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네스코(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국가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 예능 보유자 김대균 명인
국가무형문화재 제58호 줄타기 예능 보유자 김대균 명인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국가무형문화재 줄타기란?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으며, 줄타기는 줄광대가 어릿광대와 함께 삼현육각(피리, 해금, 북 등)의 연주에 맞추어 익살스러운 재담과 춤, 소리, 아니리를 섞어가며 갖가지 잔노릇(기예)을 벌이는 놀음이다.

마당놀이의 꽃이라 불리는 줄타기는 문헌에 '승도(繩度), 주색(走索), 색상재(索上才), 답색희(沓索戱), 희승(戱繩), 항희(恒戱)' 등으로 표현되어 있다.

줄타기의 역사는 조선 초·중기 국가가 주관하는 연례행사의 판놀음 가운데 하나로 연행(演行)되었으며, 세분화, 다양화하여 문희연(聞喜宴)이나 사가(私家) 잔치, 마을의 대동굿 등 국가에서 주관하는 연례행사에서 연행되면서 판줄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판줄이 현재 전승되는 전통 줄타기의 본래 모습이다. 사신청인 모화관(慕華館)에서 연행한 판놀음의 구성은 땅재주·탈춤·접시돌리기·줄놀음·춤 등으로 이루어졌다. 광대 줄타기의 줄판은 궁궐 또는 관아나 양반들의 큰 집에서 벌어졌기 때문에 울타리 안 마당에 차려졌고, 보통 낮에 4~5시간에 걸쳐 연희 되었다. 광대 줄타기는 순수한 잔재비(잔놀음)만을 기예로 삼고 있으며 그 기교가 매우 정교하고 뛰어나다. 현재는 예능 보유자인 제58호 김대균 전수자로 인정되어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기산 풍속도' 의 줄광대와 어릿광대 
'기산 풍속도' 의 줄광대와 어릿광대 

줄타기는 행사의 안전을 비는 ‘줄고사’로 시작한다. 여러 기술을 보여주어 관중의 극적인 긴장을 유도한 이후에 ‘중놀이’와 ‘왈자 놀이(흉내 내기)’를 통해 관중의 극적 긴장을 이완시키고 흥미를 유발토록 한다. 그리고 다시 여러 기예를 통해 관중의 극적 긴장을 유도했다가 살판을 통해 긴장을 해소한 후 마무리한다. 이러한 공연 내용을 바탕으로 상황에 따라 다소 변화를 주고 있다. 줄타기의 기교는 공연자에 따라 다르지만 대략 30여 가지가 있다.

줄타기는 공중에 맨 줄 위에서 재미있는 이야기와 발림을 섞어가며 여러 가지 재주를 보여주는 놀이이다. 줄 위를 마치 얼음 지치듯 미끄러지며 나가는 재주라 하여 '어름' 또는 '줄얼음 타기'라고도 한다. 외국의 줄타기가 아슬아슬한 묘기라면 우리나라의 전통 줄타기는 묘기에 머무르지 않고, ‘악’, ‘가’, ‘무’를 노래와 재담을 곁들여 줄타는 사람과 구경꾼이 함께 어우러진 놀이판을 이끄는 데 그 의의가 있다. 한류의 영향으로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줄타기는 종합예술이다.

줄타기 오른발을 이용한 ‘코차기’ 동작의 김대균 명인 

김대균 명인은 경기도 용인특례시 한국민속촌에서 김영철(1920~1988, 1978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 스승을 만나 1976년 아홉 살의 나이에 줄타기에 입문했다. 판줄에서 탁월한 교예(巧藝) 예술을 보유한 김영철 스승의 ‘잔노릇(기예)’ 43가지를 이어받은 후, 이동안(李東安, 1906~1995) 선생에게 소리를 배움으로써 교예와 재담, 소리를 섭렵하였다. 16세의 나이로 민속촌에서 첫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후, 1982년부터 1994년까지 12년간 민속촌에서 매일 2회 공연했다. 전속 공연을 하면서 김대균 선생은 많은 팬을 거느린 스타로 박수와 갈채를 받았다. 김대균 명인은 일본 강점기에 사라진 '판줄'의 원형을 복원하며 서른넷 나이에 최연소 제2대 국가무형문화재 되었다. 한편 김 명인은 만학도로서 한예종 전통예술원을 거쳐 안동대 민속대학원에서 수학하고 고려대에서 문화콘텐츠 전공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은 학구파이기도 하다. 

1997년 공연 도중 줄이 끊어지는 사고가 발생했다. 공연 중 줄이 끊어지는 사고를 당한 후, 부상으로 힘든 시간을 보내면서 이루고 싶은 꿈을 버킷리스트에 작성했다. 공부에 대한 열망을 실현하기 위해 고교 과정은 검정고시로 대체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졸업, 안동대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김대균 명인은 인생의 변곡점을 통과하면서 전화위복(轉禍爲福)의 계기로 삼았다.

도제 교육을 받았던 김대균 명인은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에서 겸임교수로 재직하면서 줄타기를 알리고 전승 체계교육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2022년 고려대학교에서 ‘줄타기 전승 교육을 위한 잔노릇(기예) 기본동작 개발 연구“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도전으로 점철된 줄 위의 삶을 사는 김대균 명인은 “전통 예술인들이 그저 행복하고 전승이 원활하게 이루어졌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라고 말한다.

1년에 50~60차례 이상 국내 공연을 펼치고 있는 김대균 명인은 줄타기의 백미라 할 수 있는 관객과 교감하며 외줄에서 세상의 이야기를 풀어내며 찬란한 문화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다. 유네스코가 줄타기의 가치를 가장 높이 평가한 이유가 바로 관객과의 소통으로 완성되는 화합의 공연성이었다.

공감의 지평을 넓히고 있는 김대균 명인은 해외 공연(일본 요쿠하마 나가쿠), 미주 한인 이민 100주년 기념공연, 워싱턴 5개 도시, 호주, 청와대 등 국내외 공연만 수십 차례 해왔다. 요즘은 후학들을 가르치는 일에 열중하며, 유일한 소망이 줄타기 전수관이 건립되는 것이다. 무형문화재 전용 전수관조차 없어 전통 계승이 위태롭다. 어려운 여건과 생활환경의 변화로 소멸할 위험에 처한 무형문화재를 보전하기 위해서는 “무형문화재 종합전수관 설립이 절실합니다”라고 말한다. “국가의 시책과 지역적 특색을 고려하여 무형문화재의 보전을 위해 시책을 수립하고 추진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책무입니다”라며 전통문화 보존정책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열악한 환경에서 전통을 계승할 후계자를 발굴하고 양성하고 있는 무형문화재들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온전히 보존하고, 유지하기도 버거운 현실이다.

대한민국 국가 브랜드 줄타기는 외줄 위에서 전통문화를 담아내는 위대한 유산이다.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갈등과 대립 속에서 조화와 협력의 길을 찾아내는 이것이 대한민국 전통문화의 매력이다. 우리 민족의 얼이 스며있는 전통문화 유산을 후손들에게 온전하게 길이길이 물려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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