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느끼는 맛은 외부적 환경과 이를 받아들이는 인체의 감각 기능에 의해 인지된다. 커피를 수입하기 위해 커피 산지에서 커핑(cupping:커피의 향과 맛을 평가)을 할 때 가장 염두해 두어야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한다.우리가 어떤 것을 선택하고 결정하는 데에는 많은 요인들이 작용한다. 그 중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심리 상태이다. 일상의 예로 집에서 별 맛이 없던 김치와 밥도 소풍을 나가서 먹으면 훨씬 더 맛있게 느껴진다. 이것처럼 우리는 늘 상황에 따른 심리 변화로 평가의 오류를 범하며 살아간다. 예를 들면
리스크와의 동행, 고단한 6개월커피 수입을 하고자 할 경우에는 좋은 커피와 신뢰할만한 수출업체를 만나는 것만큼이나 수입 업무에 대해 아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좋은 커피와 수출업체를 찾았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커피가 내 창고로 문제없이 들어와야 되기 때문이다.수입의 과정은 내가 그 물건을 현지에서 직접 사서 들어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수많은 과정에서 한 가지만 문제가 발생해도 큰 손해를 입게 된다. 그러므로 커피 수입을 생각하고 있다면 최소한 수입 절차와 과정에 대해 알고 있어야만 과정상 발생될 수 있는 문제를 사전에 대비하고
알싸한 아침 바람에 실려 오는 커피 향의 유혹은 떨쳐버리기 어렵다.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앉아 있는 것만으로 행복하기도 하다. 이처럼 커피는 일상이 되었다.조선의 커피에 대해 기록한 최초의 문헌은 《조선: 고요한 아침의 나라 (Choson: The Land of the Morning Calm》이다. 한국에 사진술을 소개한 것으로 알려진 천문학자 퍼시벌 로웰은 조선을 방문한 뒤 1886년 이 책을 썼다. 이 책에 따르면 로웰은 1884년 1월 추운 어느 날, 조선 고위관리의 초대를 받아 한강변 별장에서 당시 조선의 최신 유행품이었
생산자와 소비자의 균형 “2050년이면 커피 재배량이 절반 이상으로 줄어들 것이다.” (영국 데일 리 메일)“중남미 커피는 2050년 88% 감소할 것이다.” (미국 국립과학원)“에티오피아 커피는 2070년 60%가 사라질 것이다.” (영국 왕립식물원)이런 뉴스는 기후위기라는 주제로 자주 다루어진다. 콜롬비아는 지난 30년간 기온 상승으로 인한 병충해로 생산량이 25% 정도 줄어들었다고 한다. 기후위기가 지구에서 커피를 사라지게 할까? 지구상에서 사라진 대부분의 것들은 인간의 지나친 관심이나 무관심에 의한 것이었다. 지나친 관심은
커피는 지배자의 역사에 의해 쓰였고 발전해 왔다. 기록의 대부분은 권력자, 지배자의 것이었고, 그들의 관점이었다. 우승한 커피, 농장(주)의 이야기는 있어도 어디에도 그 커피를 돌보고 수확해 하루 종일 결점두를 골라내고 1달러 정도를 받는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커피는 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1킬로그램 봉투에 약 4천5백 개의 품질 좋은 생두가 채워지기 위해서 2만 개가 넘는 커피 열매가 필요하다. 수 십명의 노동이 모아져야 커피를 얻을 수 있다. 몇 명의 농장주, 로스터, 바리스타의 노력과 실력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노력에
영어 커피(coffee)는 프랑스어로 카페(café)이다. 이탈리아어도 카페(caffe), 독일어도 카페(Kaffee)이다. 네덜란드어는 코피(koffie), 터키어는 카베(kahveh), 아랍어는 카와(qahwa 또는 khawah)라 부른다. 그렇지만 현재 커피는 음료로, 카페는 커피를 마시는 공간으로 인식된다. 커피와 카페가 왜 구별되었을까?다른 음료와 다르게 거대 문화산업으로 발전한 커피의 생명력은 카페인(caffein)의 각성 작용만이 아니라 공간에 있다. 커피와 비슷한 차(茶)가 이렇게 산업과 문화로 발전하지 못한 건 귀족
새로운 가공기술의 맹점열매를 가꾸고, 과육을 벗기고, 말리고, 볶는 과정까지 커피는 다른 식용 작물들보다 음용하기까지 많은 과정이 수반된다. 특히 가공방식에 따라 다양한 향미를 지니게 되기 때문에 커피생산자들은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가공방식은 내추럴(natural; 커피체리를 수확 후 바로 건조시킨 후 마른 과육을 벗겨내는 방식), 워시드(washed; 커피체리의 과육을 물로 씻어내고 건조하는 방식), 퍼펙트 내추럴(perfect natural; 다 익은 커피체리를 수확하지 않고 커피나무에 달린 채 건조하는 방식), 펄프드 내추럴
지난 반세기 동안 커피산업은 눈부시도록 성장했고, 재배 및 가공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품질 개선이 이루어졌다. 커피는 산지별로 가공기술에 따라 더 세분화 되었다. 거기에 각국 커피협회들은 회원들을 위한 점수와 등급을 만들고, 이것은 시장가격에 영향을 미친다. 너도 나도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 말 그대로 ‘특별한 커피’라 강조한다.그렇지만 스페셜티커피에 대한 정의를 두고 논란이 많다. 스페셜티커피는 에르나 크누첸(Erna Knutse)이 1974년 저널에서 특수 미생물에 의해 커피에서 추출되는 최고의 향미에
우리는 커피의 시작이나 기원을 이야기할 때 커피를 누가, 어디에서 먼저 마시게 되었을까를 생각한다. 그러면서 에티오피아나 이슬람을 떠올리며 칼디, 바비부단 등을 이야기한다.커피의 기원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서 이야기되어야 한다. 하나는 커피나무의 기원이고, 다른 하나는 커피 음용의 기원이다. 커피나무의 기원은 식물학의 유전자적 원산지를, 커피 음용의 역사는 인간 문화 발전의 역사를 찾아가는 것이다.커피의 본질은 식물학의 유전자 뿌리나 물리적, 화학적 분석, 역사적 사건 등으로 분리해서 접근하는 것으론 부족하다. 우리 손에 들려있는
은퀜(Nkwen) 마을 족장메잠 디비전(Mezam Division)에는 카메룬에서 다섯 번째로 큰 도시 바멘다 시가 있다. 바멘다는 은퀜(Nkewn Resion)에 속해 있다. 바멘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목에 궁금증을 자아냈던 동상이 하나 있었는데, 먼지로 덮여 있었지만 그 앞에는 늘 조화가 놓여 있었다.은퀜 마을 족장을 만나러 가는 날은 우리 일행이 바멘다 과학기술대 학(BUST) 총장을 만나 커피학과 개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알롱시 농장을 다녀오던 길이었다. 농장은 아추 콩(Achu Kong) 씨가 책임지고 관리하고 있었는데,
음베싸로 가는 길은 두 갈래였다. 하나는 벨로를 지나 지니콤을 거쳐 아케 마을을 통해 가는 길이다. 보요 디비전 한가운데를 완전히 가로 질 러 디비전의 경계선을 타고 가는 방법인데 그나마 포장이 되어 편하지만 돌아서 가는 길이라 멀고 시간이 오래 걸린다. 다른 하나는 벨로 쪽에서 산을 올라 능선을 타고 가로 질러가는 방법인데 2,850m의 산을 넘어야 하기에 도보가 아니면 거의 이용하지 않는다.결국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두 번째 길을 선택했는데, 도저히 차로 갈 수 있는 길이 아니었다. 걸어 오르기에도 가팔랐지만 기어코 차를 이용했
카메룬은 아프리카 대륙의 한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아프리카 동쪽에 킬리만자로(5,895m)가 있다면 서쪽에는 카메룬산(4,040m)이 있다. 2000년 5월 분화로 50m 가량 녹아내린 활화산이다. 카메룬의 화산재는 해안가에 쌓여 블랙 펄을 만들어 과거 영국과 프랑스 식민지 시절 프랑스인들의 휴양지로 사랑을 받았고, 피카소와 세잔느 등 프랑스와 유럽의 예술가들은 이곳 카메룬의 조각품과 그림 등에 많은 영감을 얻었다.서부 고지대에서는 17~18세기 바밀레케 족과 바문 족이 문화를 발전시켰고, 중북부 사바나지대에는 18세기 이슬람 유목
“나는 아프리카 은공 언덕 기슭에 농장을 갖고 있었다. 그 고원 지대를 가로질러 적도가 지났고, 적도에서 160㎞ 남쪽의 내 농장은 해발 1,800m가 넘는 고지대에 위치해 있었다. 그곳에서 낮이면 마치 태양 가까이까지 높이 올라간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이른 아침과 저녁은 청명하고 평온했으며 밤에는 추웠다.(중략)은공 산은 해발 2400m 높이로 동쪽으로 주변 지역보다 600m가 높 고 서쪽으로 경사가 더 심해져 절벽의 형상을 하고 있다. 그레이트 리프트 밸리를 향해 수직경사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고원 지대의 바람은 계속해서 북북
1974년 어느 저녁은 그들에게 몹시 흥분된 날이었다. 그날 한낮의 발견은 비틀스의 노래 를 타고 이곳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밤하늘에 빛났다. 인류 최초의 조상이라 불리는, 320만 년 전에 살았던 ‘루시’가 우리들에게 모습을 드러낸 날이었다. 그때의 흥분을 기억해 최초 인류의 이름은 ‘루시’가 되었다. 루시의 발견은 인간의 직립보행을 가능하게 한 요인이 두뇌 발달이 아니라 '도구 제작 능력'이라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었고, 우리는 이렇게 도구를 이용해 무언가를 만들어 먹기 시작
1) 쿰보(Kumbo) 마을 쿰보(Kumbo)는 카메룬 북서지역의 북동쪽에 있는 부이 디비젼 중에서 도 끝자락에 위치해 있다. 아다마와 고원의 고지대에 위치해 마을의 평 균 고도가 1,800m가 넘는다. 마티 씨와 이곳을 가게 된 것은 2016년 북 서협동조합의 압력으로 오쿠-엘락에 있는 단위조합이 힐탑 농부직거래 의 커피 가공을 거부해서 가공시설이 있는 지역을 찾기 위해서였다. 새벽길을 떠나는 우리들에게 마티 씨의 어머니는 그곳은 추우니 두꺼운 옷을 잘 챙겨가라고 몇 번을 당부했다. 차로 5시간을 달려 해가 중천에 떴을 때 쿰보에
2014년 마티 폰차 씨를 카메룬에서 드라마틱하게 만난 다음날 그를 따라 나섰다. 차가 몇 번을 뒤로 미끄러져 아찔한 순간을 맞았지만, 차는 기어이 산에 올랐다. 산마루의 좁고 막다른 길에 도달하자, 집 한 채 가 나왔다. 마당에서는 커피 체리를 건조하기 위한 나무 베드가 몇 개 있었다.그의 안내에 따라 집 주위를 둘러싸고 있는 숲으로 들어갔다. 숲에 들어가서 보니 모두가 커피나무들이었다. 3m이상의 나무들에 붉은 커피 체리들이 몇 알씩 남아 있었다. 그는 티피카 품종만 별도로 골라서 심어 알롱시(Alongsi) 농장 놓았다고 했다
품반(Foumban)의 시장과 부인이 우리를 직접 안내한 곳은 평원을 가로질러 난 길을 달리다 마주하게 되는 숲이었다. 이 숲 속으로 펼쳐진 100에이커 규모의 커피농장은 말 그대로 계획 조성된 포레스트 농장이었다. 일정한 간격과 높이로 커피나무가 즐비했고, 나무 사이로 야자수와 망고, 콜라팜 등이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밑둥으로 봐서 족히 100년은 되어 보이는 커피나무가 상당히 많이 남아 있어 1900년대 초 카메룬에 커피가 본격적으로 계획 재배되기 시작했던 당시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마을 농장 가장자리에는 커피 건조장과 펄핑
2017년 북서협동조합회사는 벨로의 단위조합이 우리 커피를 계속 가공해 주자 결국 매니저를 해고하도록 했다. 새로운 조합을 찾아야 했다. 그해 커피 가공시설이 있고 북서협동조합과 거래하지 않는 지니콤(Njinikom) 마을의 단위조합으로 향했다. 달리던 차가 구불구불한 도로 왼편에 잠시 멈췄다.이곳 ‘쏘(Sho)’ 마을의 길가 비탈진 언덕 위로 커피 창고와 가공시설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그리고 한국으로 돌아온지 몇 달 지나지 않아 내 후원금을 기반으로 두 번째 가공시설 공사가 시작되었다며 사진을 보내왔다.2018년 카메룬 여정에
이른 새벽부터 차는 가파른 산길을 숨가쁘게 올랐다. 마을을 벗어나자 본격적으로 비탈길이 시작되었다. 바위가 드러나 반질해진 길을 오르려다 차가 몇 번을 뒤로 미끄러져 내렸다. 나는 있는 힘껏 자동차의 손잡이를 움켜쥐고 있었다. 생각지도 못한 오프로드 드라이브를 이곳에서 경험했다.걸어서 오르기에도 경사가 급해 힘든 길을 몇 시간을 안간힘을 쓰고 차로 기어올랐다. 산마루에 오르니 오른편 저 멀리로 오쿠(Oku) 호수가 은박 접시를 띄운듯 빛나고 있었다. 차가 산마루를 따라 달려 숲을 빠져 나오자, 푸른 초원이 펼쳐지며 마치 전혀 딴 세
힐탑 농부직거래의 중앙센터가 있고, 필드매니저 어네스트가 살고 있는 벨로-아차(Belo-Acha) 마을은 그의 아버지 보베 씨가 늘 반겨주던 곳이었다. 그가 내게 “이제 함께 숨 쉬게 되었다”며 와인 잔을 나눠 마셨던 곳이기도 하다. 집 주변으로 커피나무와 그 사이로 카카오나무도 간간히 보였다.커피를 보관하는 창고와 작은 워싱 탱크 그리고 펄핑과 훌링 기계가 있고, 마당에는 커피를 말리는 베드가 놓여 있다. 에티오피아나 케냐에 비하면 비교도 되지않을 만큼 작은 규모이고 열악한 시설이지만, 함께 벨로-아차(Belo-Acha) 마을 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