음을 진정성으로 뿌듯하게 채워주기는커녕, 지나고 나면 공허함만이 남기는 것은 아닐까. 숱한 역경 속에서도 왕룽의 생과 삶을 지탱하고 유지하게 해 주었던 땅과 같은 것이 우리에게 있다면, 그것은 과연 무엇일까? 펄 S. 벅의 <대지>가 오늘의 우리에게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바로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우리 모두가 왕룽의 땅과 같은 소중한 가치를 각자의 가슴 속에 하나씩 간직하고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윤승준 단국대 교수 / 본지 칼럼니스트
 윤승준 단국대 교수 / 본지 칼럼니스트

단국대학교 자유교양대학 교수, 고전문학 전공, 문학박사

단국대학교 미래교육혁신원장, 한국교양교육학회 부회장

현재 단국대학교 교양기초교육연구소장

대학교양교육연구소협의회 회장,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컨설팅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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